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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완주 송광사

송광사는 50년 전 고등학생 때 딱 한번 가본 곳이다

옛 추억이 그리워 다시 찾아가 그때를 회상해본다

입구에는 비비추도 백일홍도 보이고 주차장과 일주문은 동떨어져 있어 빙 돌아서 가게 된다

 

송광사

송광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천년 고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는 신라 경문왕 7년 (867년)에

구산선문의 개산조인 보조체징 선사가 개창하였다. 원래의 사명은 백련사였으며, 현재의 일주문이 3km 밖 나들이라는

곳에 서 있던 대찰이었으나, 역사의 변천 속에 거의 폐찰이 된 것을 순천 송광사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중창을

발원하신 후 현재의 도량 전각들은 1600년대 보조 지눌 국사의 법 손들이 대대적인 불사를 추진한 것이다.

특히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왕세자를 청나라에 볼모로 보낸 인조대왕이 두 왕세자의 무사 환국과

국란의 아픔을 부처님의 가호로써 치유하고자 대대적으로 중창한 인조대왕의 호국 원찰이다

이렇듯 역사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호국 원찰이어서인지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면 대웅전, 나한전, 지장전의

불상이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리곤 한다. 특히 대웅전의 불상은 KAL기 폭파사건, 12.12사건, 군산 훼리호 침몰사건,

강릉 잠수함 출몰, 그리고 97년 12월 2일부터 13일까지 엄청난 양의 땀과 눈물을 흘려 I.M.F한파를 예견하였다고

한다. 전국 4대 지당기 도량답게 최대 크기의 지장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나한전의 석가여래와

500의 나한상은 대웅전과 함께 많은 이들의 참배처가 되고 있으며 평지가람으로 노약자가 편히 올 수가 있으며,

대형버스 30대가 주차할 수 있는 대형주차장과 식당이 준비되어 있고, 봄철 송광사 벚꽃 터널의 아름다움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대웅전, 삼세불상, 아(亞) 자형 종각, 사천왕상 등 4점의 보물 문화재와 8점의 유형 문화재 등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사찰이다.

일주문

송광사의 입구에 세워 속세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하는 상징물인 일주문은 조선시대에 지은 것이다.

원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세웠던 것인데, 절의 영역이 작아져서 순조 14년(1814)에 조계교

부근으로 옮겼다가 1944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긴 것이다.

 

건물은 2개의 원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 위에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간결한 맞배지붕을 올렸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공포는 용머리를 조각하는 등 조선 중기 이후의 화려한 장식적 수법을 엿볼 수 있다.

 

기둥의 앞뒤로 연꽃무늬를 장식한 보조기둥을 세워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앞면 중앙에는 '중난산 송광사

(終南山松廣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송광사 일주문은 전체적인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단정하고 원숙한 비례감을 느끼게 하는 조선 중기의 일주문이다.

이 일주문은 4면의 처마 아래에 창방 뺄목 대신 고개를 내민 용머리를 장식하였고, 주 기둥의 앞뒤에 세운 보조

기둥 상부에 연꽃을 조각하였으며, 특히 담장을 두르고 대문을 달은 것이 이색적이다.

금강문

일반적으로 금강문은 새날개 모양으로 장식된 익 공양식의 공포와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있어 규모도 작고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이 건물은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처리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송광사 경내로 들어가면서 일주문을 지나 다음으로 만나는 이 금강문은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이다.

금강문은 인왕문이라고도 부르며, 문 양쪽에는 손으로 권법을 짓거나 금강저 또는 칼, 창을 손에 든

금강역사를 모셨다. 

나라 연금 강이 금강저와 용을 들고 서있다. 경내에서 볼 때 오른쪽의 금강역사로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과 함께 배치된다.

나라연금강은 코끼리 백만 배나 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있어 아 금강역사라고 도 한다.

여기서 아는 우주의 첫소리 또는 우주가 열리는 소리이다.

보현보살은 대행 보현보살로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실천행을 상징하며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밀적 금강이 금강저와 칼을 들고 서있다. 경내에서 볼 때 왼쪽의 금강역사로 푸른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보살과

함께 배치된다.

밀적 금강은 부처를 호위하는 야차 신의 우두머리로서 훔 하고 입을 다물고 있어 훔금강역사라고도 한다.

여기서 훔(또는 우)이란 우주의 끝소리 또는 우주가 닫히는 소리이다.

문수보살은 대지 문수보살로 지혜를 상징하며 사자를 타고 있다. 종종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천왕문은 송광사의 마지막 세 번째 문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장인 사천왕이 있는데, 높이가 4.25m인

소조 사천왕은 모두 보물 제12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왕문에도 일주문처럼 문이 달려있는데, 앞뒤에 모두 달려있다.

