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근대문화역사도시 조성사업의 하나로 2012년 늦가을, 월명동에 세워진
근대역사체험공간 ‘고우당(古友堂)’. ‘곱다’라는 뜻의 전라도 방언인 ‘고우당께’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오랜 친구의 집’이라는 아름다운 뜻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 곳은 일제시대, 나라를 잃고 서러웠던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고자 만든
공간이기도 하다. 2013년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우수 숙박업소 ‘굿스테이’로
지정되기도 하면서 ‘고우당(古友堂)’은 지어진지 1년 만에 군산의 새로운 관광명소
로 떠오르고 있다.
군산 근대역사경관조성지구 '고우당'
군산 근대역사체험지구인 월명동에 들어서자 아파트 단지 근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본식 가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 쌀 수탈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일본인들이 집단 거주했던 곳이며, 아직도 동네 인근에는 일본 매점과 대포형
정종 주점 등 일제 시대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가슴아픈 역사의 순간 순간이
곳곳에 남아있는 군산. 현재의 우리는 이러한 흔적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군산시는 ‘고우당(古友堂)’을 지으며 답을 대신했다. 뼈저리게 아팠던 역사의 한
순간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동시에 그 아픔에 매몰되지도 않겠다는 전환의 메시지다.
부끄러웠던 역사의 한 순간,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덮어두는 대신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여
오늘의 대한민국과 접점을 시도한 군산시는 근대문화역사도시 조성사업을 착수했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근대역사체험공간의 하나인 고우당이 지난 2013년 가을 오픈했다.
‘ 아픔이 희망으로, 과거가 미래로 피어나는 시공간(時空間)…’ 고우당 브로슈어에
담겨있는 문구다. 이러한 문구처럼 고우당이 군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중심에서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또 하나의 지역대표명소로 발돋움하길 기대해본다.
군산의 새로운 명물로 빠르게 입소문 타…
“근처에 관광명소로 한국 최초의 빵집을 잘 알려진 ‘이성당’, 전국 3대 짬뽕 중 하나로 유명한 ‘복성루’,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등... 군산의 대표적 명물이 거의 이 곳, 고우당과 근접해 있습니다.
근대역사체험공간 시범단지로 조성되고 있는 이 곳이 서로 연계된다면 군산만의 멋과 맛이 살아있는
특색있는 관광 상품이 많이 개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3 우수 숙박업소인 ‘굿스테이’로 지정
‘고우당(古友堂)’은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우수 숙박업소인
‘굿스테이’로 지정된 곳이다. ‘굿스테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대표적
관광 인프라인 숙박 시설의 경쟁력을 높이고 건전한 숙박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제정한
고유 브랜드로 청결과 친절, 부대시설의 평가로 지정된다. 일본식 건축양식으로 5동 22실
규모로 지어진 고우당은 쾌적한 환경과 친절함으로 수준급 숙박 문화를 선도한 능력이
인정되어 2013년 이 같은 영예를 안았다
고우당 뜰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군산의 건축물을 보면 우리나라의 생활상과 일본의 건축양식, 한국의 건축양식이
어우러져 독특한 멋을 나타낸다. 현재 고우당의 건물 역시 당시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것도 있고, 일부 건물은 예전부터 있던 건물을 보수하기도 했다
”고 전한다. 고우당이 이제는 전국의 건축학도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정원도 멋지게 잘 꾸며 놓았네
군산 출신의 시인, 고은의 흔적이 곳곳에…
고우당 내에는 ‘세노야’라는 일본 선술집도 자리하고 있다. ‘세노야’란 일제시대
일본 어선들이 남해에서 멸치잡이를 할 때 노래하던 어로요(漁撈謠, 민요의 일종)의
후렴구를 일컫는데, 이는 군산 출신의 민족 시인 ‘고은’이 1970년대 발표한 시
제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고우당 안에 자리한 ‘세노야’에 들어서면 고은 시인의 책, 사진, 시가 가득하다.
이곳이 ‘작은 고은 시인 문학관’으로 불리우는 이유다. 여행에 지친 노곤한 몸을 술 한잔과
함께 풀며, 고은 시인의 시(詩)를 음미해보기 좋은 곳이다. ‘세노야’를 운영하는 주인이
고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셔서 가게를 고은 선생님의 시와 사진, 저서 등으로 직접 꾸미고
그릇도 1930년대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옹기 그릇을 쓰고 있다고 한다. 태인초교카페에서
옥구 농민 항일항쟁은, 1927년 11월 옥구 서수면의 이엽사 농장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으로
가혹한 일본인 지주의 수탈에 맞서 저항한 대표적 소작농들의 저항운동입니다.
옥구 농민항쟁은 이엽사 농장이 수확량의 75%를 소작료로 요구하여 소작농들이
서수 농민조합의 간부를 중심으로 이엽사 측에 소작료 인상에 항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인 관리인이 농민들의 요구사항을 거절하자 농민들은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기로 결정,
일본 경찰이 농민조합장 장태성을 검거하자 지도자의 검거에 분노한 소작농 500여 명이
서수 주재소를 습격해 검거된 조합장을 구출합니다. 그러자 농민조합의 간부들은 일본 경찰에
의해 다시 검거되고 모두 재판에 회부됩니다.
옥구 농민항쟁은 조선인 소작농이 소수의 지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본인
경찰에게 직접 맞서 적극적으로 항쟁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항일 독립운동입니다.
