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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인도여행 둘째 날 꾸뜹 미나르

 

 

인도여행 9박11일에 들어가는 9월22일 태풍소식에 많이 들떠 있는 날 13시35분출발 대한항공 481기다

3 달동안 이여행사 저여행 예약했다 인원 미달로 다시 바꾸고 결국은 롯데로 결정이나 출발하게 됐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장내 아나운서 멘트가 나온다

태풍영향으로 2시간 지연이라고 그럼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5시간 여행다니며 처음 격어보는 일이다

그러나 어찌어찌 시간을 보냈는데 또 한시간 늦어진다고 정말 기약이 없다 그리고 탑승구도 바뀌고

우여곡절 끝에 15시 35분에 탑승을 한다

 

7시간여 기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델리 국제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뉴델리 드와카에 있는

래디슨 블루 호텔에 들었다

돔형의 호텔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루프탑 테라스를 자랑하는 뉴델리의 이호텔은 월드 체인 호텔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있는

호텔로 4시간 룸서비스, 발렛 파킹, 키즈풀 등도 갖춰져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7시간여의 비행시간 끝에 인도 델리공항에 도착 래디슨 블루호텔로 직행 짐을풀고 잠자리에 든다

인도는 우리보다 3시간 반이 늦다.이사진은 아침에 찍었다

아침에 기상하여 창문을 여니 이렇게 전철역이 보인다

인도 날씨는 스모크 현상처럼 공기가 탁하고 하늘도 그리 맑지가 않다

인도 India

수도
뉴델리 요약정보10월 3일 오후 01:44 (한국과 -3.5시간차) | 구름많음 24℃/34℃
언어
영어, 힌디어
면적
약 328만㎢ 한반도의 14.885배
인구
약 135,405만명 세계 2위
GDP
약 2조9,719억 달러 세계 5위
통화
인도 루피 1INR=16.98원 (2019.10.02 20:13)
국가번호
91

세계 7위 면적을 가지며 인구수로는 세계 2위이며 수도는 뉴델리이다.

인더스 강의 도시 문명은 4대 문명 중 하나이고 불교와 자이나교가 발상지이기도 하다.

18세기부터는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47년에 간디의 기여로 독립하였다. 내적으로 인종과 종교 갈등이 지속되었다.

 주요농산물로는 쌀, 밀, 면화, 사탕수수, 고무 등이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고도의 기술 산업이 발달했다.

힌두어로는 Bhārat 또는 Bhāratavarsha(전설적 현인군주인 '바라트의 땅'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공식 이름은 인도 공화국(Republic of India)이다.

국토 면적이 세계에서 7번째로 넓고 인구는 세계에서 2번째로 많다. 북서쪽으로는 파키스탄, 북동쪽으로는 중국· 네팔·부탄,

 동쪽으로는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며 북동부는 방글라데시를 3면으로 둘러싸고 있다. 남동쪽면은 벵골 만, 남서쪽면은

 아라비아 해와 접한다. 남동쪽 앞바다에 섬 나라인 스리랑카가 있다. 수도는 뉴델리이다.

인도는 매우 다양한 인종적 혈통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다양성은 인도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 인도 대륙에

자리 잡았던 사람들 혹은 그 이후의 침입자들의 혈통이 뒤섞인 데서 기인한다. 공식 언어는 힌두어와 영어이고,

벵골어·카슈미르어·마라타어·우르두어 등이 포함된 다른 인도-유럽 언어들, 드라비다어, 그리고 수백 개의

 다른 어군을 사용한다. 종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이다. 화폐단위는 루피(rupee/Re)이다.

인도는 지형적으로 크게 3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인도 북부 국경을 따라 위치한 히말라야 산맥 지역, 갠지스를 포함하여

 3개의 커다란 강의 작용으로 쌍인 토사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갠지스 평원, 데칸 고원으로 유명한 남부 지역이다.

주요농산물로는 쌀, 밀, 면화, 사탕수수, 코코넛, 향신료, 황마, 담배, 차, 커피, 고무가 있다. 제조업 분야에는 다양한

중공업과 고도의 기술 산업이 발전해 있다.

 

인도의 정치 형태는 양원제를 운영하는 공화국이다. 국가의 수반은 대통령이고, 행정부의 수반은 수상이다.

