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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경주 남산 칠불암

새갓골 주차장에서 18km 정도를 달려왔나 경주천년의 숲을 지나고 통일전 주차장을 지나 서출지

부근 좁은 길을 미로를 헤매듯 이리저리 돌아서 염불 사지 주차장에 도착 딱 2곳 주차구역이 비어 있다

한 곳에 주차를 하고 염불사 터는 내려오며 둘러보기로 하고 바로 올라간다 

농원까지는 평지나 다름이 없다 300m 정도는 평지길이다 

농원에는 안개나무가 보이는데 철이 지나 볼품이 없다 

가을을 알리는 듯 화살나무잎이 붉게 물드고 있다

농원이 끝나는지점에서 칠불암까지는 1.7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통행량을 체크하는 것 같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열암곡 오를 때는 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여기는 아직 비가 내리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점점 경사길로 접어든다

이제 마지막 코스 칠불암으로 오르는 급경사 계단이 심난하기만 하다 

이계단을 오르면서 조금 걷다 쉬고 조금 걷다 쉬고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어렵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실감 나게 하는 순간들이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돌계단이다 

예전에 한번은 무위봉에서 내려와 살펴보고 다시 올라갔었고 한 번은 무위봉에서 

이곳을 거쳐 통일전으로 내려갔기에 그리 힘든 줄을 몰랐고 또 젊었으니 어려움을 몰랐다 

칠불암이 조금 보이는데 아직도 돌계단은 계속 이어진다 높은 곳이라서 구름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지막 계단 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몇백 년은 되어 보이는 처진 소나무와 건너편 산자락은 구름으로

 뒤덥혀 있는 모습만 보인다 

창건연대 및 중창의 기록은 전하지 않고 있으나 현존하는 유물들로 보아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남산 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불상을 갖춘 곳이다.

칠불암이라 부르게 된 것도 마당에 있는 바위에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을 비롯하여 사방불(四方佛)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으로서, 1930년대에 지금의 암자가 세워졌다

유구(遺構)의 상태로 보아 원래는 석경(石經)을 벽면으로 세운 일종의

석굴사원(石窟寺院)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삼존불상은 4.26m 높이의 바위 면에 꽉 차게 부조한 마애불로서, 거의 환조(丸彫)에 가까운 고부조(高浮彫: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로 되어 있다. 본존은 높이가 2.6m나 되는 거대한 좌상이며,

두 협시보살도 2.1m로 인체보다 훨씬 장대하다.

본존은 머리가 둥글고 크며 소발(素髮)에 큼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풍만하여 박진감이

넘치며, 부풀고 곡선적인 처리로 자비로운 표정을 띠고 있다. 즉, 부풀고 두껍게 처리한 눈두덩이라든가 쌍꺼풀진

오른쪽 눈, 부드러우면서도 양감 나게 처리한 코, 세련된 입, 어깨까지 닿은 긴 귀 등 자비롭고 원만한 얼굴 모습을

성공적으로 묘사하였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으며, 어깨는 넓고 강건하여 건장한 가슴, 가는 허리와 더불어 당당하며 박진감 넘치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두 손이 유난히 큼직하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인데 상체의 옷주름은 곡선적인 계단식 주름이며, 옷깃이 반전(反轉)되었다. 하체의 옷주름은

큼직한 선으로 처리되었는데, 두 다리 밑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규칙적인 지그재그 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좌는 위로 향한 연꽃잎과 아래로 향한 연꽃잎의 이중연화좌로서 단판칠엽(單瓣七葉)은 잎들 사이의 잎에 중간선을

그은 특이한 형태로서, 9세기에 나타나는 독특한 연화문의 조형(祖形)으로 주목된다. 광배는 보주형(寶珠形)의

소박한 무늬를 두드러지게 표현하였다.

협시보살은 좌우 모두 동일한 모습에 비슷한 양식을 나타내고 있는데, 풍만한 얼굴, 벌어진 어깨, 당당한 가슴, 풍만하고

육감적인 체구, 유연한 삼곡(三曲)의 자세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왼쪽 보살은 꽃을 들고 있고 오른쪽 보살은

정병(淨甁)을 들고 있으며, 모두 본존 쪽을 향하여 몸을 약간 비틀고 있다.

이 삼존불 앞의 돌기둥에 새겨진 사방불은 높이가 2.23m 내지 2.42m 정도로 바위 모양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고 있는데,

네 상 모두 연화좌에 보주형 두광을 갖추고 결가부좌하였다. 동면상(東面像)은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으로 통견(通肩)의

법의가 다소 둔중하나 신체의 윤곽이 뚜렷이 표현되고 있다. 왼손에는 약합(藥盒)을 들고 있어서 약사여래로 생각된다.

남면상(南面像)은 여러 면에서 동면상과 비슷하나, 가슴에 표현된 군의(裙衣)의 띠 매듭은 새로운 형식에 속하며,

무릎 위의 옷주름, 짧은 상현좌(裳懸座)의 옷주름이 상당히 도식화되었다.

