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추암촛대바위를 가기 위해서 오전 8시 50분 차로 동해로 기차여행을 한다
춘양역에 조금 일찍 도착하여 서성이는데 300m 거리에 봉화 석조여래입상이
있다기에 찾아가 보았다
공교롭게도 지금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불상.
캡처한 사진
전체 높이 252㎝, 불상 높이 232㎝, 대좌 높이 20㎝.
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춘양역사(春陽驛舍) 건설 중에 발굴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온 것이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모습을 하고 있다.
코 부분이 약간 부서진 것을 제외하고는 보전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불도(佛頭)는 불신(佛身)에 비해 크게
조각되어 있고, 불신 부분에서도 상체는 짧게, 하체는 길게 표현되어 있다.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는 낮고 편평하며, 두발은 소발(素髮)
이다.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는 오관의 윤곽이 뚜렷하지는 않으나 원만한
편이다. 세모진 코와 적당한 크기의 입 그리고 어깨까지 닿아 있는 큰 귀를 볼 수 있다.
목은 매우 굵은 원통형을 하고 있으며, 삼도(三道)의 표현도 분명하다.
불신의 어깨는 단아하며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으로
착용하고 있다. 특히 양어깨를 덮고 있는 의습(衣褶 : 옷주름)은 기타 다른 통견식 불상과는 달리 살짝
어깨 위에 걸쳐져 있다. 의습의 표현 기법은 단순하면서도 일률적이다. 상체 부분에는 약간의 변화를
주기는 하였지만 U자형으로 배꼽까지 흘러내리게 하였다.
하체 부분에는 양 허벅지 윗부분에서 와문(渦文 : 소용돌이무늬) 형식으로 양각 처리하였다.
그다음, 무릎 아래 중앙에서 두 부분을 연결해 주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이습 표현이나 옷주름 선 간의
간격에 변화를 주어 상체와 하체의 볼륨감을 부여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조각의 깊이감이 없고 적절치
못한 선 간격의 묘사로 인하여 그러한 효과는 그다지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
부근에서 만난 과꽃
미국능소화
춘양역사
금처럼 귀한 나무가 반기는 역
춘양역은 1941년 영동선 보통역으로 영업개시, 1945년 8월 연합군에 의해 역사가 파괴되었다가 1955년
다시 세워졌다. 1998년 영주-철암 간 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현재의 역사로 신축 이전하였다.
춘양이란 역명은 만석봉(萬石峯) 아래 들판이 넓으면서도 양지바르고 항상 봄볕처럼 따뜻하다는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춘양지역은 1923년부터 채굴되었던 금광, 금정광산이 있는 곳으로 각종 광물자원과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춘양목으로 통용되는 목재의 명산지이다. 때문에 지역 명품인 춘양목을
역 구내에 비치, 춘양목의 우수한 품질과 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억지춘양 혹은 억지춘향의 발원지가 이 동네라는 설이 있다.
원래 영암선(영동선의 전신)이 부설될 때 춘양면을 통과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으나 춘양면 서벽리 출신으로
당시 제3대 국회의원이자 자유당 원내총무였던 정문흠(鄭文欽,1892 ~ 1976)이 반대하여 억지로 선로를
꺾어가면서 이 동네를 거치게 했다는 설인 것. 어찌보면 철도 핌피의 시초로도 볼 수 있다.