 인도 지역에는 수 천년 전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인도에서의 농업은 BC 7000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인더스 강 유역의

 도시 문명은 BC 2600년경에 이루어졌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BC 6세기에 발생하였다. 그것은 베다교와 이를 계승한 힌두교에 의해 만들어진 카스트 기반 사회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슬람교도의 침략은 대략 AD 1000년경에 시작되었다. 이들은 1206년의 장기간 유지되었던

델리 술탄국을 설립하였고 1526년 무굴제국을 세웠다. 1498년에 인도를 향한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는 수 세기에 걸쳐

 계속된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프랑스인들 간의 무역 경쟁을 가져왔다. 18~19세기에 걸친 영국의 지배는

 영국 동인도 회사의 통치로 이어졌고, 1858년 대영제국에 의한 직접 통치가 시작되었다.

 

모한다스 간디가 1947년에 영국의 지배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한 이후, 자와할랄 네루는 인도 최초의 수상이 되었다.

그리고 네루,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 그의 손자인 라지브 간디가 몇 해를 제외하고는 1991년까지 계속 국가의 운명을

 이끌었다. 인도 대륙은 2개의 나라로 분열되었는데, 힌두교가 대다수인 인도와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파키스탄이 되었다.

 후에 파키스탄과의 분쟁은 1971년에 방글라데시의 건국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시크교도는 펀자브에 독립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인종과 종교적 갈등은 인도 다른 지역에서도 발생했다.

 서북쪽의 카시미르 지역은 끊임없는 긴장을 제공했다.

아침 8시에 호텔에서 출발 했는데 시내는 이렇게 초만원 자동차로 신호등과 횡단보도도 별로 없고 손들고

건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저것은 시내버스인 듯 한데 날씨가 더워도 에어컨이 없다

그러니 창문을 아예 얼어놓고 다닌다 그리고 만원버스다 하층민이 타는 가 보다

인도는 세계적 종교 발상지인 동시에 근거지이다.

각 시대를 통해 인도인들은 강한 종교적 기질을 보여왔다. 이러한 기질 때문에 힌두교·자이나교·불교·시크교 등 고유 종교가

발달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교·그리스도교·유대교·조로아스터교 등 외래 종교 또한 성장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는 애니미즘으로 아직도 산탈족·빌족·곤드족 등 외딴 지역에 거주하는 부족들에 의해 신봉되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전통 종교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힌두교로 그 기원은 BC 2000~1500년경 아리아족이 성립시킨 베다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우리는 꾸뜹 미나르로 가기위해 시내를 빠져나가고 있는데 자전거 오토바이 툭툭이 택시 자가용 버스 트럭

할 것없이 차선도 그리 중요치 않고 지그재그로 잘도 빠져나간다 거의 신호대가 없고 로타리로 형성되어 있다

 

델리가 그래도 수도인데 도로변을 보면 너무도 지저분하고 또한 소똥냄새가 진동을 한다

거리에는 이러한 간이 상점이 있는데 거의가 다들 가건물이다

 

델리

 

                                                                                위치

인도 북부
                                                            인구 18,686,902명 (2016 추계)
                                                            면적 1,483.0㎢
                                                           언어

영어, 힌디어

 

  연방직할주는 올드델리 알려진 델리와, 뉴델리로 이루어져 있다.

 올드델리가 경제 중심지인 반면에 뉴델리에는 행정관청이 집중되어 있다.

 

뉴델리는 조밀한 인구를 가진 올드델리에 비해 뉴델리는 부유층 거주지역 특유의 탁트이고 조용한 느낌을 준다.
직할주 전체가 중북부 인도로 가는 화물수송 중심지 역할을 한다.

 

여러 세기 동안 인도 북부의 무역·상업중심지였으며 인도 준비은행 본부이자 증권거래의 중심지이다.

수송, 저장, 도매·소매 무역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 제국 및 왕조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수도로 있던 곳이다.

유적들은 거의 인도 역사 전시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인도 이슬람 양식이 두드러진다.

각종 도자기 화분 야외 판매소

 

 

연방직할주는 올드델리로 널리 알려져 있는 델리와, 남쪽에 있는 뉴델리(1912년 이후 인도의 수도),

 가까운 농촌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올드델리가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경제 중심지인 반면에 뉴델리에는 행정관청이 집중되어 있다.

 직할주 전체가 중북부 인도로 가는 화물수송 중심지 역할을 한다.

 

델리는 여러 제국 및 왕조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수도로 있던 곳이다.

여러 번 터를 옮기기는 했지만 이곳들은 모두 델리 트라이앵글(Delhi triangle)

이라고 부르는 지역 안에 속해 있다.

갠지스 강 지류인 야무나 강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연방직할주는 우타르프라데시 주,

하리아나 주(서쪽)와경계를 이루고 있다.

