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전에 복주산 휴양림과 매월당 폭포와 삼부연 폭포를 돌아보고 임꺽정의
무대가 됐던 고석정으로 왔다
스파호텔앞 미 공군부대 전적비를 지나 점심식사를할 식당으로 이동을 한다
향토가든 철원평야에서나는 쌀로지은 돌솥밥에 돼지불고기 정식으로
점심식사후 고석정 투어에 들어간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태봉로 1825
철원지방은 두루미가 많아서 두루미가 철원군의 새인가 보다
수컷이 구애하는 형상과 암컷이 화답하는 형상이라고
고석정(孤石亭)은 철원팔경 중 하나이며 철원 제일의 명승지이다. 한탄강 한복판에 치솟은 10여미터
높이의 기암의 양쪽 사이로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른다.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 때 한탄강 중류에
10평 정도의 2층 누각을 건립하여 고석정이라 명명했다 하며 이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한다. 지방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고석정은 신라 때 진평왕이, 고려 때는 충숙왕이 찾아와
노닐던 곳이라고 한다. 고석정이 더욱 유명해진 까닭은 조선시대 명종때 임꺽정(林巨正, ?-1562)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철원은 신생대 제4기 홍적세에 현무암 분출로 이루어진 용암대지로서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한탄강이 흐르면서 침식활동을 통해 곳곳에 화강암의 주상절리(柱狀節理)와 수직 절벽을 이루었다.
추가령구조대의 중심에 위치하여 후에 경원선의 통과지가 되기도 한 철원은 임꺽정 생애 중에도
칩거하기 좋은 장소였는지 고석정 건너편에 돌벽을 높이 쌓고 산성 본거지로 삼았다 한다.
당시 함경도 지방으로부터 이곳을 통과하여 조정에 상납할 조공물을 탈취하여 빈민을 구제하는 등 부패한
사회계급에 항거하였다 한다. 누각은 6.25 동란 때 소실되었는데, 1971년 지방 유지들의 도움으로 10평의
2층 누각 형식의 정자가 다시 건립되었으나, 96년 수해로 유실되었고 1997년 재건축하였다. 현재도 강
중앙에 위치한 20미터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 석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석성이 남아 있다.
이곳은 풍치가 수려하여 철원8경의 하나로서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국민관광지이다.
이곳에서 상류로 약 2km지점에 직탕폭포와 하류 약 2km 지점에 순담이 위치해 있으며
넓은 잔디광장과 다목적 운동장 등이 시설되어 있어 사시사철 어느 때나 관광객이
즐겨찾고 있다. 또한 철의 삼각 전적지 관리사무소가 있어 사계절 안보관광과 겨울철에는
철새관광도 함께 할 수 있는 관광의 최적지이다.
[Daum백과] 고석정국민관광지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한국전쟁 당시 철의 삼각지 라고 불릴만큼 치열한 격전지가 되었던 곳, 철원. 한국군과
북한군은 드넓은 철원곡창지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그 자리는
철조망에 가려져 겨울 철새들의 풍요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넓은 평야와 인공호수,
그리고 고석정 인근 저수지에는 멸종위기조류인 두루미, 재두루미, 대머리독수리 등
수많은 철새들이 겨울이면 몰려오는 철새들의 낙원이 된지 오래이다. 철새들이 노니는
드넓은 곡창지대와 호수를 지나면, 어느새 철원DMZ의 시작이자, 북한주민들의 생활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승리전망대가 나타난다. 이밖에도 제 2땅굴과 철원평화전망대,
백마고지전투전적비 등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유적지를 통하여
한국전쟁의 치열함과 안보의 소중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땅굴과 승리 전망대도 시간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고석정 전망대
예전에는 정자가 저 바위위에 있었는데 없어지고 아래와 같은 정자를 보다 안전한 곳에 지었다고 한다
궁예도성
선덕여왕 촬영장소이며 음식점이다
대장은 갈길이 멀다고하며 유람선을 못타게 하는데 많은 인원이 우기니 어쩔 수가 없다
그레서 직탕폭포도 철원평야도 못보고 부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거북바위
잉어바위
돼지코바위
임꺽정
임꺽정은 조선시대 13대 왕 명종 연간에황해도 구월산 일대에서 일으킨 난의 주동자이고
당시 척족 윤원형과 이량 등이 발호하고...여러 해 계속 흉년이 지속되면서 관리들의
수탈이 가중되어 민심이 흉흉해진틈을 타 도둑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백정신분 출신으로 신분에 대한불만과 어지러운 사회를 틈타 처음에는 경기도와 황해도
그리고 평안도 일대의 관아를 습격하고 창고를 털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의적활동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부근의 백성은 물론 아전들까지임꺽정 일당과
내통하였으며 그 세력이 더욱 커져서울에까지 그 일당이 출몰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토벌군을 동원하였으나 번번히 실패하였다.
그 때 고석정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하였으나1562년(명종 17년)에 구월산에서
임꺽정은 잡혀 사형을당했으며 이로써 임꺽정의 난은 3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고석정(孤石亭)
이은상
아름다와라 절경 한 구역
예부터 이름난 고석정
물은 깊어 검푸르고
골은 돌아 몇 굽인데
3백 척
큰 바위 하나
강 복판에 우뚝 솟았네
위태론 절벽을
다람쥐? 기어올라
갈길도 잊어버리고
강물을 내려다보는 뜻은
여기서
전쟁을 끝내고
총 닦고 칼 씻던 곳이라기
고석정 외로운 돌아
오늘은 아직 너 쓸쓸하여도
저 뒷날 많은 사람들
여기 와 평화의 잔치 차리는 날
낯 익은
시인은 다시 와서
즐거운 시 한 장 또 쓰고 가마
유람선을 타지 않았으면 이런 멋진 풍경을 어찌보았을까
이 바위를 고석정 바위라고도 하고 임꺽정 바위라고도 한다
시간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몇년전 동강과 경호강에서 신바람나게
레프팅할 때가 그립다
자연석굴
누각은 6.25 동란 때 소실되었는데, 1971년 지방 유지들의 도움으로 10평의 2층 누각 형식의 정자가
다시 건립되었으나, 96년 수해로 유실되었고 1997년 재건축하였다. 현재도 강 중앙에 위치한 20미터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 석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석성이 남아 있다.
공원에는 임꺽정의 동상도 있는데 근육질의 맨몸에 환도를 등에 걸고 두눈을 부릅뜨고 있는 형상에
으시시하게 보이니 탐관오리들이 보기만해도 기절초풍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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