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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경주 감은사지와주상절리

오늘은 서울 쪽 여행팀들이 경주로 오는 날이다 이번에는 내가 주관을 하기에

감포에서 만나 회로 점심을 해결하고 감은사지 대왕암 양남 주상절리 그리고

다음 날 경주를 돌아보는 여행 계획이다(4/29)

13시에 여기서 점심을 먹고 일정을 소화 시킬 것이다

2층에서 바라보는 감포항의 경치도 아름답다

감포항

감은사지 3층석탑을 음각화한 아름다운 등대가 우뚝 솟아있는 감포항은 드나드는 어선이 많은 동해 남부의

중심 어항이다. 감포항 방파제는 동해 일출을 감상하기에 좋은 포인트로 예전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감포항에는 바다를 전경으로 한 고유의 재래시장이 들어서 있으며 문무대왕릉에서 감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에도 횟집과 민박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식도락가의 발길을 붙잡는다. 3일과 8일에 장이 서는

감포장은 바다가 바로 인접해 새벽에 들어오는 오징어배와 멋진 일출이 어울릴 때면 가슴이 벅차 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곳이다. 

감포 내항 쪽 모습

오른쪽 끝에 어렴풋이 송대말 등대가 보인다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 앞바다를 밝혀주는 송대말 등대는 1955년 무인등대로 건립되어 1964 년 유인등대로

승격시켜 운영하고 있다.

2001년도에 경주시 감포읍의 상징인 감은사지 석탑 모형을 본떠 새롭게 만든 등탑은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얀 등탑과 푸른 소나무 숲이 잘 어우러지는 이곳 , 등탑 전망대에서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신라시대부터 경주의 동쪽 바다를 이용하여 일본과 교역을 하였다는 기록은 있으나 선박이 안전하게

접안하여 해상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은 당시의 해역 여건으로 볼 때 감포 ( 甘浦 ) 일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감포는 경주에서 33Km 떨어져 있으며 , 송대말은 ( 松臺末 ) 감포항의 북쪽의 위치하는

곶으로 육지 끝에서 약 1000m까지 암초들이 길게 뻗어 있어 작은 선박들의 사고가 빈번하였다.

또한 먼바다에서 조업 후 감포로 입항하는 선박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지형이 송대말이다.

수령 300 년∼ 400 년 정도 소나무가 무성하여 지역에서 유일한 공원이며, 일제강점기부터 축양시설을 하여

바다에서 고기를 길렀으며, 1919 년 어항으로 개항되었다. 항의 위치와 부근에 산재하는 함초 및 장해물을

표시하기 위하여 1933년 2 월 감포 어업 조합에서 등 간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며, 동해안 운항선박이

늘어나면서 항의 북쪽에 육지 끝 송대말에 1955년 6월 30일 무인등대를 설치하였으며, 육지 초인 표지

역할의 필요성이 있어 기존의 등탑에 대형 등명기를 설치하여 광력을 증강하고 무신호기를 설치하여

유인등대화 하였다.  최초 점등일 - 1955년 6월 30일  구조 - 백 4각 콘크리트(21m)   등질 - 백 섬광 20초에

1 섬광 * 특징 - 백색과 홍색의 호광 등으로 인근 해역의 천소 구역을 알리기 위하여 설치된 등대로 신라시대

건축양식(2001년 12월 24일)을 도입하여 지역을 상징하는 등대시설로 개량하였다. 캡처한 사진

감은사지

사적 제31호. 〈삼국유사〉에 문무왕(文武王)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역사를 시작했으나 중도에 죽자

그의 아들 신문왕(神文王)이 즉위해 682년(신문왕 2) 완성했으며, 금당의 기단 아래에 동향한 구멍을 두어

이곳으로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들어와 서리도록 했고, 또 유서에 따라 골(骨)을 매장한 곳이 절의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절의 이름은 본래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진국사였으나 신문왕이 부왕의 호국충정에 감사해 감은사로

고쳐 불렀다

1960년과 1979~80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이탑식 가람배치로 남북보다 동서 회랑의 길이가 길며,

양 탑의 중앙부 뒷면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금당터가 확인되었다. 또한 금당의 바닥구조가 H자형의

받침석과 보를 돌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석 재유 구를 동서방향으로 깔아 마치 우물마루

모양으로 된 것은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매우 흥미롭다.

원래 앞면 8칸, 옆면 4칸이었던 북쪽 강당은 후대에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고쳐 지은 것도 밝혀졌다.

동탑

 

삼층석탑

동서로 마주 서 있는 이 탑은 신라 신문왕(神文王) 2년(682년)에 세워진 석탑이다.

