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연휴양림탐방 4차 첫날이다
12시에 천안아산역에서 만나 예산에서 점심을 먹고 당진 면천읍성을 돌아보고 삼길포항으로 해서
용현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코스다(8/20)

예산 소복갈비
주차장과 주위를 살펴보니 내부도 넓고 무척 알려진 집인 것 같다

갈비탕 1인분이 18.000원 맛과 량에 비해서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동문인 원기루

낙안읍성처럼 성안에 많은 주택들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데 성을 복원을 한다 해도 집들은
어찌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곳에 학교가 있었는데 학교를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고 객사를 복원을 했는데 그래서 앞의 마당이 넓게
잘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아래 정자는 군자정이라는 정자다

군자정
君子亭 : 1530년 간행된 신 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충렬왕 때의 지군사인 곽충룡이 못을 파고 연꽃을
심은 뒤 염계 주돈이의 시 ‘애련설(愛蓮說)’의 시어를 차용, 군자지(君子池)로 이름 지었다.
팔각정자는 1803년 유한재 군수가 세웠고, 그 뒤 육모정으로 축소되었다가 1994년 팔각정으로 복원했다.

당진 면천읍성(唐津 沔川邑城)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읍성이다.
1993년 12월 31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었다.
이 읍성은 1439년(세종 21년) 11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평지읍성으로 조선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중심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성벽은 자연석을 잘 다듬어 쌓았는데, 외부는 석축이고 내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고 쌓았다.
현 성벽의 둘레는 1,336m인데, 성을 쌓을 당시는 치성과 옹성의 길이를 합한 전체 길이는 1,564m 정도로 추정된다.
현재 옹성 1개소, 문 터 4개소를 비롯하여 치성 3개소가 확인되었으나 원래 치성은 7개소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벽의 바깥면에 옥천ㆍ진잠ㆍ석성 등 충청도 관내의 군현명칭이 새겨진 성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읍성을
쌓는데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면천읍성은 조선시대 성을 쌓은 규정이 가장 잘 반영된 우수한 유적으로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읍성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면천읍성은 이처럼 일부만 복원되었고 정말 복원하려면 아직 갈길이 먼 것 같다
아직 휴양림 입실 시간이 많이 남아 삼길포한에 잠시 들려 구경도 하고 회도 사려고 출발을 한다

삼길포항의 모습
중앙에는 배에서 회를 팔고 있는 어선들이다 저 멀리 하얗게 보이는 것은 당진 발전소 같다


수협 건물이 보이는데 언젠가 저곳 앞마당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우리는 이 규암호에서 광어와 도다리 해삼을 사서 휴양림에서 포식을 했다

좌측 반도 너머로는 왜목마을이 있다
예전에 보니 저 쪽에서 해가 뜨는 것 같다


입실수속을 마치고 출발하려 하는데 바로 옆 계곡 언덕에 노란 상사화인지
제주상사화인지 보여서 달려가 담았다

휴양림 연립동

물은 많지 않지만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계곡을 건너는 구름다리도 있고

들어오면서 보니 이곳은 옛날에 한번 와봤던 곳이다
입구에서 보니 서산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곳이고 보원사지가 있던 곳이다
예전에 포스팅을 한 곳이다 마애삼존불상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보원사지는 아래에 소개를 한다

삼길포항에서 사 온 회와 쫄면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소주도 한잔 했다


두꺼비 특유의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데 밟힐까 봐서 숲 속으로 유도를 해주었다

용현 자연휴양림
해발 678m의 가야산 줄기인 석문봉(653m), 일락산-상왕봉, 옥양봉~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사이에 있는
용현계곡 한가운데 자리해 심산유곡의 경치를 자랑하는 산림 휴양의 적지다. 능선을 따라 연결되는 등산로와
순환 임도는 서산 목장길과 연결되어 산책과 등산이 용이하고, 멀리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특히 계곡물이 맑고 깨끗하며, 참나무류가 울창한 휴양림 내에는 산림문화휴양관 등의 숙박 시설, 숲속 교실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와 개심사 등 백제 후기
문화유산과 접해 있어 서해안 관광 시대의 발달과 함께 자연 교육과 문화 유적 탐방을 겸할 수 있는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 용현이란 지명은 예로부터 강당을 설치해 글을 가르친 곳이라 하여 '강당이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사회·지리적 특성
용현 자연휴양림은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이용 시 약 1시간 30분, 대전에서는 2시간 소요, 평택, 안성, 천안,
서산 등 인근 중·소도시에선 약 1시간 소요, 서산 IC에서 10km, 국도변에서 3km 지점에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다.
주변에 '백제의 미소' 모티브가 된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개심사, 부석사, 수덕사 등 백제 후기
불교문화유산과 해미읍성 등 천주교 순교 성지, 오페르트 도굴 사건의 남연군묘 등 중요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아침에 휴양림을 철수하면서 이곳 보원사지로 왔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하며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법통을 이어왔던 절의 터.
보원사지
이곳은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보원사가 있었던 터로 천년의 세월과 많은 불교 문화재를 품고 있다.
이곳의 주요 문화재는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4m 높이의 당간지주와 오 층 석탑, 석조, 법인국사탑과
법인국사비가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그 가치가 크다. 한때 사찰에 머문 승려가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깊은 산속에 자리한 절터가 한눈에 아우르지 못할 만큼 크다.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과 철조여래좌상, 철불좌상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지금도 절터 곳곳에서 천년 고찰의 위용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특히 백제시대에는 이 지역이 중요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로 재건되어 가고 있다.
주변에는 같은 백제 불교 문화재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있고, 그 외에도 용현계곡, 가야산,
고풍저수지 등이 있다. 그리고 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과 천년미소길 순환 코스가 경유하므로 연계하여
관광해도 좋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고려철불좌상

