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바위와 남이포를 둘러보고 이곳 서석지로 왔다
서석지에 들어가는데 가장 먼저 쌍계 입암도가 보인다
쌍계 입암도
입암의 경관이 뛰어났기 때문에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 선생도 이곳을 방문하여
구경하기에 이르렀고 범상치 않은 경관에 그냥 지나치지 않고 쌍계 입암도라는 걸작을 남겼다
겸재 선생은 1734년 청하 현감으로 내려와 2년 동안 머물며 영남 일대의 명승지를 그림으로
남겼는데 쌍계 입암도 역시 이무렵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캡처한 사진
계절별 서석지의 모습도 보이고
중요 민속자료 제108호. 이 정자는 정영방(鄭榮邦)이 1613년(광해군 5)에 축조하였다고 전한다.
연못은 수려한 자양산(紫陽山)의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하였으며, 방지(方池)의 북단에 있는
3칸 서재인 주일재(主一齋)는 마루 안쪽에 ‘棲霞軒(서하헌)’이라 편액 하였다.
서단에는 6칸 대청과 2칸 온돌이 있는 규모가 큰 정자인 경정(敬亭)을 세우고 경정의 뒤편에는
수직사(守直舍) 두 채를 두어 연못을 중심으로 한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북단의 서재 앞에는 못 안으로 돌출한 석단인 사우단(四友壇)을 축성하여 송ㆍ죽ㆍ매ㆍ국을 심었다.
주일재는 ‘운서헌’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는 서재이다
주일재(主一齋)’는 서재로 ‘거경궁리 주일 무적(居敬窮理 主一無適)’에서 따온 말이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서하헌은 노을이 깃드는 집이라는 뜻인 듯
정자인 경정은 손님을 맞고 제자를 가르치던 공간으로 서석지의 중심 건물이다.
경정의 경(敬)은 유학자들에게 있어 학문을 이루는 처음이자 끝이다.
마음을 한곳에 집중해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지가 곧 경이다.
퇴계는 경을 도의 관문이고 덕의 기본이라 했다.
참나리
이 연못의 이름은 연못 안에 솟은 서석군(瑞石群)에서 유래한다.
서석군은 연못 바닥을 형성하는 크고 작은 암반들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솟아 있는 것으로
그 돌 하나하나에 모두 명칭이 붙어 있다.
돌들의 이름은 선유석(仙遊石)ㆍ통진교(通眞橋)ㆍ희접암(戱蝶巖)ㆍ어상석(魚狀石)ㆍ
옥성대(玉成臺)ㆍ조천촉(調天燭)ㆍ낙성석(落星石) 등이며 19개에 이른다.
이러한 명칭은 정영방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거 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못은 동서로 길며, 가운데에 돌출한 사우 단을 감싸는 U자형을 이루고 있다.
연못의 석벽은 그 구축법이 매우 가지런하고 깔끔하다.
동북 귀퉁이에는 산 쪽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도랑을 내었고, 그 대각점이 되는
서남쪽 귀퉁이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마련하였다.
경정은 '연못을 내려다보며 마음을 수양하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지어진 팔작지붕 정자다. 정면의 양쪽 문을 들어올리면
연못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서석지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전남 순천 국가정원 한국관에 가면 비원의 부용정과 함께 경정이 자리하고 있다
사방에 부연을 달고 사면에는 계자 난간을 돌렸다
부연
겹처마에서 처마 끝에 걸리는 방형 서까래인데 처마를 깊게 할 목적으로 사용하지만
장식적인 효과도 있다.
계자난간
난간동자를 닭의 발 모양으로 바깥쪽으로 구부정하게 하여 화초 무늬나 덩굴무늬를
새겨 만들고, 돌난대를 밖으로 내밀어 걸친 난간
자양재
장판각
화장실
자양재와 부속건물
아름다운 돌담
왕원추리
은행나무 보호수 수령 약 300 년
석문의 부인 전주 류씨가 친정 무실에서 가져와 심은 은행나무라고 한다
밖에서 바라본 장판각과 경정
연못 안에는 60여개의 돌이 있는데, 그중 19개에 이름이 존재한다.
상경석(尙絅石 높이 존중받는 돌) 낙성석(落星石 떨어진 별 돌)
옥 계척(玉界尺 옥으로 만든 자 돌) 통진교(通眞橋 선계로 가는 다리 돌)
봉운석(封雲石 학 머리를 두른 구름 돌) 조천촉(調天燭 광채를 뿜는 촛대 돌)
어상석(魚狀石 물고기 돌) 희접암(戱蝶巖 나비가 노니는 돌)
화예석(花蘂石 꽃술 감상하는 돌) 관란석(觀瀾石 물결을 바라보는 돌)
탁영반(濯纓盤 갓끈 씻는 돌) 난가암(柯巖巖 도낏자루가 썩는 돌)
선유석(僊遊石 선인들이 노니는 돌) 기평석(棊坪石 바둑 두는 돌)
수륜석(垂綸石 낚싯줄 드리우는 돌) 상운석(祥雲石 상서로운 구름 돌)
와룡암(臥龍巖 연못 속에 웅크린 용 돌) 분수석(分水石 물이 떨어 자는 돌)
쇄설강(灑雪矼 눈이 휘날리는 징검다리)
석문 정영방 선생 사적비
서석지 정원의 주인 석문 정영방 선생은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성균관
진사를 지냈다.
정사를 펼치는 데 있어서는 하소연할 곳 없는 백성들을 위해 애썼고, 진언을
올림에 있어서는 임금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 잡았다. 그러나 임금의 총애가
커질수록 쇠를 녹일 듯한 비방이 모여들었다.
이에 정영방 선생은 세상살이와 벼슬에 허무함을 느껴 1636(인조 14) 이곳
경북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들어와 정원을 만들고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