탑의 전체 높이는 13.4m. 화강암 이중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方形) 중층(中層)의 탑으로 동서 양탑이 같은

규모와 구조를 보인다. 상층기단은 면석을 12매로, 갑석(甲石)은 8매로 구성하였다. 탱주는 하층 기단에 3주,

상층기단에 2주를 세웠다. 초층옥신(初層屋身)은 각 우주(隅柱)와 면석을 따로 세웠으며, 2층은 각면이

한돌, 3층은 전체가 한돌로 되었다. 목조가구를 모방한 흔적을 보이며 옥개석 받침을 층단식으로 한 수법은

전탑(塼塔)의 전 단계 모습을 추정케 한다. 기단을 이중으로 하는 형식은 새로운 형식으로 이와 같은 양식은

이후로 한국 석탑의 규범을 이루는 것이 되었다.

또한 1960년 및 1996년 석탑을 해체 보수할 때 3층 탑신에서 창건 당시 설치하였던 매우 정교하고 귀중한

 사리장치(舍利裝置)가 발견되었으며, 보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전시 중이다

서탑

감은사지를 돌아보고 여기 문무대왕암으로 왔다

681년 문무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 지내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바위는 둘레가 200m쯤 되는 천연 암초인데 사방으로 바닷물이 드나들 수 있는 물길을 터놓아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물길은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고, 안쪽 가운데에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의 큰 돌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어 이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다.

한편 바위의 안쪽 가운데에서 사방으로 물길을 낸 것은 부처 사리를 보관하는 탑의 형식을 적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무대왕릉

 사적 제158호이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은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681년 문무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큰 바위에 장사지내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다.

바위는 둘레가 200m쯤 되는 천연 암초인데 사방으로 물길을 터놓았다.

이 물길은 인공을 가한 흔적이 있고, 안쪽 가운데에 길이 3.7m, 높이 1.45m, 너비 2.6m의 큰 돌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어 이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82년 감은사를 지어 불력에 의해 왜구를

막으려 했는데, <삼국유사>에는 감은사의 금당 아래를 깎아 동해로 구멍을 내어 해룡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침부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파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곳은 감포항에서 6~7km 감은사지에서는 1km 정도 거리다

숙소에 짐을 풀고 이제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산책할 차례인데 빗방울이 떨어져

전망대까지만 오르고 남어지 구간은 아침 산책으로 남겨두었다

예전 2월에 찍은 사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양남 주상절리 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지난 2017년 10월 지어졌다.

양남 주상절리는 양남면 읍천리의 해안을 따라 발달한 주상절리 군이다. 위로 솟은 주상절리뿐만 아니라,

부채꼴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펴진 부채 모양과 같이 둥글게 펼쳐진 부채꼴 주상 절리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아주 희귀한 형태로, 지난 2012년 9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주상절리 전망대에서는 상절리 전망대 안에는 양남 주상절리를 비롯한 다양한 지질자원들에

대한 전시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지질해설사가 상주해 관람객들에게 해설도 제공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채꼴 주상절리 파도가 심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파도가 잔잔한 2월에 담은 사진이다

읍천항 방파제 쪽 풍경

건너편에 월성 원자력 벌 전소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동해안에 있는 국내 유일한 가압중수로형(加壓重水爐型) 원자력발전소.

이렇게 인증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간다

아침에 산책에 나섰다

마치 장작을 쌓아 놓은 듯한 누 운주상 절리

6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해는 중천에 뜬 것 같다

구름 때문에 빛 내림으로 대략 어느 정도에 해가 있을까 상상을 하며

파도소리길을 걷는다

이곳 해변에는 10m가 넘는 정교한 돌기둥들이 1.7km에 걸쳐 분포해 있다

장노출을 시도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삼각대도 필터도 없지만 기술 부족으로 여기까지가 한도다

파도가 덥첬다가 흘러내리면 작은 폭포가 형성이 된다

 

누 운주상 절리군

저 꼭 대가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어디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수분을 섭취하는지

정말 신비스럽다 아마도 몇십 년 이상 자란 것이 저 정도일 듯

산책을 마치고 카페 앞 포토존에서

이렇게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

내가 주관을 했는데 마지막까지 봉사를 못하고 떠나야 하는 죄송한 마음이다

어제 산책코스를 걷다 옆지기가 넘어져 걸음을 걸을 수가 없을 정도의

부상을 당해 할 수 없이 부산의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떠나야 한다

 

병원에 도착 진료 결과 골절상이다 

토요일이라 응급조치만 하고 월요일에 다른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진료의뢰서를 써주어 가지고 왔다 나이가 있으니 평소 때 여러 번 계단을 걸을 땐

난간을 잡고 걸으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본인의 고통도 심하겠지만 같이 간 일행들에게 걱정을 끼쳐서 내 마음이

가시방석이다. 모두들 이해해주리라 믿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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