지도로 보면 실제로 직선으로 뚫고 갈 법도 한 곳을 S자도 아니고 아예 흥덕역을 연상케 하는 깊은 요철형
또는 Ω형으로 지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춘양에서 질 좋은 목재가 많이 생산되어 그나마 화물 수요는 꾸준히
있었기에 아주 억지로 지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억지춘향이란 말은 이 역이 개업한 1955년보다 훨씬 전에 이미 쓰이고 있었으며 확실히 억지春香
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역에 비치된 춘양목
영동선이 구배 문제로 인해 춘양역을 지나야 했다고 하고, 해당 칼럼에 의하면 영동선 춘양역과 과거
춘양역으로 불렸던 경전선의 석정리역 사이의 역명 분쟁이 노선 분쟁으로 와전되었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어느 한쪽으로 성급히 단정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억지춘양이란 말은 이렇게 여러가지의 설로 대변이 된다
우리가 타고 갈 무궁화호가 도착을 하고 있다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줄기와 위험구간에는 아래처럼 이렇게 콘크리트 터널을 설치를 했다
기차는 달려 간이역들을 통과하며 이곳 분천역에 도착을 했다
산타마을
분천역의 산타마을 일부가 보인다
<분천역(汾川驛)>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으로, 여우천(분천리천)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갈라져
낙동강으로 흐른다 하여 부내, 분천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백두대간 깊은 협곡을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의 백미구간인 분천역~석포역 구간의 출발역이다. 한국과 스위스 수교 50주년
(2012년)을 기념해 2013년 5월에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2014년 12월 분천역 일대를
산타마을로 조성해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눈사람 등이 어울려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또한 분천역은 스위스 체르맛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길 이름도 체르마트길이라고 했는데, 이 두 곳은
기차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체르맛은 산타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분천역도
체르맛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한다
분천역에서 양원역으로 가는 계곡의 모습들을 담아본다
이협곡을 경계로 좌는 울진군 우는 봉화군으로 나누어진다
<양원역(兩元驛)>
영동선의 철도역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 역사인 양원역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원곡마을과 울진군 서면
전곡리 원곡마을 사이에 있어 양원역으로 이름 지었다.
본래는 원곡이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강을 경계로 원곡마을을 봉화와 울진으로 나누어서 양쪽의 원곡이라
하여 양원이라 한 것이다. 기차역이 없어 승부역에서 내려 걸어가던 중 여러 사고가 나자 주민들이 대통령께
탄원서를 제출해 1988년 간이역 허가를 받고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작은 시골 간이역을 지었다.
2011년 10월 5일 KTX 개통과 동시에 이루어진 열차 시간표 개정에 의해 정차역에서 제외될 예정이었으나,
해당 지역이 열차가 아니면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무궁화호 취급역으로 계속 남게 되었으며,
중부내륙순환열차 역시 2015년 6월 2일 경로 변경 및 시각표 개정에 맞춰 무정차 통과로 전환될 예정이었으나
이 마저도 무산되었다.
역 구내의 바로 옆에 낙동강 상류가 위치해 있으며, 낙동강을 기준으로 서측은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동측은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 원곡마을이다. 이곳은 철도 이외에는 다른 대중교통수단이 없고, 도로 교통이 열악하여
두 마을 주민들의 요구로 영주역 기점 65.5km 지점에 임시승강장이 개설되었다. 역 시설을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역이며, 임시승강장 중 시설을 갖춘 얼마 안 되는 역에 속한다
현재는 역사가 폐쇄가 되고 울타리가 처져있는 상태다
몇 년 전에 이곳을 브이트레인으로 분천에서 철암까지 갈 때에는 역사에서 주민들이 먹거리와 특산품을
팔았는데 지금은 폐쇄가 되고 오로지 주민이나 관광객이 승하차만 하고 있다
이 기 차가 현동역에서는 정차를 안 하는데 이곳 양원역에서는 정차를 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과 협곡을 지나 승부역으로 간다
어느 역무원이 담벼락에 써놓은 시를 옮겨 여기에 시비를 세웠다
<승부역(承富驛)>
경북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으로, 옛날 전쟁이 났을 때 승부(勝負)가 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승부마을의 이름을 땄다. 지금은 ‘부를 잇는다’(承富)는 한자를 사용하는데, 일설에는 옛날 이곳이
다른 마을보다 잘 살았고 부자 마을이라고 해서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역 인근에 작은 마을만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역 이용객은 사실상 전무했으나, 1999년 환상선
눈꽃순환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오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어 신호장에서 보통역으로 다시 승격되었으나, 2021년 무인역으로 격하되었다.
승부역은 역무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역으로 열차 내에서 표를 발권해야 한다.
역의 승강장 중앙에는 과거 역장이 지었다는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산골 오지임에도 의미심장한 글이 비석으로 새겨있다
지나는 곳곳에 이렇게 겨울 김장용 채소가 같다 처음에는 고랭지 채소인 줄 알았다
영풍석포제련소
비철금속 전문 생산업체. 국내 최대 아연 생산 기업이다.
1949년 설립된 영풍기업사에서 출발해, 1978년 (주)영풍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1970년대 이후 정부가 중화학공업 정책을 추진한 이후 비철금속 분야로 진출해 국내 아연 수요의
대부분을 담당해 왔다. 아연괴, 황산, 황산동, 은부산물, 인듐 등을 주종으로 생산한다.