서면상(西面像)은 동면상과, 북면상(北面像)은 남면상과 서로 유사하나, 북면상은 다른 세 불상과 달리 특히 얼굴이

작고 갸름하여 수척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네 상의 명칭을 확실히 하기는 어려우나, 방위(方位)와 수인(手印)·

인계(印契)에 의하여 볼 때 일단 동면상은 약사여래, 서면상은 아미타여래로 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서

경주 남산 봉화곡 제1 사지 탑부재

현재 칠불암이자리한 곳이 봉화곡 제1 사지이다  칠 불사에 흩어져 있는 탑재들 로보면

최소 2기의 석탑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탑지붕돌(옥개석) 3매는 북쪽 계곡에 흩어져

있었는데 아래에는 5단의 응급 받침이 있고 윗면에는 다른 탑부재와 이어서 고전시키기

위한 나비장이 있었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북쪽 계곡에 있는 탑부재를 2019년에 정비하였다

(아래 설명문이 잘 보이지 않아 옮겼다)

이 불상군의 성격은 사방석주 각 면에 한 불상씩 사방불을 새기고, 그 앞의 바위에는 삼존불을 새겨 삼존불이 중앙

본존불적인 성격을 띤 오방불(五方佛)로서의 배치 형식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식적으로는 풍만한 얼굴 모습, 양감이 풍부한 사실적인 신체 표현, 협시보살들의 유연한 삼곡자세 등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1980년 지정)이나 경주 석굴암 석굴의 본존불좌상(국보, 1962년 지정),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보물, 1963년 지정) 등의 불상 양식과 상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불상군의 조성 연대는

통일신라시대 최성기인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나무위크에서

삼존불상과 아래 사면불상을 합해서 칠 불이라서 칠불사라 했다

출입금지로 돼 있어 멀리서 담아본 뒤쪽불상

삼성각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에 조성되어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조 마애불들로, 조성 기법 및 양식을 봤을 때 석굴암

비슷한 시기인 8세기에 만들어진 작품들로 보고 있다.

이 작품들이 소재해 있는 칠 불암이라는 사찰 이름 자체가 이곳에 조각되어 있는 사면불과 삼존불을 합쳐 부른 데서

연유하는데, 먼저 높은 절벽을 등진 뒤쪽 자연암석에 3구의 삼존불이 있고, 그 앞쪽에 솟아 있는 돌기둥의 네 면마다

각각 1구씩, 총 4구의 사면불이 조각되어 있다. 이와는 별개로 칠불 왼쪽에 석등과 탑의 부재로 보이는 돌들을 모아

세운 신라시대의 탑이 있다.

남아있는 유구(遺構)의 상태로 보아 원래는 석경(石經)을 벽면으로 세운 일종의 거대한 석굴사원(石窟寺院)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지금은 전부 파손되어 불상 이외의 유구들이 현존하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칠불암 마애불상군 앞쪽에도 불상군이 반듯한 축대 위에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곳곳에 기왓조각들이

산재해 있어서 원래는 불상군이 안에 모셔진 아름다운 목조 전각을 신라인들이 만들어놓았던 것으로 확인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나무위크에서 

이삼 층 석탑은 자료가 없다 

먼저 삼존불은 본존불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협시보살을 두었다. 높이 5미터, 너비 8미터쯤 되는 바위의 동쪽 면에

고부조로 새겨져 있다. 본존은 높이가 2.7m 정도 되는 거대한 좌상이며, 두 협시보살도 2.1m 정도 크기로 인체보다

훨씬 장대하다. 조각이 깊어서 모습이 똑똑하고 위엄과 자비가 넘치며 대좌의 앙련과 복련의 이중 연화무늬는

지극히 사실적이어서 마치 만발한 연꽃 위에 앉은 듯하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오른쪽 협시보살은 오른손에 보병(寶甁)을 들었고, 왼쪽 협시보살은 왼손에 연꽃을 어깨까지 들어 올리고 있다.

삼존불상을 새긴 바위 앞에 있는 사각 돌기둥에는 각 면에 사방불을 새겼는데 각각의 불상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각각의 높이는 동면상 1.18m, 서면상 1.13m, 남면상 1m, 북면상 72㎝이다. 삼존불에 비해 조각이

정밀하지 못하며 얼굴과 몸체는 단정하나 몸체 아래로 갈수록 힘이 빠진 느낌이 든다.

이중 동면상은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으로 왼손에 약합(藥盒)을 들고 있어서 약사여래로 생각된다.

서면상은 아미타여래로 추정하고 있다. 나무위크에서

통일신라시대 석불 조성의 최전성기인 8세기 전반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군으로,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66호)이나 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좌상(국보 제24호),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보물 제121호) 등의 다양한 석조 불상들과 동일한 양식을 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석조마애불 7 구로, 신라시대 석조공예술과 불교예술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에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 보물 제200호로 지정되었다가, 이후 2009년 9월 2일에 대한민국

국보 제312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나무위크에서

 

Msso Munich Symphonic Sound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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