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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일동 이중섭의 거리

 

 

 

 

이중섭 거리는 부산은행 범천동지점에서 마을광장까지 400m 구간이다.

작가의 부조 흉상으로 시작되는 거리는 그림 타일로 꾸민 갤러리, 숫자로 보는 이중섭 연대기,

거리미술관, 희망길 100계단, 판잣집 화실 포토존, 전망대로 구성돼 있다

 

 

 

    

 

시인 구상에게 보냈다는 복숭아 그림(타일벽화).

 

        동판에 새겨진 김춘수님의 시 '내가 만난 이중섭' 
               아내 마사코를 향한 이중섭 화가의 절절한 사랑이 느껴지는 시이다.

 

 

시인 구상에게 보낸 복숭아 그림에 대한 부연 설명

 

 

 

 

거리 진입부는 그의 평생지기인 시인 구상에게 복숭아

그림을 선물해 쾌유를 빈 이야기를

동판과 타일에 옮긴 첫 번째 갤러리로 꾸며졌다.
바로 옆에는 그의 연대기가 거리 벽면에 새겨졌다.
이어 액자로 장식된 거리미술관이 나온다.

 

 

 

 

 

 

1916 - 1956까지 40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그의 연대기도
이렇게 벽을 따라 소개가 되어 있다.

이중섭은 근대 한국이 낳은 비극적 예술가일것이다.

근대 한국이 ‘미술’이라는 서구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미술가’라는

신종 직업군을 만들어갈 때, 감수성 예민한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그 길을 향해 갔다.

예술가의 자유와 이상을 믿었고, 파리의 거장들 피카소, 마티스의 신화를 믿었던 사람.

그리고 붓과 펜을 움직이면서 형상을 만들어내는 고독한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화가였다.

격동의 역사 속에서 일본인 아내와 자식을 두고 예술이라는 지독히 고독한

세계를추구했던 이중섭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외로웠던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국 예술가 중에서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마치 잘 쓰여진 드라마처럼 순수한 영혼이 고난의 삶 속에서 꽃피운 예술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산에서는 그가 3년 동안 살았던 범일동에 ‘이중섭의 범일동

풍경’이라는 주제로 그와 마사코의 흔적을 기리는 길과 전망대를 만들었다.

그가 2년간 작업했던 통영에도 그를 기리는 거리가 만들어졌다고 함

'봄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따사로운 봄날에 아이들이

정겹게 노는 모습을 단순화된 형과 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솔라리스님글중에서

절친했던 구상네 가족 1955년

 

 

 

 

 

 

1950년 12월 부산으로 피난 온 이중섭 가족은 1951년 4월 잠시 제주에 머물다

그해 말 부산 범일동 피난민촌으로 들어가 생활한다.

이중섭은 부두 노동일을 하고, 가족들은 비가 새는 아카자키 피난민 수용소에서

 갖은 고생을 한다. 이때 그린 '범일동 풍경'이 희대의 명작이 되리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1952년 마사코와 아들 둘은 생활고를 해결하고자

일본으로 떠난다. 이게 영영 이별이었다. 

 

 

 

이중섭이 1953년에 그렸던 범일동 풍경

 

부인과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혼자 남은 이중섭은 고독 속에서 술을 벗하며 예술혼을 불태운다. 광복동의 다방 르네쌍스, 밀다원, 초량다방, 그리고 부둣가 술집들을 전전하며 피난 온 문인 화가들과 교유하던 때도 이즈음이다. 이중섭은 1956년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숨졌다. 무연고자로 처리된 주검은 사흘 만에 이중섭으로 밝혀졌다. 사인은 영양실조였다.

부두 노동자 시절 돈이 없어 종이와 붓을 살 수 없어 담배갑 은박지에

못으로 꾹꾸눌러 그렸던 그림 오래되니 그 못자국이 녹이되어 붉게보인다

 

 

 

 

담벼락에는 그가 일본의 가족에게 보낸 그림 편지와 생전 사진으로 꾸민 두 번째 갤러리가 설치됐다.
그의 부인과 두 아들은 생활이 어려워 1952년 일본으로 떠났고,
이후엔 그림 편지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했다.

 

 

얼마전에 부산 시립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사진을 못찍게 해서

실망했는데 복사본이지만 마음대로 찍을 수 있으니 좋으네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편지 

 

 아내와 두아들을 그려 남덕 아내에게 보낸 그림 같다

이중섭은 황소를 주로 그렸지만 아이들의 놀고있는 모습도 많이 그렸다

 

 

 

 

 

 

 

 

천재 화가 이중섭 (1916∼1956). 
그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 원산에서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와 두 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 와 동구 범일동 판잣집에서 살았다.

나는 여기가 분명 이중섭의 화실로 알고 있는데 살림도 같이 했는지는 모르겠고

곧 복원공사를 할거라니까 그때 알아보면 될 것 같다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감수하며 대한해협을 넘나들며 선택한 사랑 조선인

천재화가에게 아내 남덕은 반역과 배신의 징표로 따라 다녔다

기름때 묻은 손으로 부두 막노동 중 돈이 없어  은박지에 그린 그림 빗물새고

 바람파고드는 판자집 부산 피난 생활은 그렇게 고달 팠다

프랑스 유학을 준비할 정도로 그림에 대한 열정도 깊었고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부유한 집안의 여식인 남덕은 천재 화가의 아내로 살겠다며 자신의 꿈을 접었고

그당시 너무나 위험한 대한해협을 건너왔다

셀카로 인증도 해보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이중섭이 그린 그림이 맞을까 이런그림은 처음접하는 그림인데

 

 

어떤곳에는 이중섭 전망대라고 하고 여기에는 마사코 전망대라 한다

커피한잔을 시켜놓고 주위를 돌아본다

생활고로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가족과 편지로 그리움을 나누는

소박하고 사랑이 넘치는 글

이제 셀카도 조금씩 발전해 가는 것 같다 삼각대가 없어도 가끔 시도를 해본다

이중섭 쉼터에 내려가본다

 

이중섭 전망대 아랫쪽에 범일동 풍경마루라는 이름으로

 이중섭의 작품들로 꾸며진 작은 쉼터가 있다.

 

 

 

황소

그에게 소는 자기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갈다 갈등과 고통 절망 분노를 표현하며

때로는 희망과 의지의 힘을 상징하기도 했다고 함 

 

 

 

 

 

희망100계단 이라는데 넘는 것 같아 내려오면서 해아려보니 180계단 정도 된다

 

                                                       

                                                                           브람사ㅡ의교향곡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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