석포역
지역 산업발전의 주요 거점, 석개천과 석포리천이 합류하는 곳
석포역은 1956년 영동선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 1957년에 역사가 신축되었으며 1971년 영풍제련소
전용선이 신설되며 지역의 산업발전에 중요한 거점으로 역할해왔다. 기와단층의 작은 역사였지만
수입은 군청소재지인 봉화역을 크게 앞질렀던 주요 역사였다. 1996년 붉은 벽돌 외벽의 현재 역사가
신축 준공되었는데 역사 바로 옆으로 낙동강과 함께 거대한 영풍 석포제련소를 볼 수 있다.
석포는 석개천과 석포리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교통의 요지로, 금강소나무가 뗏목으로 엮여 낙동강으로
운반되던 곳이다. 지금은 폐광되었지만 석포지역에 큰 영향을 끼친 연화광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납,
아연 광산이었다.
옛날에는 사과나무가 옆으로 퍼져있었는데 지금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철암교회
선탄시설
태백 철암역 두 선탄시설’은 태백시 철암동에 자리하고 있는 선탄시설로, 2002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까지 가동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시설로, 탄광에서 채굴한 원탄을 선별하고 가공 처리하는
시설이다. 근대의 재료와 공법을 적용하고 있는 산업시설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시설로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은 당시 석탄산업 시설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현재에도 그 시절의 산업시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으며 태백 지역의 발전과 함께한 무연탄시설물로서, 시대와 지역을 상징하는 중요시설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철암역이라는 역명은 이 동네에 철도가 개통된 이후 강릉 방면으로 약 4㎞ 부근에 쇠돌바위라는 기암괴석이
형성되어 그 경치가 훌륭했고, 그 이름을 따서 동명을 철암(鐵岩)이라고 칭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철암역(Cheoram station, 鐵岩驛)은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철암동에 위치한 영동선의 철도역이다.
과거 태백 지역의 무연탄을 대한민국 각지로 발송하는 역할을 하던 매우 큰 역이었으며 청량리 발착 열차의
시종착역으로 일 2차례 태백선 경유 여객열차와 청량리 강릉 왕복 영동선 경유 심야 열차의 정차역이었으나 ,
석탄산업 합리화에 따라 대다수의 탄광이 문을 닫은 탓에 화물 운송은 물론 여객 감소로 옛날에 비해서
위상이 떨어져 있다. 모든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가 정차하며, 과거에는 태백선을 거쳐 청량리역으로 가는
열차의 시종착역이었으며, 현재는 백두대간협곡열차의 시종착역이기도 하다.
중부내륙순환열차가 운행되기 이전에는 약 15년간 태백선과 직결되는 일반 여객열차가 운행하지 않아
서울특별시나 중앙선, 태백선 연선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인접한 동백산역이나
태백역으로 가서 열차를 이용해야 했다. 역무실에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를 날인할 수 있다.
옛날 번화가 땅이 모자라 개천에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은 까치발 집들이다
지금은 역사관으로 탄광촌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철암쇠바우골노천시장
너무도 한가하게만 보이는 철암의 모습
동백산역 주변의 태양광시설
1975년 영동선 태백신호장으로 출발, 솔안터널 개통과 함께 현대식 역사 신축
동백산역은 1975년 영동선 태백신호장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그러던 1984년 황지읍이 태백시로 승격하면서 황지역이 태백역으로 변경되자 동백산신호장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옛 역사는 90㎡ 규모의 작은 부럭조 슬라브 단층 역사로 여객도 취급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1988년
보통역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솔안터널 공사로 2007년 여객 취급을 중지, 임시역사를 거쳐 2012년 6월 27일
솔안터널 개통과 함께 오늘날 현대식 역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태백영동선과 태백선을 연결해 주는 태백삼각선을 끼고 있어서 열차 운용상 매우 중요한 역이며, 특히
태백지역 철도의 속도혁명을 이루어낸 솔안터널의 입구로 상징적인 역사이다
솔안터널
솔안터널은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통동(동백산역 인근)과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도계역 인근)을 잇는 영동선의 루프식 터널이다.
기존 심포리역 ~ 흥전역 ~ 나한정역 구간을 대신할 루프식 터널로써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16.2km로
국내에서 네 번째로 긴 최장거리 터널이다. 난공사로 인해 첨단기술과 전문인력이 투입되었으며 장
기적으로 복선 전철화에 대비한 예비시설도 갖추었다. 솔안터널의 개통으로 영동선 열차는 5회
증편되었고 30 퍼밀 이상 급구배 역시 24.5 퍼밀로 크게 낮아져 노반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또한 기존 동백산역 ~ 도계역 구간 터널 16곳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됐다.