도시 복판에 이러한 변전소도 있는데 7~80년도 우리나라 도시 변전소와 다를 바가 없다

델리에서는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문은 서비스업이며 2번째가 공업, 그 다음이 상업이다.

 현대에 와서 델리는 전기제품·공업기술제품·자동차부품·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규모 제조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수공예와 의복은 물론 상아공예·그림·놋쇠기구·구리제품 같은 전통 수공예품도 여전히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델리는 여러 세기 동안 인도 북부의 무역·상업중심지였으며 인도 준비은행 본부이자 증권거래의 중심지이다.

 수송, 저장, 도매·소매 무역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대나무 사다리 판매소가 도시 곳곳에서 볼 수가 있다

델리와 서울의 공통점

델리는 우리나라의 서울과 유사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조선왕조 500년과 그 이후 100년을 포함한 600년 정도(定都)로서의 상징성이 있는 서울과 무굴 제국 300여 년과

 1911년 이후 100년을 포함한 400여 년의 인도 수도로서의 기능을 담당한 델리는 한 왕조의 수도이자 식민지

수도로서의 슬픈 역사와 독립 국가의 수도이기도 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한 분단과 함께 수도의 지리적,

숫자적, 문화적 변화로 인해 그 기능이나 상징성이 강화되었다는 점 또한 유사하다.

꾸뜹미나르 매표소와 입구

꾸뜹미나르 정문의 모습. 오른쪽이 인도인들이 출입하는 게이트고,

왼쪽은 외국인들을 위한 출입문이다.

매표소 앞의 인도 전통복장의 여인

 

 

꾸뜹 미나르(Qutub Minar)

꾸뜹 미나르는 술탄 꾸뜹 우딘(Qutbuddin)이 1193년 델리의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기념으로 건설한 ‘승리의 탑’이다.

 탑의 바닥 직경은 15m, 꼭대기는 2.5m로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73m에 이른다.

술탄 꾸뜹은 그의 생에 첫 번째 층 밖에 짓지 못했고, 지금의 5층 탑은 후대 왕들이 증축한 결과물이다.

1층~3층은 붉은 사암, 4층~5층은 대리석과 사암을 사용했다.

기록에 의하면 탑의 상층부는 지진으로 인하여 두 번의 복원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표면에 새겨진 섬세한 조각과 층을 구분하는 발코니는 지금까지도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소.개등 동물들이 이숲에 배변을 해놨기에 조심해서 다녀야된다

나도 한번 밟아서 곤혹을 치루었다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이슬람의 힘이라는 뜻이 담긴 인도 최초의 이슬람 사원으로 당시 27개에 달하던 힌두사원을 재활용해 만들었다.힌두사원을 받치고 있던 기둥들도 재활용하여

어딘지 힌두 냄새가 나는 이슬람사원. 

꾸와뜨 울 이슬람 모스크(Quwwat-ul-Islam Mosque)

꾸뜹 미나르 탑 옆에 있는 인도 최초의 모스크다. 1193년 힌두교 사원을 무너뜨린 그 자리에 지어졌으며 후대 왕들에 의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현재 상당수가 폐허가 되어 버렸지만 화려한 사암 장식들은 여전히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본래 미나르는 이 사원의 일부분이나 사원의 다른 부분들은 다 허물어지고 미나르만 남아서 미나르유적군으로 부른다

그 유적군들과 미나르 그리고 미나르에 정교하게 새겨진 코란과 문양들...

우상숭배를 금지한 이슬람교이니 만큼

동물보다는 식물 문양이나

아라비아 글자로 적힌 코란의 구절을 상형화한 장식들이

이곳에서도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각 층마다 발코니가 있고 좁은 380여 개의 계단이 있다고 하며 과거에는 탑의 내부 관람이 가능했으나

1979년 단체여행을 온 학생들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현재 탑의 내부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델리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른 시간이어서 아직 관광객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조용하고 탑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허물어져 있는데

이것은 델리가 지진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지진으로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아 있는 유적들과 그 터를 볼 때 이곳이 지진으로 허물어지지 않았더라면 참으로 대단한 곳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도는 인더스 문명이 발생한 곳으로 힌두교를 중심한 왕조국가들이 형성되어서 이어져 오다가 아쇼카 왕 때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나 다시 힌두교를 중심한 왕조국가들로 이어져 왔다.

 

그러다가 13세기에 이슬람교 왕조가 형성되어 인도를 지배해 오다가 1848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1947년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이슬람 종교를 믿고 있던 북쪽지방은 나중에 파키스탄(방글라데시포함)으로

분리독립하였다.

