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충청.대전

맹씨행단과 추사고택

                          충남 아산시배방읍 중리 300

 

 

                     명재상의 청빈한 삶이 그대로 느껴지는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변형되어 H 자를

                  이루고 있다. 대청 위의 높은 용마루가 맞배지붕이며 옛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은

                  기둥에서 솟을 합장이 있는 마루대공을 올린 수법으로 민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예이다.

                  또한 사면에 모두 넉살 문짝과 앞면에 네짝 중 한칸만이 사람이 드나드는 문짝이며

                  양쪽으로 작은 온돌방이 있으며 부엌채와 헛간채, 사랑채는 사라진 형태이다.
  

 

 

                   맹사성이 심었다고 전하는 은행나무의 수령은 600년이 넘었다. 은행나무 앞으로는

                너른 마당이 펼쳐지고 H 형태의 고택이 앉아 있다. 처음에 이 집은 고려의 충신 최영장군의

                집이었다. 1330년 최영 장군의 아버지 최원식이 지었다고 하니 680년의 역사를 가진 집이다.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따른 정란으로 최영장군이 죽음을 당한다. 주인 잃은 집은

                비어 있었다. 맹사성의 아버지인 맹희도가 정란을 피하여 한산을 거쳐 이 집에 은둔하며

                살게 된다. 맹사성은 이 곳에서 자랐고 최영장군의 손녀와 결혼한다.

 

 

 

 

 

                                                                              추사 고택으로이동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8

                      조선 후기 학자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유적으로 추사고택과 이 일대를 말한다.

                      이곳에는 추사의 옛집을 비롯하여 화순옹주와 남편인 김한신의 합장무덤이 있고,

                      그 옆으로 정조(재위 1776∼1800)가 내린 열녀정문, 백송(천연기념물 제106호),

                      김정희의 무덤이 있다.

                      김정희은 북학파인 박제가의 제자로서 중국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에

                      입각한 학문을 연구했다. 24세 때에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 청나라에 가서 고증학과 금석학

·                     서체 등을 배웠으며, 순조 16년(1816)에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여 밝혀 내었다.

                      헌종 6년(1840)에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9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연구해 온 추사체를 완성하였다. 유배생활에서 돌아와 아버지 무덤이 있는 과천에서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의 고택이다. 원래는 99칸집

             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면적 265㎡ 가량이며 안채와 사랑채·문간채·사당채가 있다.

             동쪽에 사랑채를, 서쪽에 안채를 배치하되 안채 대청의 방향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향이고 사랑채는 남향이다. 안채는 6칸 대청과 2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과

             안대문·협문·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이러한 ㅁ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에 분포된 이른바 대갓집 형태이다.

             안방 및 건넌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의 천장은 다락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ㄱ자로 되어 별당채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지붕은 긴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지형에

             따라 기단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사랑채의 함실

             부분에도 맞배지붕에 이어붙인 지붕이 기능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고택은 영조의 부마이며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金漢藎)이 건립한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다. 후손이 세거(世居)해 오다가 1968년

             타인에게 매도된 것을 충청남도에서 1976년 문화재로 지정하고 동년 4월 25일

             매수하였다. 집 안에 있는 김정희의 영정과 도장, 염주, 붓과 벼루 등은 일괄

             보물 제547호로 지정되어 보관되고 있으며, 고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가

            어려서 공부했던 절 화암사가 있다.

             고택의 오른쪽 담장에 달린 쪽문을 나서면 대대로 마셔온 석정(石井)이 있고, 거기서

             100m쯤 가면 김정희묘(문화재자료 188)가 있다. 방마다 모사품이기는 하나 선생의

              유묵이 걸려 있다.

 

 

 

 

 

 

 

 

                                                 복사본이겠지만 기둥마다 추사선생의 글씨가 걸려있다

 

 

 

 

 

 

 

 

 

 

 

 

 

 

 

 

 

 

 

 

 

 

 

 

 

 


 

 

 


'충청.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숭산 수덕사  (0) 2016.10.21
추사고택과 기념관  (0) 2016.10.20
아산 외암마을 후속  (0) 2016.09.30
현충사 기념관과 곡교천 은행나무  (0) 2016.09.28
이충무공 묘소와 현충사  (0) 201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