도계역사
영동선 석탄수송의 핵심역사, 서독 파견 광부들의 훈련소 역할
도계역은 1940년 8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영동선 석탄수송의 핵심역사였다.
도계역이 위치한 도계리는 세 갈래 길의 분기점에 있다 하여 길가말이라 불리던 이름이 와전되며 붙은
마을로 시외버스터미널과 철도역이 위치한 삼척의 주요 마을이다. 광복 이후 대한석탄공사에 이관된
인근 탄광의 규모가 커지자 1951년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로 분리 운영되었는데, 당시 도계는
강원도 내 석탄 생산량의 32%를 차지하는 중요한 석탄 산지였으며 1975년까지 서독에 파견하는
광부들의 훈련소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바로 이 무연탄을 묵호항과 여러 도시로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역이 도계역이다.
동백산역과 도계역의 현재 터널 운행구간 (솔안터널 16.2km 구간)
스위치백과 노후화로 인한 안전성 문제와 후진 제한속도(25km/h)로 인한 소요시간문제가 제기되어
똬리굴 형태의 단선 철도터널을 건설하여 이설 한 것이다.
동백산역에서 도계역으로 갈 때는 오랜 시간이 걸려 도계역에 도착을 했는데 도계계역에서 동백산역까지는
3분여 밖에 갈리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통리역까지의 스위치백 구간과 급경사 구간이 있어서 보조기관차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해당 구간은 2012년 6월 27일을 기해 폐선되었다.
https://youtu.be/PCaDwFlBfAQ? t=31
도계역과 동백산역 사이에 길이 16.2㎞의 솔안터널이 있다. 기존 도계역~동백산역 구간(일명 황지본선)에
위동영상을 보면 스위치백 운행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하이원추추파크에 관광시설로 현재 운행 중임)
춘양역에서 2시간 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드디어 동해역에 도착을 했다
기차로는 처음으로 와보는 동해역이다
동해역
삼척선, 묵호항선, 북평선이 갈라져 나간다.
모든 여객열차가 정차하며, 한국철도공사 강원본부의 대표역이기도 하다.
역 구내에 객/화차, 기관차 등을 관리하는 사무소 등이 있어서 역 규모가 매우 크다.
동해시가 생기기 전에는 북평역(北坪驛)이라는 이름으로 영업하였다.
역무실에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를 날인할 수 있으며 한때 영주역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열차의 시발역이기도 했다.
역 구내의 산업선 전철준공기념비는 한국철도공사 선정 철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2000년대 중반 이전에는 영주지역관리역(영주역)에서 관할했다.
동해역 플랫폼
동해역에 대한 이야기
동해는 옛 북평과 묵호를 합치면서 생겨난 통합 시명이다
예전에는 영동선의 전철화 구간이 끝나는 역이었다. 이 역부터 강릉역까지의 구간을 운행하는 모든 열차가
이 역에 도착하면 전기기관차를 디젤 기관차로 교체하여 운행하였고, 반대로 강릉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영주역이나 청량리역 방면으로 운행하는 경우에는 디젤 전기기관차를 전기기관차로 교체하여 운행하였다.
그러나 2003년부터 시작된 동해 ~ 강릉 구간의 전철화 공사가 끝나고 2005년 9월 8일부터는 기관차의
교체 작업이 사라졌다. 다만 묵호항역이나 안인역 구내의 화물 선로로 들어가는 일부 화물열차는 지금도
디젤 기관차 견인으로 운행한다.
2020년 3월 2일에 강릉삼각선의 개통과 함께 일부 강릉선 KTX 열차가 강릉 대신 정동진 경유 동해역으로
운행한다. 동시에 기존 청량리/동대구/부전/부산 - 강릉 무궁화호는 동해착발로 단축하고, 동해 - 정동진 -
강릉 셔틀 누리로가 신설되었다.
Eruption - One Way Ticket
'경북.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화정자문화생활관 (0) | 2024.10.04 |
---|---|
억지춘양시장 (0) | 2024.09.26 |
봉화백두대간수목원 3 (40) | 2024.09.12 |
봉화 백두대간수목원 2 (0) | 2024.09.12 |
봉화 백두대간 수목원 1 (0) | 2024.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