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해돋이도 볼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아 늘어지게 잠을 자고 9시가 넘에 이민사박물관으로
갔는데 아뿔싸 월요일만 휴관을 하는 것이 아니고 1월 1일도 휴관을 한다네
오전에 월미공원과 이민사박물관 월미문화원을 돌아보고 내려오려고 했으나 계획이 빗나갔다
양진당이 있는 정원을 돌아보고 전망대에 오르기로 한다
안동하회마을 양진당을 이곳 정원에 한국의 대표적인 한옥으로 재연을 해놨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0년경에 중수하여 고려 말의 건축 양식과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 섞여 있는데,
양진당은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正南向)을 취하고 있으며,
문간채와 행랑채가 길게 이어져 있고 "ㅁ"자형의 안채와 그 북쪽의 사랑채인 양진당을 "一"자형으로 배치
하였는데,
99칸으로 전해 오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 있다고 한다.
보물 제306호.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양진당은 160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겸암(謙菴) 유운룡(柳雲龍, 1539~1601)의 종택이다.
유운룡의 아버지 입암(立巖) 유중영(柳仲郢, 1515~1573)의 호를 따 “立巖古宅”(입암고택)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양진당’이라는 당호는 유운룡의 6대손 유영(柳泳, 1687~1761)의 아호에서 따온 것이다.
양진당은 풍천 유씨의 큰 종가로, 행랑채·안채·사랑채가 이어져 있고 사당 건물만이 독립되어 있다.
길에서 바라보이는 행랑채는 앞면 5칸으로, 가운데 솟을대문을 냈다.
안채는 ㅁ자형 평면으로 서북쪽에 앞면 1칸, 옆면 4칸의 부엌이 자리 잡고 있다.
ㄱ자로 꺾여서 앞면 3칸, 옆면 1칸의 안방과 앞면 2칸, 옆면 2칸의 안대청이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세운 이 건물은 바깥 주위에 툇마루와 난간을 둘러 누(樓)와 같은 인상을 준다.
오른쪽 3칸은 대청, 왼쪽 1칸은 온돌방인데, 대청에는 4 분합 여닫이문을 달아 3칸 모두 열 수 있게 했다.
건물 안쪽 천장은 지붕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한석봉이 쓴 “養眞堂”(양진당)이라는
당호와 함께 여러 현판들이 걸려 있다.
마구간
마구간채는 사랑채와 출입문사이 부엌옆에 위치토록 하여 생활이 편리하게 했다
또한 출입문 바로 옆에 위치한 마구간은 양반들의 출타를 쉽게 하기 위한 생활의
지혜로 볼 수 있다
사랑채 마루와방
사랑채 뒷편과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
불천위
불천지위(不遷之位)의 줄임말이다.
신주를 조매(祧埋)하지 않고 계속 봉사한다고 하여 부조위(不祧位)라 부르는 곳도 있으며, 불천위를 두는
사당을 부조묘(不祧廟)라고도 부른다. 불천위에는 나라에서 정한 국불천위(國不遷位)와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한 유림불천위(儒林不遷位) 혹은 사불천 위(私不遷位)가 있다. 일반적으로 유림불천위보다는 국불천위가
더 권위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조선말에 정해진 국불천위는 조정 중신들의 파당적 이해가 개입되기도 하였다.
유림불천위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하는 사례가 있었다.
국불천위의 대상은 원칙적으로 문묘(文廟)에 배향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문묘배향자는 모두 18명이다. 배향자를 보면, 동무(東廡)에는 신라시대의 설총(薛聰),
고려시대의 안유(安裕), 조선시대의 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송준길(宋浚吉)이 배향되어 있고, 서무(西廡)에는 신라시대의 최치원(崔致遠), 고려시대의
정몽주(鄭夢周), 조선시대의 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迪)·김인후(金麟厚)·성혼(成渾)·조헌(趙憲)·
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가 배향되어 있다.
이들이 모두 국불천위 들이다.
이 밖에도 왕이나 왕자·부마 등도 엄격히 따지면 국불천위의 대상에 속한다.
유림불천위나 사불천 위는 그 수가 대단히 많은데, 서원에 배향되어 있는
사람들은 일단 그 대상으로 볼 수 있겠다.
사당에는 유중영과 유운룡 부자가 불천위(不遷位)로 모셔져 있다. 일반 주택으로는 규모가 큰 별당
건축물 중 하나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4번지에 있다.
장독대도 옛독을 진열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나같이 획일적인 똑같은 장독이다
양진당 뒤뜰
뒤 뜰은 아마도 그 시대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여성들의 놀이나 운동 공간이 아니었을까
양진당 안채
안채부엌
안방
대청마루
부엌위 쪽방은 아마도 안채에 기거하는 여인들이 밖에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공간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안채로 출입하는 대문이 따로 있다
사랑채와는 철저히 분류가 되어 있다
야외정원풍경
남도에서는 볼 수 없는 소의 외투다
야외 정원과 언덕 위에 있는 팔각정인 월휴정
이곳에는 습지원 소쇄원. 서석지. 국담원. 부용지. 제물포마당. 월미마당. 애련지
사슴원. 토끼원 등도 있는데 겨울이라 관리를 안 해서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대충 둘러보고 월미산 전망대에 올랐다
월미공원 전망대
월미산 정상에 있는 23m 지상 3층 지하 1층 전망대에서는 인천시가지는 물론 서해바다와
낙조 인천항 인천국제공항 인천대교 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차와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메시지블럭겅간더 미련되어 있다
월미공원 귀환기념비
아마도 월미도가 미군기지였다가 인천시로 다시 돌아온 기념으로 세운 비석 같다
월미도 연혁
저건 너 영종도의 모습
월미공원은 조선시대는 한양을 지키는 던 군사기지였고 개항기에는 조선에 들어오는 위해
머무는 첫 기착지였다. 6.25 때는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이었고 2001년에 인천시에서
인수해 시민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저 뒤에는 자동차 전용부두인데 수출되는 자동차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5 부두)
G.M 대우 부평공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인 듯 앞에는 갑문식 독도 보이고
미세먼지로 흐미하게 보이지만 인천 대교도 바라보인다
자동차 전용부두 뒤로 연안부두도 보이네
바다 건너 컨테이나 전용부두(4 부두)
대한통운 싸이로
산업원자재 일반화물을 취급하는 3 부두다
지독한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리니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5 부두의 신차 전용부두는 텅텅 비어 있는데 이곳 2 부두인가 중고 자동차는 수출대기 차량이
꽉 들어차 있는 모습이다. 좌측에는 자유공원도 보이고
8 부두는 텅텅 비어 있네
양곡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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