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정원을 들어가려다 만차라서 못 들어가고 이곳 다산 생가로 왔다
예전에 한 번 왔던 곳이라 생소한 곳은 아니다

다산 정약용선생께서 저술한 약 500여 권에 이르는 서책과 그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는
실학사상의 정신을 조형물로 형상화 하였다.꺼지지 않는 불/박철우 작

거중기
1792년 다산정약용이 왕명에 따라 1627년 독일인 선교사 슈레크가 저술한 기기도설에 실린 그림을 보고
고안한 운반도구로 밧줄과 드르래를 이용하여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 사용하였다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여 위에 네게의 도르래를 연결하고 아래 도르래 밑으로 물건을 메고 위도르래
양쪽으로 잡아당길 수 있는 끈을 연결하여 이끈을 물레에 감아 동시에 물레를 돌림에 따라 연결된
끈을 통하여 물건이 위로 들어 올려지도록 한 것이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 축조에 사용하였으며 다산선생의 과학사상과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전시모형은 축소규모로 제작되었다

생가 (여유당)사랑채

정약용의 생가, 여유당
1925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던 것을 1986년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호인 여유는 정약용이 1800년(정조 24) 봄에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은 것으로
여유당 기를 지은 후 명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정조는 형조참의로 있던 정약용을 무한 신뢰했으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막역지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약용에 대한 노론의 공격이 극에 달했던 시절, 제거하려던 명분을 찾다가 형 약전을 공격해서 관직에서
쫓고 말았다고 합니다.
정조는 계속 만류했으나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재가, 가족들을 데리고 마재 마을에 와서 여유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은신했던 것입니다.
이후 노론에 둘러싸여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안채

밖에서 본 생가


다산체험관과 기념관


정약용의 묘
부인 풍산 홍 씨와 합장한 원형의 묘로 남향하고 있고, 묘 앞에는 비 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갖춘 비가 있습니다.
비신에는 ‘문도공다산정약용 숙부인풍산홍 씨 지묘’라고 씌어 있습니다.
묘역 앞에는 1959년에 세운 묘비 2기와 자연석에 여유당이라 쓴 비가 있습니다.




묘지에서 바라본 생가

문도사(다산 사당)

강진 귀양지에서도 제자들을 길러내고 목민심서 경제유표 흠흠신서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정약용의 가계도와 학맥도

시대별 정약용의 활약상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를 간결하게 표현을 했다

글로 읽는 정약용

다산선생의 생각을 읽다

다산 마현에서 교유하다

다산 한강을 주유하며 조선을 발견하다

다산 해배되어 돌아오다


흠흠신서

경제유표

목민심서

치마폭에 매화를 그리다

매화병제도(1813년)
정약용이 아내가 보낸 빛바랜 치마로 하피첩(霞帔帖)을 만들고 남은 천으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지어 딸에게
선물한 것이다. 정약용은 강진에 사는 친구 윤서유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인 윤창모를 사위로 삼았다.
딸을 강진으로 데려와 친구 아들과 짝지어 주고 나서 흐뭇한 마음을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한 쌍의 멧새 그림과
시로 나타냈다

다산의 하피첩

봄날 수종사에서(좌) 여유당집(우)

포토존

다산정약용의 일대기(다산체험관에 있는 자료다)

이렇게 마재에 있는 다산 생가와 기념관과 묘를 둘러보고 마무리한다
잊혀진 꽃 다시 피다(AI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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