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화원유원지는 두 번째 오는 곳이다
Lets Win Again!
사문진나루터는 조선 전기 낙동강과 금호강을 연결하는 하천 교통의 요지이자 대구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수행하는 나루였다. 낙동강은 일본 무역상들은 물론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상인들의 대표적 물품
수송로이기도 하였는데,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1리와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2리를 잇는 사문진나루터가 가장 번창해 1486년(성종 17)까지 대일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문진나루터는 낙동강 상류와 하류를 연결하는 하천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왜에서 이입된 물품을
보관하는 화원창(花園倉), 왜 물고(倭物庫)를 설치하기도 하였는데, 사무역의 발달로
15세기 후반에 폐쇄되었다. 하지만 사문진나루터는 해방 이후까지 부산의 구포와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오르내리는 낙동강 뱃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해 왔다. 조선시대 대소 비지 대구를 대상으로 하는
남해안의 돛단배나 범선의 입출항이 잦았는데, 주요 운송 해산물로는 소금, 미역, 김, 어물 등이
주를 이루었다
주막촌
1932년 9월 단성사에서 개봉한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를 촬영한 곳
주막 앞에 팽나무는 수령이 500년이나 된다고 한다
4대강 사업으로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었으나 달성군민들의 노력으로 살아나게 됐다고 한다
주막촌
사문진 주막촌에서는 소고기국밥, 부추전, 잔치국수, 오징어무침, 손두부, 메밀전병 등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고 달성에서 만든 쌀 막걸리인 사문진 막걸리도 있어요. 그 외에도 주류는 몇 가지 더 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
사문진에도 이제 은행나무가 곱게 물들기 시작을 했다
주막촌에는 초가지붕을 얹어 옛 나루터의 분위기를 자아내고사문진 나루터 주막촌 중심부에 팽나무,
솟대와 장승이 서 있으며, 피아노 유입지임을 알리는 각종 조형물이 공원 곳곳에 자리해 있다.
나루터를 돌아보다 출출하면 주막촌에서 소고기국 밥과 파전, 잔치국수, 막걸리 등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유람선도 탈 수 있다.
개맨드라미(여우꼬리맨드라미)
1년생 초본으로 종자로 번식한다. 열대지방이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곧추 자라는 원줄기는 높이 40~80cm
정도이고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털이 없다.
어긋나는 잎의 잎자루는 없거나 약간 있고 잎몸은 길이 4~8cm, 너비 10~25mm 정도의 좁은 난형으로 끝이 뾰족하다.
7~8월에 개화한다. 연한 홍색의 수상꽃차례는 가지 끝과 원줄기 끝에 달린다. 열매는 꽃받침보다 짧으며 수평으로
갈라져서 윗부분이 떨어지고 종자는 여러 개씩 들어 있으며 지름 1.5mm 정도이다.
‘맨드라미’와 달리 잎이 피침형 또는 좁은 난형이고 잎자루가 거의 없으며 꽃차례가 원주형이다.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많이 심으나 빈터에 야생으로도 자란다.
사문진 나루터 / 신유
나루터야 나루터야 사문진 나루터야
낙동강 굽이 돌며 속삭이는 물소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움에 젖게 하네
나루터에 정을 두고 떠나버린 사람아
보고픈 내 마음을 알고 있겠지
바람에 밀려갔나 안개에 가려있나
사문진 나루터에 임실은 나루 배가
다시 올까 기다려지네
대구에 처음으로 피아노가 들어왔던 곳이 바로 사문진나루터였다.
1901년 5월 이른 아침 피아노 1대가 어설프게 포장되어 인부 30여 명에 의하여 소달구지에 옮겨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토막 안에 죽은 귀신이 들어 있어 괴상한 소리를 낸다며 신기해하였다.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대구로 운반된 피아노의 주인은 동산병원(현 계명의료원)을 세운 존슨(Johnson)의 아내 에디드 파커
(Edith Parker)였다.
사문진 나루터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마을은 조선 인조 때 개척되었는데,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늪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늪마을’이라 하다가 120여 년 전 이씨라는 선비가 들어와 마을 앞 큰 호수를
보고 ‘호촌’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낙동강이 범람할 때 이곳 흙을 많이 훑어갔다고 ‘훑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천동, 사동, 사문(沙門),
사문(寺門)이라 하였다. 사문(沙門)은 낙동강 홍수로 인해 마을이 형성되어 호촌 2리에서 모래를 거쳐
배를 탄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그리고 큰 절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에 사문(寺門)이라고도 불려졌다.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호촌리 마을은 조선 인조 때 개척되었는데, 낙동강 범람으로 인해 늪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늪마을’이라 하다가 120여 년 전 이씨라는 선비가 들어와 마을 앞 큰 호수를 보고
‘호촌’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또한 낙동강이 범람할 때 이곳 흙을 많이 훑어갔다고 ‘훑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밀렛
숙근사루비(빅토리아블루)
도선이 운항될 때만 해도 여름철이면 대구 시민들이 고령 쪽 낙동강 모래사장을 찾았다.
다산면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1978년 8월에는 모래찜질이나 목욕을 하기 위해 사문진나루터를 이용한
사람이 8,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덕분에 화원유원지도 유명해졌다.
철도 개통 후 사문진나루터는 대구 이출입 화물을 철도편에 빼앗겨 예전과 같은 대구와의 관계는
끊어지게 되었고, 1993년 7월 1일 사문진교가 개통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아울러 사문진교 준공과 동시에 한여름 나루터 근처 모래사장을 찾던 피서객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아렸을 때는 주막이 이랬었지
달성보로 인해서 호수가 되어버린 낙동강
유람선이 출발을 하고 있다
나루터 언덕에는 황화코스모스가 한창이다
하트 조형물도 만나고
동그라미 /같이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