나라를 잃은 백성의 설움, 소작인들은 노동자, 학생들과 합류하여 일본 경찰을 상대로 농민
간부 석방을 요구하며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일본 경찰은 소작인을 80여 명 추가로 더 검거하여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1903년 2월 미국 예수교 남장로파 선교회가 한민족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중등교육과정의 영명학교를 지금의 군산시 구암동 언덕기슭에 개교했다.본래
궁멀(구암동)에 미국인 선교사 전킨목사의 사랑방에서 여러명의 소년들을 모아 교육사업을
한 것이 이 학교의 출발점이다. 이들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사상과 민주주의 사상 등 신학문
보급통로 역할을 한 영명학교는 한강이남 최초로 3.1운동의 불을 지핀 자랑스런 역사를 지녔다
. 군산의 3.5독립만세운동은 본래 군산 장날인 3월6일로 계획됐다. 영명학교출신으로
연희전문학교 의학부 학생인 김병수가 모교에 와서 자신의 은사 박연세선생 등에게 독립선언서를
전하면서 급박하게 돌아갔다.이들은 독립선언서 등을 전달받아 군산에서 거사계획을 수립했으나
이를 눈치챈 일경의 급습을 받고 연행되면서 3.5만세운동이 무산될 지경에 놓였다.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이 학교 김윤실교사와 학생 등은 곧바로 거사를 하루 앞당겨 3월5일 교사와 학생들의
석방과 민족자주를 외치며 영명학교에서 출발, 인근 설애장터를 거쳐 군산경찰서까지 진출한뒤
일본 헌병대와 정면충돌했다.이때 시위주동자들중 90여명이 검거되는 상황을 맞는다.
이사건이 한강이남지역 최초의 3.1운동이다.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적극 나서 도내 민족운동을
주도했고 일제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고 폐교될 때까지 민족운동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해왔다
. 한편 초기 영명학교는 4년제 고등과와 2년제 특별과를 병설, 1911년과 1913년 각각 첫 졸업생이
나왔으나 1919년 3.1운동의 영향으로 특별과는 폐교됐다. 이 학교는 다시 1921년 보통과로
개편됐다가 1940년 10월 신사참배를 거부, 곧바로 폐교되는 상황을 맞아야 했다.이같은
자랑스런 독립운동에 앞장선 영명학교는 지난 70년대 후반 교명을 바꿀때까지 긴 휴면상태에
빠져든다(현제 군산제일중고교)전북일보에서
항쟁관에는 그시절 소작인항쟁 시마타니농장 항쟁 삼일운동 만세의 흔적이 있다
사마타니 농장 창고 근처에까지 갔는데 못보고 돌아왔다
일본식 칠층 석탑도 보이고 영산홍도 곱게 피어있다
들어가지 말라는 가이드라인 때문에 억지로 들어 갈 수도 없고
정원도 잘 꾸며저있다
겉보기엔 그냥 전형적인 일본주택 히로스가옥.
군산시 신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촌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중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히로스 게이샤브로 주택은 재산의 99%를 쏟아 부어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구석구석 아직도 꼼꼼히 배인 주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깊이 각인된 잔인한 일본인이 아니라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었다는 이유 때문일까.
부유층의 대부분을 이루던 대지주가 아니라 포목점을 했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밖에서 보이는 2층 목조건물은 다른 지역에 있었다면 모르되 이 지역에서는 별 특이할 게
없는 오래된 일본식주택일 뿐이다. 그러나 작은 나무대문을 들어가 앞 뒤 정원과 집안 1,2층
곳곳을 돌아보면 밖에서와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선 잘 가꾸어진 정원의 쭉쭉 뻗어있는 오래된 모과나무와 측백나무 사이로 꽝꽝나무와
주목과 영산홍이 딱 있을 자리에서 단풍지거나 열매를 가득안고 서있다. 그 사이를
지날 수 있도록 디딤돌이나 디딤목 또한 딛기 좋은 간격으로 놓여있어 한발 한발 딛는 느낌이 좋다.
정원 속에 작게 자리한 연못자리는 물도 고기도 없는 것이 서서히 비껴가는 가을느낌을 준다.
우리가옥으로 치면 사랑채 구실쯤 한다고 할까? 작은 네모 칸 유리로 밖에서도 훤하게 보이는
아래채의 반질반질 윤나는 마루와 정갈한 다다미방은 편히 앉아 차 한 잔 마시고픈 생각이 인다.
안채는 완전 미로다. 복도식 긴 마루와 좁은 계단, 앞뒤로 셀 수 없이 많은 방들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데 옛날 이집의 살림 규모를 느끼게 한다. 해방이 되어 본국으로 강제송환 될 때 베푼 인심덕에
조금 더 머물 수 있었다는 말이 있지만 결국은 떠난 일본인 히로스 게이샤브로의 집에 오늘도
넘어가는 가을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전북일보에서
전에는 개방을해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나본데 오늘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폐쇄했나보다 굳게 잠겨있다 창문이 약간 열려 틈새로 들여다봤다
방 천정은 이렇게 마루판으로 돼있다
아래층 방바닥은 우리의 한식방과 같다 그동안 개조한 것일까?
외부에서 바라본 히로스가옥 대지주들과 달리 주위에 많은 배품을 주었다는 집주인
대문이 안채에 비해 잇는듯 없는듯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다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
일까 못사는 사람들을 배려 해서 일까 우리 한옥 그리고 사찰을보면 솟을대문에
일주문부터 기를 팍팍 죽이는데 대문치고는 참으로 초라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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