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youtu.be/6NM3M2F8QaE
Every day my Papa worked
to help to make ends meet
to see what we could eat
keep those shoes upon my feet
매일 내 아버지는 일만 하셨어
살림을 꾸려 나가기 위해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내발에 신발을 신겨 주기 위해
Every night my Papa
would take and tuck me in my bed
kiss me on my head
after all my prayers were said
매일 밤 내 아버지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셨어
내가 나의 기도를 다 마친 후에는
내 이마에 키스를 해주셨지
Growing up with him
was easy time just flew on by
The years began to fly through
his age and so did I
아버지와 함께 자란 시간들은
무척이나 행복하게 흐르는 시간들이었어
그의 나이와 더불어 세월도 흐르기
시작했지, 나도 나이가 먹어가고
I could tell that Mama wasn't well
Papa knew and deep down
so did she, so did she
When she died
난 엄마가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했지
아버지는 알고 계셨고 무척 상심하셨어
엄마도 그러셨어, 엄마도
결국,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Papa broke down and cried
All he said was
"God, why not take me?"
Every night he sat there sleeping
아버지는 좌절하며 울음을 터뜨리셨어
그가 한 말은 오직,
"신이여, 왜 날 데려가지 않았나요?" 이었어
매일밤 아버지는 흔들의자에 앉아
in his rocking chair
He never went upstairs
Oh, because she wasn't there
Then one day my Papa said
잠이 들곤 하셨지
그는 결코 윗층에는 올라가지 않으셨어
그곳엔 엄마가 안계시기 때문이었지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말씀하셨어
"Son, I'm proud
the way you grow
Make it on your own
Oh, I'll be okay alone
"아들아, 난 네가 자라나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네가 하고 싶은대로 살아가렴
난 어?든 ?챦을 거니까."
Every time I kiss my children
Papa's words ring true
"Your children live through you
They'll grow and leave you, too"
이제 난 내 아이들에게 키스할 때마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들이 절실히 느껴져
"너의 자식들은 너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지만
그들도 언젠간 자라서 널 떠나는거란다.
I remember every word
My papa used to say
I live them everyday
He taught me well
난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지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시곤 하셨어
난 매일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며 살아가지
아버지는 내게 살아가는 방식을
that way
Every night my papa would take
And tuck me in my bed
Kiss me on my head
너무 잘 가르쳐 주셨던거야
매일 밤 내 아버지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셨어
내가 나의 기도를 다 마쳤을 때
When my prayers were said
Every night my papa would take
And tuck me in my bed
Tuck me in my bed
내 이마에 키스를 해주셨지
매일 밤 내 아버지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셨어
이불을 덮어 주셨지
-----젊은시절의 폴 앵카-----
폴 앵카(Paul Anka)
폴 앵카는 1941년 7월 30일 캐나다의 오타와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교회 성가대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피아노 교습을 받으며 음악적 이론과 기초를 다졌다. 12살 때부터는 정식으로 대중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였다.
14살 때에는 자작곡을 들고 퀘백(Quebec)주의 헐(Hull)에서 열린 노래경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부모님의 차량을 훔쳐 타고 먼 거리를 운전해 대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56년 첫 싱글 "I Confess"를 발표했으나 기대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뉴욕으로 이주하여 캐나다 그룹 루버 보이스(Rover Boys)에서 활동을 했다.
1957년 솔로로 전향한 그는 ABC 방송국의 프로듀서인 “돈 코스타(Don Costa)" 앞에서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이때 부른 노래가 ”Diana"다. 직접 자작곡한 “Diana"는 자신 보다 3살 연상이었던 보모(Babysitter)에 대한 짝사랑의 마음을 담은 노랫말로 송가 형태의 곡이었는데 ”돈 코스타“는 무척 흡족하게 여기어 곧바로 음반 녹음 작업으로 들어갔다.
이 데뷔곡인 "Diana"는 13주간 계속해서 미국 싱글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성풍적인 인기를 끌며 화제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대히트를 친 “Diana"의 음반으로 폴 앵카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10대 소녀 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팝계를 석권하였다.
이후 폴 앵카는 계속 곡을 만들어 “카니 후란시스(Connie Francis)" 바비 라이들(Bobby Rydle)” 탐 죤슨(Tom Jones)" 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등 유명가수들에게 곡을 주었고 마음에 드는 곡은 직접 자신이 부르기도 했다. 특히 Frank Sinatra의 "My Way"는 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유명한 곡이다.
1962년에는 전쟁 영화 “사상 최대의 작전” (the Longest day)에 배우로 직접 출연하여 테마뮤직을 작곡하고 음악과 배우로서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또 국내에서는 [Crazy Love] [You are my Destiny] [my Home town] 같은 곡이 연속 사랑을 받고 히트 하였다.
60년대 들어 초기의 10대 열풍이 사그라지면서 그는 영화에 출연하거나 나이트클럽에서 연주를 하고 TV 쇼를 진행하면서 연예인으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1968년 "Happy"라는 싱글을 발표하고 팝계를 떠나 출판 사업에 손을 댄다.
잠시 팝계를 떠났던 폴 앵카는 1974년 지금 흘러나오는 대히트곡 [Papa]로 복귀 하지만 예전만큼 활발한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1981년 앨범 [Both sides of love]를 발표 하면서 자신이 계속 음악 창작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린다.
지금껏 그의 음반은 전 세계에서 1500만장이나 팔려 나갔고 그의 음악은 세계에서 8초마다 한 번씩 울려 퍼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팝 명곡"은 세대를 뛰어넘는다.
한국에서도 그의 노래는 오랜 세월동안 변치 않은 많은 사랑을 받았고 특히 애절하게 부른 “Crazy Love"와 "Diana"는 아직도 아련한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어 올드팬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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