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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 봉은사1

데미안2 2021. 10. 14. 18:34

 

위와 아래 사진은 아침에 운동중에 안개가 피어오른 파크골프장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수원에서 오후2시반에 예식이 있어 참석하려고 하루 먼저 서울로와서 친구들과

놀다가 아침에 남은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오후 1시에 고속터미날에서 만나 같이 가기로 했으니 4시간이라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

등촌동에서  9호선을 타고 어디로 갈까 역명을 검색 하니 봉은사와 석촌고분군 올림픽공원

이렇게 나온다 봉은사와 석촌고분군을 점 찍고 출발를 한다

봉은사 앞에는 여러번 와봤지만 정작 봉은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진여문 안에는 목조(木彫)사천왕상이 좌우로 각각 2개씩 4개가 서 있다. 이들은 원래 진여문과 법왕루 사이에 있었던 천왕문에 있었으나 1997년 천왕문을 철거하면서 이곳으로 임시로 옮겨와 지금에 이른다. 이 사천왕상은 1746년(영조 22년)에 조성되었는데 능창군(綾昌君 : 宣祖의 7子인 仁城君의 증손)과 상궁 박필애(尙宮 朴弼愛) 등 궁중 관련 인물 현상성(賢上城)에서 건달바(乾達婆,Gandharva)와 비사사를 거느리고 동쪽 인간세계 사람들, 특히 국가와 국왕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현상성은 불교세상 중앙에 솟아있는 수미산 중턱 동방의 4층에 있다는 궁전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에 속한다. 이 절의 기원은 794년에 연회국사가 창건한 견성사이다.

그뒤 1498년에 정현왕후가 성종의 능인 선릉을 위해 이 절을 중창하고 봉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562년 보우선사가 중종의 능인 정릉을 선릉의 곁으로 옮기고 이 절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중건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건·중수했다.

1912년에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1939년 화재로 주요전각들이 소실된 것을 1941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대웅전·판전·명부전·법왕루·심검당·북극전 등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고려청동누은향로

(보물 제321호)가 있고, 〈화엄경소〉·〈금강경〉·〈한산시〉·〈유마경〉 등 많은 목판본이 보존되어 있다.

이 절의 태조 진영을 봉안한 곳은 효사관(孝思觀)이라 하였다가 1373년(공민왕 22)에는 경명전(景命殿)이라

개칭하였다.

태조의 진영을 둔 이 절은 국가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왕들이 행차하여 기도를 올렸다.

1038년(정종 4)에는 정종이 연등행사 때 제일 먼저 이 절에 들렸으며, 1354년에는 천재가 심하였으므로

그 제액(除厄)을 태조 진전에 기도하였다.

1357년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려 하였을 때도 이곳에서 점을 쳤으며, 북원(北元)이 토도부카를 왕으로

옹립하고자 할 때, 이인임(李仁任) 등 고려의 백관들이 태조 진전에서 반대의 뜻을 맹세하기도 하였다.

1389년(공양왕 1)에 우왕과 그 소생 창왕 등을 신돈의 소생이라 하여 폐위시킬 때 고축문(告祝文)을 읽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 이 절에는 홍법(弘法)·도융(圖融)·혜소(慧炤)·지광(智光)·원경(元景)·담진(曇眞)·

낙진(樂眞)·보우(普愚) 등 고려시대의 고승들이 이곳에 주석하면서 이름을 빛내었다.

그들은 이 절에서 국사·왕사의 직위를 받았으며, 이곳에 주석하면서 경을 설하고 선(禪)을 논하는 법회를

베품으로써, 이 절은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성황을 이루었다.

보우가 이곳에 머물 때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친히 행차하여 정례(頂禮: 이마를 땅에다 대고 가장 공경하는

뜻으로 하는 절)하고 승려 300여 명에게 백포(白布) 2필과 가사(袈裟) 1령씩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봉은사는지금 국화 전시회도 열고 있지만

개산 1227주년 기념 지역문화예술제가 열리고 있으며 2021년들차회도 오늘 10월10일에 열리고 있다

법왕루

 대웅전과 마주하여 누각으로 세워져 있는 법왕루는 사시예불을 올리는 장소로 이용되며, 대법회와 기도,

수행이 이루어 지는 곳이니다. 3,300분의 관세음보살 원불상이 모셔져 있다고 하네요

도심 속 천년고찰 봉은사.

대가람의 유구한 역사를 빛낸 스님들의 진영에 감로의 청정한 차를 올립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역대조사를 기리는 봉은사 신도들의 기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봉은사가 오늘 개산 1227주년 역대조사 다례재를 봉행했습니다.

스님들과 신도들은 여덟 조사의 진영에 향과 차, 꽃을 올리며 봉은사의 번영과 한국 불교 중흥을 발원했습니다.

대웅전

대웅전은 조석예불이 항상 이루어져 발길이 끊이지 않는 신행 활동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대웅전의 전면 계단에는 왕실에서만 사용되는 용을 조성해 놓았으며 기둥과 창호, 지붕, 추녀의 모습과

용마루에 이르기까지 한국전통 목재 건축물들의 아름다움과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이다.

대웅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셔져 있습니다.

서울 봉은사(주지 원명 스님)가 개산 1227주년 맞이 역대조사 다례재를 봉행하며 개산대재의 개막을 알렸다.

