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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인천 도시역사관

인천도시역사관은 2009년 8월 인천세계도시축전 개최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라 할 수 있는

인천의 도시계획 역사를 전시하는 ‘인천도시계획관’으로 개관했습니다.

그 해 10월 ‘컴팩스마트시티’로 관명을 변경하여 운영해 오던 중, 2014년 1월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

인수되었습니다. 2017년 12월 인천의 도시계획뿐 아니라 도시의 역사 및 발전과정을 담는 공간으로

거듭난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인천도시역사관’으로 변경했습니다.

인천도시역사관은 인천의 도시발전 과정을 주제로 1883년 개항 후 근대 도시로 새 출발한 인천의 도시 역사와

변천과정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1층 근대도시관에서는 1883년 제물포 개항에서부터 1945년 광복까지

근대기 인천의 도시 성격과 공간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현재 2층 인천모형관과

3층 IFEZ모형관은 현재 인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향후 전시 개보수 공사를 통해 각각 현대도시관,

도시생활관으로 개편할 예정입니다.도시역사관 홈페이지에서

그 시절에는 처음 나왔을 때는 중견기업 이상의 사장들이 타고 다닌 차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가 있던 택시가 아니었을까?

도시역사관 1층에 있는 근대도시관이다.

이곳엔 1883년부터 1945년까지 근대기 인천의 모습을 담고 있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에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란 비석이 있다.

"바다의 입구를 막고 지킬 것이니 다른 나라의 선박은 함부로 통과하지 말지어다"라는 쇄국의지를 담은

경고문이다. 이와 같은 비석은 강화도 덕진돈대에도 있다.

 

19세기 중엽 무력으로 중국과 일본을 개항시킨 서구 열강의 시선이 조선으로 향하자 조선정부는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이에 조선을 개방시키려는 서구 열강과의 충돌이 빈번해졌다.

프랑스와 미국 함대의 무력 침공에도 개방을 허용치 않았던 조선은 강화도를 불법 침략한 일본 군함

운요호와의 충돌이 계기가 되어 1876년 2월 일본과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하고 부산을 포함한 3개 항구를

개항하기에 이른다.

그중 서울의 초입에 위치했던 인천의 개항을 두고 조선 정부와 일본은 치열한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관계지석

해관의 영역을 나타내기 위해 해관 건물과 창고 주위에 세웠던 표지석

이를 통해 일반인들이 해관의 경계를 무단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다

쌀과 소금의 수탈 수인선

1930년 11월 경동철도주식회사는 여주와 수원을 잇는 협궤철도 수여선을 개통했다

여주 이천 등 경기내륙의 곡창 지대에서 생산되는 미곡을 수원까지 운반하고 이를

다시 경부철도로 부산까지 실어 나른 후 부산항을 통해 일본 본토로 반출하기 위해서였다

만주사변 후 중국과의 정세가 불안해지자 일본은 1937년 7월 수여선을 인천항까지

연장하는  수인선을 개통했다

 

공화춘 간판 / 1910년 대.

공화춘은 산동성 출신의 화상 우희광이 선린동에 문을 연 중화요릿집이다.

1900년대 초 인천으로 이주한 우희광은 처음 숙식업소인 산동회관을 개업하였으나

1913년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국의 봄이라는 뜻인 공화춘(共和春)으로 개명하였다.

지금도 차이나타운에는 공화춘이 있는데 점심식사를 공화춘에서 했다

각국조계석

조기석은 각 나라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길가에 세웠던 표지석으로

이 조게 속은 각국조계와 조선 땅의 경계였던 내동 성공회 성당입구에 세웠던 것이다

일본조계(日本租界)

일본은 개항 이전부터 제물포에 공사관 직원을 파견하여 조계지를 선점하고자 했다.

1882년 7월 부두에서 가까우면서도 매립이 가능한 해안 지대 약 7천 평을 자국의 조계지로 정하고 측량을

통해 도로와 영사관 부지를 구획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 정부는 1883년 9월 일본과

<조선국인천구조계약조, 朝鮮國仁川口租界約條>를 체결하고 인천에서 일본조계 설치를 공식 승인했다.

일본조계에는 우편국, 경찰서 등 관공서와 함께 일본 상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은행, 사찰, 학교 등도

들어섰다. 청일전쟁 후 인천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한 일본인들은 조계 너머 조선 땅으로 세력을 넓혀 갔다

제일은행이 발행한 화폐 십정

그 시절의 회사들

인천 공회당

조선은행 인천지점

인천우체국

박문보통학교 제12회 졸업기념사진

인천 경전 유동기 헌납 기념사진

대동아전쟁 때 우리 민족의 놋그릇과 기구를  모두 거두어 가서 총탄을 만들었다

그 시절 전쟁물자를 생산하던 군수공장

2~3층은 어린이 놀이기구와 해방 후의 인천 역사가 전시되어 있는 것 같은데

지인의 약속시간 때문에 1층만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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