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이 빚은 태고적 신비 ‘한탄강’ 한탄강(漢灘江)의 발원지는 다름 아닌 휴전선 건너 북한 평강군
장암산이다. 136㎞ 길이 한탄강은 철원과 포천,연천을 지나 전곡에서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지근거리에 있는 직탕폭포 .노동당사.백마고지 전적지를
시간 제약으로 못 보고 가는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탄은 크다, 맑다, 아름답다 등 좋은 뜻은 다 가진 은하수 한(漢)자에 여울 탄(灘)자를 쓴다.
결국 좋고 큰 여울(大灘)이란 뜻이다. 철원을 도읍지로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강가에서 ‘한탄’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설과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한이 서렸다 하여 한탄강으로 불린다는 설이 있다
오늘의 트레킹은 여기 태봉교에서 시작된다,산악회 코스는 고석정 주차장 까지이지만
지난해에 보지 못했던 순담계곡을 보기위해 조금 빨리 걸을 생각이다
가운대 보이는 것은 태봉교의 번지점프장
이렇게 물살이 급한 곳은 얼음이 얼지 않아 뾰쪽바위들 사이로 가려니 무척 어렵다
송대소 주상절리
지나온 풍경들도 담아보고
오늘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증이다
송대소 주상절리 절벽에는 이렇게 인공 얼음기둥을 만들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한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며 빙판길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만양 즐겁기만 하다
송대소 주상절리
송대소에 위치한 주상절리의 형태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수직으로 쪼개짐이 발생하여
만들어졌으며 대체로 5~6각형의 기둥형태가 흔하다. 철원은 옛 하천을 따라 현무암이 흐르고, 이 현무암을
하천이 다시 깎으면서 절벽을 만든 형태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관찰할 수 있다.
철원이 자랑하는 수직적벽은 무엇보다 높이 30m 위용을 자랑하고, 그 절벽 높이보다 더 깊어 보이는
비취색 한탄강물의 조화는 보는 이의 탄성을 절로 나오게 한다.
또한,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의 물줄기를 따라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강위로 걸으면서 보는 푸른 하늘과
반영되는 모습은 마치 구비치듯 돌아서는 한탕강과 잘 어우러져 펼쳐진 협곡의 풍경은 신비롭기만 하다.
한탄강은 추가령 현무암으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으로 선캄브리아 시대부터 신생대까지의
다양한 지질 지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상 절리가 곳곳에 분포하여 관광지로서 뛰어난 매력을 갖추고
있으며,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은 한탄강의 여러 계곡 중에서도 드물게 하천의 바닥과
양쪽 절벽 모두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천연 기념물 제436호로 지정되었다.
중간중간에 진행요원과 안전요원들이 쉴 수 있는 초소도 있다
부교를 건너고 비탈길을 걸으며 많은 인파가 이동을 하는 모습들
거대한 바위군들 오랜 세월동안 물에 스치고 물의 힘에의해 부디치며 반들반들한 모습으로 변했다
봄이 오는듯 버들강아지도 꽃망울을 터트리기 일보직전에 있다
버들강아지 눈 떴다. 봄아가씨 오신다. 연지찍고 곤지 찍고. 버들강아지 오신다는
어느분의 싯귀처럼 봄이 오나보다
저멀리 주상절리 작은 동굴에 자연 고드름이 있어서 줌인해보았다
마당바위
물살이 가파른 곳에는 얼음이 얼지 않아 강변의 험한길을 돌아서 가야한다
썰매를 만들어 왔는지 빌려 왔는지 어느 산악회 한분이 계속 썰매로 이동을 한다
군데군데 정자도 보이고
펜션도 보이고 억새밭과 모래사장을 걸을 때는 먼지가 마세먼지를 능가한다
여기는 먹거리장터 몸이 차거고 배구픈 사람들의 구세주다
눈꽃으로 장난을치는 천진난만한 아낙네들
오랫만에 보는 섭다리도 만나고
소원을 비는듯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돌답들도 정겹게 다가온다
여기는 그래도 얼음이 제대로 얼어 전진하는데 애로가 없다
여기는 강의 깊이가 36m 되는 곳도 있다니 조심해야할 구간이다
기발한 아이디어 등산할 때 식사시간에 사용하는 접이식 의자를 썰매대용으로 타는
모습이 참 귀엽다는 생각이든다 중심이 잘 못 잡혀 넘어저 일으키며 웃는 모습도 귀엽고
여기가 얼음축제 행사장이다 예전에 산행하며 한번 와 봤던 곳이라 반갑기도 하다
여기서는 썰매도 대여해 주나보다 환한 웃음 저보다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유일한 어린이 놀이기구다
다들 인공으로 만들어 진 것들이지만 눈을 즐겁게 해주니 이 또한 기쁨이 아니겠는가
얼음턴널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상업의 요충지였던 에페소스는 기원전 550년부터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강력한 제국 중의 하나로
부상한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기원전 560~546년 재위)에 의해 점령되었다. 크로이소스는 자부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에페소스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새로운 신전의 건축을 명령했는데 이것이 아르테미스신전이다.