오른손으로 당(幢)을 잡고 왼손 위에 보탑을 올려놓은 서방 광목천왕이 쓰고 있는 보관의 뒷면 끝자락에

順治己丑六年七月日畢(순치기축육년칠월일 필)이라는 먹글씨가 남아 있어 1649년에 이들 사천왕상이

만들어졌다는 제작연대가 밝혀짐으로써 조선시대 소조 사천왕상의 기준작을 얻게 되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남방 세계를 관장하는 증장천왕이 용과 여의주를 쥐고 악귀를 밟고 있다.

서방세계를 관장하는 광목천왕이 당을 쥐고 보탑을 손에 들고 악귀를 밟고 있다.

북방 세계를 관장하는 다문천왕이 비파를 들고 악귀를 밟고 있다.

동방 세계를 관장하는 지국천왕이 지혜의 보검을 쥐고 악귀를 밟고 있다.

천왕문의 왼쪽 벽면에는 비천이 나팔을 부는 비천 나발 주악도가, 오른쪽 벽면에는 비천이 칼춤 추는

비 천신 도무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대웅전 천정에 그려진 비천도를 모사한 것이다.

불전사물

범종, 목어, 운 판, 법고를 불전 사물이라고 하는데,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목어는 수중 생명을

위해, 운 판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위해 그리고 법고는 땅 위의 중생을 위해 하루에 세 번 새벽, 정오,

저녁에 울린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138호인 맨 앞의 동종은 높이가 107cm이고, 밑 너비 72cm이며, 숙종 42년(1716)에 제작되었다.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은 소조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불상이 천정에 닿을 듯 상부 공간이 여유롭지 못하여 수미단을 3단이 아닌 2단으로 만들었다.

 

대웅전의 우측 벽면에는 도가 사상을 나타내는 천도가 가슴을 드러내며 하늘을 나는 천도 현정 무와 불교에

흡수된 민속신앙의 무속 춤을 추는 비천무 당무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대웅전 천정에 그려진 비천도를

모사한 것이다.

 

대웅전 좌측 측면에 유리광전 현판이 걸려있고, 벽면에는 1개의 비천도가 걸려있다.

비천 승무도

비천이 승무를 추는 비천 승무도 그림이 걸려있는데, 대웅전 천정에 그려진 비천도를 모사한 것이다.

대웅전 뒷면에 보광명전 현판이 걸려있고, 벽면에는 4개의 비천도가 걸려있다.

 

비천 바라무, 비 천비 상무

비천이 바라춤을 추는 비천 바라무와 비천이 삼각형 고깔을 쓰고 춤을 추는 비 천비 상무 그림이 걸려있는데,

대웅전 천정에 그려진 비천도를 모사한 것이다.

비 천장 고무, 비천 타고 무

비천이 장고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비 천장 고무와 비천이 북을 치는 비천 타고 무 그림이 걸려있는데,

대웅전 천정에 그려진 비천도를 모사한 것이다.

무량수전

대웅전의 우측 벽면에는 도가 사상을 나타내는 천도가 가슴을 드러내며 하늘을 나는 천도 현정 무와 불교에

흡수된 민속신앙의 무속 춤을 추는 비천무 당무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대웅전 천정에 그려진 비천도를 모사한 것이다.

지장전

명부란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에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사람, 하늘 중 어디로 갈지 심판을 받는 곳이다.

명부에서 심판을 담당하는 시왕(十王)을 봉안한 법당을 시왕전이라 하고, 명부에서 중생구제를 위해 애쓰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법당을 지장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함께 봉안한 법당을 명부전이라고 한다.

송광사의 지장전은 원래 명부전이었으나 헐어버리고 새로 지으면서 지장전으로 바꾸었다.

오층 석탑과 미륵불 최근에 조성한 것 같다

삼성각 앞에 대형 보리수(보리자) 나무

전북 유형문화재 제172호 나한전은 효종 7년(1656)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이 법당 안에는 같은 해에 조성된 석가모니불과 16 나한 및 500 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현재 보수 중인 나한전은 외벽의 벽화를 비롯해 내부의 모든 불상을 임시 이전한 상태에 있다.

수도 도량의 장인 듯 출입금지다

세심정

종각과 관음전

세상에서 가장 근심 걱정 없는 포대화상

극락전

대웅전 좌측으로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주심포 맞배지붕인 극락전이 최근에 조성되었는데, 규모가 작고

아담한 법당으로 옆의 지장전에 비해 오히려 고요한 법당의 분위기가 풍긴다.

원암 범종각

보물 제1244호인 범종루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 범종각을 세우고 원암 범종각이라는 현판을 붙였다.

뜰에는 접시꽃과 노란 백합이 보이고

아마릴리스인지 백합인지 모양과 색깔이 특이해서 담았다

노란 무늬의 해바라기 한송이 색감이 아주 좋아 눈길을 끈다

50년 만에 본 송광사 많은 건물이 더 들어서고 사세도 엄청 커졌는데

정작 생각나는 것은 종각과 대웅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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