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부근에 도자기와 기념품 상가들 일주문안에 도자기 전시장도 있는데
들어가 보질 못했다
화장실도 도자기 모형으로
원호장군(1533~1592)은 원주원씨로여주에서 태어난 조선중기의 무신이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머물고 있던 선조25년(1592)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는분연히 일어나 패주하는 관병과 민병으등 300여명을 규합하여
신륵사의 팔대숲 일대에서 도강을 기도하는 왜병을 섬멸하고 구미포에 집결한
왜적을 새벽에 기습하여 멸살시키는등 대승을 거두었다 이같은 여강 일대에서의
전투는 무인지경으로 북진하던 왜적을 육전에서 격파한 최초의 대승이었으며
국위를 선양하고 실추된 국민의 사기를 진작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느그후
여주목사겸 경기 강원 양도 방어사로 임명되었고 강원도로 전임하여 금화에서
분전하다 전사하였다 후에 좌으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장이다
신륵사는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물게 강가에 위치한 사찰이다 여주란 지명이
신륵사와 마암으로 유래된 것으로 지수와 관련이 있는 유명한 사찰이다
남한강가에 나와있는 멋진 건물이 나옹화상의 강월헌이다 신륵사 앞으로
조선시대에 4대나루였던 조포나루터가 있다
세심정 마음을 씻는다는 뜻이겠지
굳게 닫혀있는 관음전
범종각
종무소(적묵실)
판돈령 김병익 송덕비 사찰에 일조했으리라
이향나무가 4백년됐다나 5백년 됐다나 거의 사찰의 오래된 나무들은
5~6백년 됐다니 믿거나 말거나
명부전 내외부
석종앞에서
이 탑은 화강암을 깍아 만든 삼층석탑으로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여주 신륵사 경내 강변 암반에 위치해 있다.
탑을 지탱하고 있는 제일 아랫부분인 기단부는 한 장의 넓적한 돌 위에 사각형의 석재를 올려놓고
그 위에 덮개에 해당하는 상대석을 덮었다. 기단부 바로 위에 놓여 있는 탑신에 해당하는 돌의 네 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이 조각되어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힘들다.
그 위에 목조건축물의 지붕과 같은 형태로 옥개석을 덮었다. 옥개석은 기울기가 비교적 완만한 편이고
, 옥개서 아랫부분에 새겨진 받침은 3단 내지 4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형태로 3층의 탑신과 옥개서이 쌓여 있으나, 현재 3층 탑신석은 결실된 상태이다
. 탑의 맨 꼭대기를 장식하는 구조물인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고려 후기 나옹화상을 화장한 장소에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그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이 탑은 조각이 부드럽고 탑신부의 짜임새가 간결하여 고려후기 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강건너에는 리조트인듯
강건너에도 무슨 누각이 있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예전에 다녔던 산또래 산악회에서 경기일원 답사여행을 1박2이로 떠난다하여
동참하기로했다 총26명이 리무진으로 아침 6시20분에 출발 첫 기착지가 신륵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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