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지난주말에 안동을 둘러봤는데 목요일날 산악회에서 무섬마을과
회룡포 가는길에 여기를 또 들리게 되어 지난번에 자세히 못봤던걸 보충 다시
몇컷 찍어올립니다 앞페이지에 월영교와 임청각 참고 하세요
상사병과 사랑의 자물쇠
예나 지금이나 구구절절 애절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독립운동을하면 3대가 거렁뱅이되고 친일을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한개마을에서도 여기서도 느낄수가있다 친일청산을 못한
뼈아픈역사 다시는되풀이 되지말아야겠다
〈무섬에 와서 보니...〉 -최대봉-
무섬에 와서보니 알겠네
메마른 눈짓이었을 뿐이었노라 떠나보낸 시간들이
여기 켜켜이 모래로 쌓이고
물길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는것을
둘 데도 놓을 데도 없이 정처 없는 마음자리일 때
하도 외로운 발길이 하릴없이 물가로 향할 때
여기
그리움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무섬에 와서 보니 알겠네
백년의 별빛이 해우당 지붕에 와송으로 피어나고
천년의 달빛이 물 위에 안개다리를 짓는
그 아득한 적멸 속에서도
나는 너의 웃음에 눈 감고
너의 눈물을 가두었다네
그러나, 오늘, 나
무섬에 와서 보니 알겠네
저물녘이면 강물도 모래와 더운 숨결로 몸을 섞고
밤새도 더러는 물을 건너 숲으로 가 뒤척인다는 것을
떠날 때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다짐하지만
덧없이 흐르는 이 물가에 앉으면
그 눈빛 글썽이며 다시 돌아 와
너를 생각하네
오늘, 무섬 이 모래 둔덕에 앉아
날이 가물어 물이 없다보니 백사장에는 잡풀만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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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리가 건설되기 전에는 모두 외나무 다리를 건너서 다녔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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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의 문화재 |
무섬마을의 전통 기와가옥은 ‘ㅁ’자형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를 띤다. 있어 대문 밖에서는 집안의 생활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높게 지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게 하는 것이 특징인데, 유교적 격식을 엄격하게 거주환경에도 적용한 결과이다. 전통가옥들은 그 집 주인의 신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사랑채의 기둥을 차별화하였는데, 같은 양반이라도 벼슬한 사람이 거처하는 집의 사랑채에는 원기둥을, 벼슬을 못한 사람은 각진 기둥을 세웠다.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산맥의 정기를 고스란히 이어받기 위해 가옥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
영주 수도리 김뢰진 가옥
문이 잠겨 들어갈수없다
Le Ruisseau de Mon Enfance(그리운 시냇가)/Adamo
빠지지 않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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