아르테미스신전은 그리스 시대에 가장 큰 신전이었음은 물론 대리석으로 만든 최초의 신전이다. 높이 18미터의
기둥 127개를 사용한 길이 120미터, 폭 60미터의 대형 건축물이다. 현대인에게 위압감을 주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의 길이가 69.50미터, 폭 30.80미터, 높이 10미터 정도이며 대리석 기둥을 58개 사용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신전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전의 자재는 아름답고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 사용했으며 중앙의 넓은 홀로는 네 방향으로 난 대리석 계단을 딛고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로마 원형극장 콜로세움
콜로세움는 72년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원형 경기장으로, 80년 베르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총 5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기장이 그 시대에 지어졌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80여 개의 아치문을 통해 관중들이 입장하는 데 30분, 퇴장하는 데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개폐형 지붕과 같은 놀라운 시설을 갖춘 콜로세오는 2007년 새롭게 선정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1층부터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는 이 경기장에서는 맹수의 시합이나 검투사 경기가
개최되었고, 황제부터 노예까지 모든 로마 시민들이 함께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신분에 따라 자리가 달랐으며,
1층은 귀빈석, 2층은 일반석, 3층은 입석으로 이루어졌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검투사들의 경기가 계속되다가, 450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경기를 중지시키면서 끝이 난다. 이후 콜로세오는 지진의 피해를 입기도 하고 중세 교회를 짓는 재료로
쓰이기 위해 외벽 절반 이상이 뜯기게 되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는 못해 아쉽지만 2,000년 전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의 경이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올림피아의 제우스상
그리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만든 2개의 걸작품 중 하나(다른 하나는 파르테논의 아테나 상)로서 그리스 서부의
올림포스 산에 있는 거대한 제우스 신전에 놓여 있었다. 높이가 거의 12m에 이르며 시더 목으로 만든 뒤 흑단·상아·금·보석
등으로 정교하게 장식하여 만든 것으로 옥좌에 앉은 제우스의 모습을 나타냈다.
오른손에는 니케 상, 왼손에는 독수리가 앉아 있는 홀이 들려 있었다. 8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여기에 표현된
신성한 위엄과 관용으로 유명하다. 1950년대 올림포스에서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BC 430년경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신전은 AD 426년에 파괴되었으며, 조각상은 그당시 파괴되었거나 아니면 그로부터
약 50년 뒤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화재로 파괴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복제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스터섬의 모아이 상
이스터 섬에서 조각되었고, 종교적인 의미는 불확실하다. 조상들을 해골 형태로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상에는 '
모아이 카바카바'(남성)와 '모아이 파에파에'(여성) 형태가 있다. 때때로 다산을 기원하는 의식에 쓰였으나 추수제에
더 많이 쓰였으며, 이때 처음 수확한 과일을 예물로 이들 주변에 쌓아놓았다.
이 두 공식축일 사이에는 모아이 상을 나무껍질로 짠 보자기에 싸서 개인 집에 보관하면서 장식용이나 개인예배용으로
썼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섬사람들은 모아이 상을 인형처럼 바로 세워 들고 가볍게 춤추는 동작을 했다고 한다.