보원사지 출토 물들


철조여래좌상

출토된 석조물들과 기와

화강암으로 만든 물을 담아 사용하는 수조다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석불좌상

인증도 하고

서산 보원사지 오 층 석탑
보물 제104호. 높이 900㎝. 기단은 2중 기단으로 하층에는 사자상이, 상층에는 팔부중상이 얕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상층기단 위에는 별석을 끼워 5층의 탑신부를 받치고 있으며, 초청 탑신에는
우주와 문비가 모각되어 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체감이 완만하며, 옥개석은 넓고 끝이 반전되어
백제석탑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상륜부에는 찰주가 남아 있으나 부재는 노반만 남아 있다.
탑의 형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보원사가 중건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법인국사탑비(좌측)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978년(경종 3) 건립. 전체높이 450㎝, 비신높이 240㎝, 너비 116.5㎝, 두께 29㎝.
장중한 느낌을 주는 거비로 이수와 귀부의 조각은 대체로 장쾌한 수법이다.
이수의 상부에 용연(龍淵)을 파고 용이 사방에서 모이도록 한 조각이 매우 특이하다.
법인국사 탄문(坦文)은 신라말·고려초의 명승으로 고씨(高氏)이며, 968년(광종 19)에 왕사, 974년에 국사가
되었고 이듬해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978년 왕은 ‘법인(法印)’이라 추시(追諡 : 죽은 뒤에 시호를 추증함)하고 ‘보승(寶乘)’이라는 탑명을 내렸다.
비문은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한윤(韓允)이 썼으며, 김승렴(金承廉)의 각(刻)으로 세워졌다.
글씨는 2㎝ 정도의 구양순류(歐陽詢流) 해서로 필력과 짜임새가 구양순을 재현시킨 듯하다.
고려 초기에는 구양순체를 쓴 대가가 많았으나 그중에서도 백미에 속한다.

보원사지법인국사보승탑(우측)
기단부의 하대석은 8각이며 안상 안에 다양한 자세의 사자상이 양각되어 있다.
중대석의 받침은 원형으로 구름에 싸여 있는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도식적인 표현이 보인다.
중대석은 장식이 없는 8 각기둥이며, 상대석에는 앙련이 양각되어 있다.
8각의 탑신석은 중대석처럼 좁고 높으며, 사천왕상·문비·인물상이 돌아가며 얕은 부조로 양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큰 편으로 귀꽃이 장식되어 있다.
탄문은 900년(효공왕 4)에 출생하고 975년(광종 26)에 입적한 화엄종 계통의 승려이다.
부도는 탑비(보물 제106호)의 건립이 978년인 것으로 보아 법인국사가 입적한 975~978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경기도 여주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977)에 비해 전체적인 조형이 섬약하다.

석가모니를 모셔둔 건물을 금당이라 한다 (대웅전이나 대웅보전)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4.2m. 두 지주는 원래 위치에 원래 모양 그대로 동서로 마주 보며 서 있다.
안쪽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지만, 바깥쪽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넓은 세로띠가 돋을새김 되었으며, 그 가운데에
다시 활모양의 세로띠를 새겼다. 옆면에도 가장자리에 세로띠를 돋을새김 하고, 그 가운데에 원조(圓條)의
세로띠를 조각하여 장식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두 지주의 정상 부분은 안쪽면 윗부분에서 바깥쪽면으로
내려오면서 활처럼 둥글게 깎았기 때문에 유려한 4 분원(四分圓)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당간지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杆)은 위아래 2군데에 간구(杆溝)를 마련하여 장치하였다. 윗부분에는 안쪽면의 꼭대기에
네모난 간구를 파서 간을 설치하였고, 아랫부분에는 지면에서 위로 1m쯤 되는 안쪽면의 마주 보는 곳에 역시
네모난 간공(杆孔)을 뚫어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당간을 받는 간대(杆臺)는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는데, 전체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네모난 높은 2층
받침대 위에 둥근 원좌(圓座)를 조각하였는데, 둥근 원좌는 얕은 2단으로 주위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고, 윗면
가운데에 둥근 구멍만 하나 있다.
Yanni (야니) -Tribute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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