봉은사는 10월6일 봉은사 대웅전 앞 특설무대에서 794년 견성사란 이름으로 봉은사를 창건한 신라시대

고승 연회국사를 비롯해 허응당 보우대사, 서산 휴정대사, 사명 유정대사, 남호 영기율사, 한암당 중원대종사,

영암당 임성대종사, 백곡당 처능대사의 진영을 모시고 다례재를 봉행했다.

역대조사 스님들의 업적을 계승하고 뜻을 기리는 다례제를 시작으로 봉은사는 한 달여 간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를 펼친다.

지장전

지장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예전엔 명부전이란 이름으로 정면 5

         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42년에 중창되었었다고 하는데, 2002년 6월 불의의 화

         재로 전소되어 본래 12평이었던 전각을 40평으로 2003년 12월에 중창했다고 한다.

국화꽃 화분에도 시주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네

대도량

미륵전

  미륵(彌勒)은 범어 마이뜨레야(Maitreya)의 음역이며, 한역하여 자씨(慈氏)라 합니다.  그래

      서 흔히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 합니다.  미륵은 보살의 성이며,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Ajita)

      로 무승(無勝), 막승(莫勝)으로 번역합니다.  현재는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 도솔천(兜

      率天)에 머물러 계시는데, 아주 먼 미래에 이 땅에 하생(下生)하시어 용화수(龍華樹) 아래에

      서 성도하실 미래불(未來佛)이다.  

범종각

이곳은 한 때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ㅣ

판전

봉은사 대웅전 오른쪽 언덕 위 계단을 오르면 있는 판전(板殿) 건물의 현판이다.

판전은 경판을 보존하기 위한 건물로, 이 안에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수소연의(隨疏演義) 초판

3,175점이 보존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 철종 7년(1856)에 율사로 이름을 떨친 남호(南湖) 영기(永奇)스님이 조성하였다 하며 지금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목판을 봉안하기 위하여 신축한 건물이 판전이고, 여기에 현판으로 걸린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곧 김정희

서판전현판이다.

이 판전 글씨는 낙관부의 '七十一果病中作(칠십일과병중작)'이란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추사의 말년작으로

유명하며, 이 글씨를 쓴 3일 후에 추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더욱 영험하게 여겨진다.

글씨는 최말년 작품임을 나타내듯 고졸하고 어색해 보이나, 추사의 노숙한 신필의 경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봉은사 판전 신중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230호

봉은사 비로자나불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232호

추사 김정희선생 기적비

  흥선대원위영세불망비(興宣大院位永世不忘碑)

이 비가 건립된 동기는 당시 봉은사소유지의 일부분과 주변 농민의 토지가 혼동되어서, 이

         로 인해 소유권 분쟁이 일어났는데, 당시의 정부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이 친히 나와서 분쟁

         을 해결한 후 손수 문제의 토지를 봉은사에 돌려 주었습니다. 이 일을 찬양하기 위하여 비

         각을 건립한 것입니다.

봉은사 수련원

         날물곳에서 곳은 장소를 말함이니 날물이란 생수(生水)를 말함인것 같고  생수는 곧

         약수(藥水)요 감로수(甘露水)를 뜻함이니, 이곳은 약수터라 할 수 있다

         날물 약수가 나오는 곳

영각(影閣)이란 고승의 진영(眞影)을 모시고 추모하기 위해 모신 전각입니다.  이를 조사

      당(祖師堂)이라고도 한다.

영각에는 개산조로 여겨지는 연회국사(緣會國師), 조선불교의 중흥조 보우대사(普雨大師)

      와 서산대산(西山大師), 사명대사(四溟大師), 남호 영기율사(南湖永奇律師)의 진영(眞影)과

      영암(映岩) 큰스님, 석주(昔珠) 큰스님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미륵대불

미륵대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무처님이라고 합니다.

높이23m의 미륵대불은 전통적인 미륵하생 신앙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조성되었으며,

석재를 미륵 신앙의 중심지였던 익산에서 가져올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다례제는 헌향, 헌다, 헌화, 권공의식 등으로 진행됐다.

주지 원명 스님을 비롯해 봉은사 소임스님들과 신도 등이 참석했다.

다례재를 시작으로 봉은사 곳곳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와 문화축제가 펼쳐진다.

봉은사 개산대재 기간인 10월8일 오전 9시부터는 봉은사 판전에 소장된 화엄경판의 인경본을 정대하고

도량과 법계도 요잡을 실시하는 정대불사가 봉행되며 10월13~14일에는 대웅전 앞 특설무대를 중심으로

생전예수재가 봉행된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52호인 봉은사 생전예수재는 살아있는 동안 공덕을 미리 닦아

사후 고통의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왕생하길 발원하는 대표적 불교의식이다.

 

영산전

 봉은사에서 가장 전경이 좋은 곳입니다.

온후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고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하고 좌우에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셨으며, 양옆으로 16아라한(나한)이 옹위하고 후불탱화와 16나한도 등의 불화가 있다.

서양등골나물

봉은사를 창건한 연회스님의 볍명을 따 지은이름 전통차 체험장이다

보우당

도심 속 포교도량답게 봉은사 개산대재는 불자와 지역민이 어우러지는 문화축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역대조사 다례재를 시작으로 열흘 동안 각종 전시와 법회, 문화공연이 펼쳐집니다.

특히 봉은사 보우당에서 열린 한국 찻사발 108인전 특별전시회에서는 한국 도자기 문화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능소화 같은데 키도 작고 꽃도 작지만 화려하고 예쁘다

국화로만든 코끼리상

봉은사 앞 풍경 코엑스건물 저뒤에는 무역회관도 보이고 인터콘티넨탈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