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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

이곳은 꽤나 자주 다니는 곳이다

서울에 살 때 송월동에 친척이 있어 자주 방문을 했고 자유공원과 이곳 차이나타운은 

덤으로 많이 다녔다 부산에 살면서도 옛 추억이 그리워 몇 번 찾았는데 이번에는

또 옆지기 때문에 방문을 하게 됐다

차이나타운 정문으로는 만차라고 통제를 해서 진입을 할 수가 없다

돌아서 송월동 동화마을 골목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간다

차이니 타운의 가장 중심부다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이 지역이 청나라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겨났다 지금현재 중화민국(대만)에 본적을 둔 재한 화교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인천항 개항당시에 도심 한 복판이었고 서구문화가 유입되며 일본인과 화교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근대식공원과 최초로 건설된 세관등이 이 지역부근에 있었다

당시공화춘이 있던 지역은 짜장면이 생긴 지역으로 명성이 높다

만다복 중국음식점

점심시간이기는 하지만 저렇게 줄을 서 있기에 무엇이 그렇게 맛이 있는 집인가

살펴봤더니 아래와 같은 백년짜장이 인기라고 합니다

과거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을 파는 상점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거의가 중국음식점이다

인천차이나차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초기정착민들의 2~3세들이어서 1세대들이 지키고

있었던 전통문화를 많이 지키지는 못하지만 중국의 맛만은 고수하고 있다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차이나타운 황제의계단

짜장면 박물관

1970년대의 중국 음식점 풍경 또한 눈길을 끈다. 졸업식 후 가족과 함께 짜장면을 즐기는 인형 모형을

배경으로 짜장면 가격의 변천, 분식 장려운동, 짜장면의 면발 등 짜장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짜장면 한 젓가락을 들고 입안으로 막 넣으려는 인형의 모습이 실감 나게 표현되어 있다.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한결같이 사랑받는 대표 서민 음식 짜장면은 가느다란 면을 뽑아 그 위에

춘장과 양파, 고기를 볶아 만든 양념을 얹어 간편하게 비벼 먹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 약 3만 5000여 곳의 중국집이 있고, 하루 평균 700만 그릇의 짜장면이 팔린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짜장면박물관은 1908년에 지어진 중국집 '공화춘'(共和春)의 건물을 보수하고 전시 공간을 마련해

2012년 개관했다. 등록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된 공화춘은 중국의 장인이 건축한 중국식 건물이다.

건물 외부는 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다양한 문양과 붉은색을 사용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1980년까지 명성을 날리던 중국집이 이제는 100년의 역사를 지닌 박물관으로 거듭난 것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공화춘 현판이 눈에 띄는데, 중국집이었던 시절 건물 입구 외벽에 걸려 있던

것이라고 한다.

2층 상설전시실의 도입부에서는 짜장면의 탄생과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짜장면은 개항기에 화교들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던 중국 산둥 지방의 음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884년 중국이 지금의 차이나타운 일대에 청나라 조계지를 설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요리도

들어오게 됐다. 조계지는 외국인이 자유로이 물건을 거래하고 거주하도록 설정한 구역을 말한다.

이후 일제에 의해 조계제도가 폐지되자 인천항에서 일하던 부두 노동자들이 이곳을 자주 찾게

되면서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짜장면이 인기를 얻었다. 이때 짜장면은 중국 된장인

미옌장을 비벼먹지 않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만들어졌다.

 

1967년 '외국인 토지소유권 제한 조치' 법이 시행되어 중국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차이나타운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북적이는 도시 중 하나였다고 한다

2층 제2 전시실에는 부두 노동자들이 지게를 내려놓고 짜장면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장면이

모형으로 연출되어 있다

예전에는 노후된 분위기에 중국문화를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는 주거지와

상업지역이 밀집해 있던 곳이지만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시행한 이후 무척 깔끔해

지면서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역으로 굳어졌다

 

오늘은 이곳 공화춘에서 식사를 했다

홍두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줄이 이어진 것으로 봐서 꽤나 인기가 있나 보다

터키 아이스크림이 인기가 대단하다

지나가며 보니 무슨 이벤트 행사를 하는 중인 것 같다 아래에 이렇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니....

 

삼국지 거리로 진입을 했다

 

인천 중구 북성동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은 재한화교와 같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개발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지지부진했지만 도심 재개발 후 인근 동화마을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관광객 수가 증가해 제대로 정착하게 됐다

차이나타운에는 짜장면이나 짬뽕대신 월병과 만두 등 다른 중화요리를 판매하는 점포가

많고 2020년에는 코로나 19가 대대적으로 확산되면서 인천차이나타운 역사상 유례 없는 

불황에 시달리기도 했다

 

인천 차이나타운 주거민은 한국 여권과 중화민국 여권을 보유한 이중국적자나 한국이 나중화여권

중에 하나씩만 갖는 단일국 적자의 비중이 높다 거리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오성홍기가 아닌

중화민국의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다수 눈에 띄고 간체자 간판이 아닌 정체자 간판만 있다

2022년 4월 이후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인천 차이나타운도 소생하고 있는 추세인데 특히 수도권전철 

수인선의 개통으로 용인 성남 수원 화성 오산 등 경기남부지역 시민들이 자주 방문허여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공자상

조선과 미국은 1882년 5월 22일 이곳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조선이서구와 맺은 최초의 수교통상조약으로 이후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할 때 기준이 되었다

다른 조선족 거주지에 간체자 간판이 흔한 것과 달리 이곳에는 한국어나 정체자 간판이 많고 

오히려 대만의 타이베이 가오슝 등과  흡사한 분위기다

대다수 주민들이 한국어에 능숙하고 환경이 깔끔하고 치안이 좋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조선족이 많다는 편견과 달리 차이나타운에는 조선족 대신 대만인이나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등 해외 화교가 많다

오히려 이 지역에는 조선족이나 중국대륙인의 비중이 낮은 곳이다

한중수교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와중에도

예전과 달라짐이 없다. 여전히 조선족이나 중국인과 재한 화교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

제한 화교들은 6.25 한국전쟁당시 대한민국 국군을 지원했고 중국공산당이 실권을 잡으면서 졸지에

실향민으로 전략한 사람들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반공 반중성향이 강하고 주한 대만 대표부와 교류가 많다

자유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니 이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 가게마다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낮에 그렇게도 붐비든 차이나타운은 벌써 썰물처럼 이용객들이 다 빠져나가고 너무 조용하다

18시에 서울 친구가 이곳 인천역으로 오기로 돼있어 이곳 인천역으로 왔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부설된 철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로 서울 구로∼인천 간의 총 연장 27㎞의

복선철도이다. 경인공업지대를 관통하는 수도권 운송 체계의 중요한 축으로 되어 있다.

 

             1896년(고종 33) 미국인 모스(Morse, J. R.)에게 그 부설권이 특허되어 이듬해 3월 29일 기공되었고,

        1899년 9월 18일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京仁鐵道合資會社)가 완공시켜 개통되었다. 경인선의

         개통은 근대적 교통 기관의 도입과 함께 구미 열강과 일본의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침투하게 되는

                 구체적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역사적 흔적을 남기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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