 

인도를 이슬람이 5백년을 지배했지만 인도에 이슬람은 남아 있지 않고 이슬람의 흔적만 이런 유적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결국 종교도 흘러가는 물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파츠...Out Of Place Artifacts의 약자인 오파츠(OOPATTS)는현재의 과학으로도 해명이 불가능한 고대 출토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쇠기둥이 제작된 시기는 약 4세기로 추정되는데 철의 함량이 조사에 따라 99.99%까지 나오는데이정도 순도를 자랑하는 철은 현대과학기술로도 주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철은 녹이 슨다는 상식을 뒤엎은 약 1,500년 된 이 오파츠는쇠기둥을 양손으로 안아 깍지를 끼우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전설이 있는데지금은 쇠 보호망이 처져있어 해 보지 못했다.

 

 

 

고대 유적의 흔적들은 보는 것은 언제나 경이로우면서 약간의 씁쓸함이 남는다.

 그 먼 옛날 엄청난 자원을 투자해 이러한 유산들을 남길수 있었던 점에서는 경이롭고

 그렇게 강성했던 나라가 결국 쇠퇴하여 없어졌다는 면에서는 씁쓸하면서 아쉬운 느낌

 

인도인의 섬세함에 혀가 내둘릴 정도다

 

 

쿠와트 울 이슬람 사원 (Quwwat-ul-Islam Mosque) 유적지. 쿠와트 울 이슬람은 번역하자면

"이슬람의 힘"(Might of Islam)을 뜻한다.

 술탄 에이백이 꾸뜹 미나르와 함께 건설한 델리지역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다

 

 

꾸뜹 미나르의 2층과 3층을 세운 왕 일투미시의 무덤

1235년 일투미시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

알라이 다르와자 문(Alai-Darwaza Gate)’ 옆에는 이슬람교의 성자(聖者) ‘이맘 자민(Imam Zamin)‘

영묘(靈廟)가 있다. 투르키스탄(Turkistan) 출신의 성자였는데 1539년에 임종을 맞아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이 외에도 유적군에는 꾸뜹의 사위인 일투투미쉬(Iltutumish)의 무덤,

알라 우드 딘의 무덤 등이 있다.

원래 돔으로 덮여있었는데 돔이 무너졌고 14세기말 그의 후손이 또다른 돔을 지었으나 그마져도 무너져 없어져 버렸다.

 

알라이 미나르(Alai Minar)

꾸뜹 미나르와 모스크 북쪽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알라이 미나르는 알라우딘 킬지(Ala-ud-din-Khilji)에 의해 계획된 것이다.

 그는 꾸뜹 미나르와 같은 모양이면서 높이는 2배인 승리의 탑을 짓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 탑은 약 25m 정도밖에

 완성되지 못했고 누구도 계속해서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나무에 조각을 한 모습

인인도의 카스트제도
카스트(caste)라는 용어는 '인종, 혈통 혹은 순결함, 순수함'을 의미하는 포르투갈어 '카스타(casta)'에서 유래되었다.

 유럽 세력 중에서 최초로 인도에 진출한[1]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당시 인도에 존재했던 다양한 신분 구분이 '카스타'라고

불려지기 시작했데, 이후 인도를 지배하기 시작한 영국인들에 의해 지금의 명칭인 '카스트(caste)'로 다시 불려지게 된 것이다.

 

현재 '카스트'는 출생과 혈통에의해 결정되는 사회적, 직업적 계급 그 자체를 의미하며, 이러한 카스트들 간의 우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분제도를 카스트 제도(Caste System)라고 한다. 참고로 '카스트'는 인도의 특수한 계급 상황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전근대 시대에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억압적 신분제도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로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카스트'나 '카스트 제도' 대신, 색깔을 의미하는 '바르나(Varna)'나 출생을 의미하는 '자티(Jati)'를

 주로 사용한다. 양자 모두 신분계급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실제 사용례에 있어서는 다소 큰 차이가 있다.

 

4성 계급 체계

브라만

바르나 중 가장 높은 계급으로 승려, 학자 등이 이에 속한다. 힌두교의 가르침을 전승하고 설파할 수 있는 성스러운

 신분으로 여겨진다. 재생자(Dvija)에 속한다.

크샤트

전사, 정치인, 귀족에 해당하는 계급으로 브라만과 함께 지배층을 형성한다. 재생자(Dvija)에 속한다.

바이샤

농민, 상인, 수공업자 등 실질적인 생산활동을 담당하는 평민 계급이다. 재생자(Dvija)에 속한다.

 

수드라

육체 노동과 사역에 종사하는 노예 계급에 해당한다. 재생자(Dvija)에 속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