'모아이 카바카바'는 살이 썩어 갈비뼈와 척추가 드러난, 등이 구부정한 모습을 했다. 머리는 획일적인 형태로 되어
있는데, 튀어나온 짙은 눈썹 밑에 둥그런 눈이 있고, 눈은 보통 조개껍질을 박아 만들었다. 옆모습을 보면 크고 뭉툭한
매부리코가 튀어나왔고, 둥근 콧구멍은 이빨이 빠진 채 벌어져 있는 입을 향해 뚫려 있다.
로도스의 거상
로도스가 데메트리우스 폴리오르케테스의 오랜 포위(BC 305~304)에서 풀린 것을 기념해 만들었는데 주재료는 청동
(철로 보강하고 돌로 무게를 더함)이며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상이다. 항구에 세워졌던 이 동상은 높이 30m가 넘으며 상상에 의해
만든 한 돋을새김 작품이 표현하듯이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항구 입구에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기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은
중세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동상을 건조하는 데 12년이 걸렸으나(BC 292~280경) BC 225년경 지진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거상은 AD 653년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다가 그해 로도스를 기습한 아랍인의 손에 파괴되어 청동은 조각으로 팔려 나갔다. 그 분량은
낙타 900마리에 실을 수 있는 양보다 많았다고 한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
세계 7대 불가사의중의 하나인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의 국왕과 왕비 등 왕족의 무덤이었다.
현재 약 80 여 개의 피라미드가 남아 있는 가운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쿠푸’ 왕의 피라미드’이다.
가장 거대한 이 피라미드를 가리켜 ‘대 피라미드’ 또는 ‘제1 피라미드’라고도 부른다.
‘쿠푸’ 왕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남서쪽 15 km에 위치한 기제에 최대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높이만 146.5 m(현재 137 m)이고, 밑변도 230 m에 이른다.
평균 2.5t의 돌을 무려 230 만개나 쌓아 올렸다.
이러한 대 건설 사업에는 최소한 10 만 명의 노예가 석 달씩 교대로 해서 10 년이 걸렸고, 돌을 높게 쌓아
올리는데도 20 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쿠푸왕 피라미드는 도굴방지를 위해 입구를 돌로 막아서
오랫동안 내부의 구조를 알 수 없었는데 818 년 이집트의 회교 왕 ‘알 마문’이 피라미드에서
자고 있다고 하는 ‘쿠푸’ 왕의 막대한 보물을 찾아 북쪽 사면(斜面) 밑을 파 내려갔을 때 안의 통로를
찾아 드디어 왕의 현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현실에 있는 석관은 텅 비어 있어 보물커녕 아무리 찾아도 왕의 미라 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중국의 만리장성
기원전 3세기경, 북쪽 흉노족의 남침을 막기 위해 진나라 시황제가 증축하면서 쌓은 장벽이 바로 만리장성이다.
세기에 걸친 대대적인 작업으로 세워진 이 장성은 길이가 5000~6000킬로미터, 높이는 6~9미터이며, 평균 폭은 위쪽이
4.5미터, 아래쪽은 9미터에 달한다. 그러나 거대한 장벽도 13세기 아시아를 호령하던 몽골의 침입은 막지 못했다.
만리장성은 군사적인 역할 외에 유목 문화와 농경 문화를 가리는 경계선 역할도 했다. 일부에서는 만리장성에 쏟아부은
노력과 비용에 비해 방어벽으로서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만리장성은
중국을 상징하는 문화재라는 점이다.
철루미
철원과 두루미가 함께만나 탄생한 철원의 공식 케릭터인 철루미
제7회 철원 한탄강 얼음축제에 오신 여러분을 철루미가 환영합니다
황금 복돼지
2019년 기해년을 맞이하여 황금 복 돼지가 눈조각으로 탁생 했습니다
2019년 희망하는 소원을 적어 복 돼지에게 빌어보세요
행사장의 모습들
한탄강 얼음트레킹 행사장
몇년 전에 명성산에 다녀오며 보았던 풍경을 오늘 다시보게 된다
휴일이라서 많은 인파가 몰려 트레킹 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번에는 참가하는 산행팀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휴일에 왔는데 역시나이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파파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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