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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봉화정자문화생활관

추암 촛대바위와 주변을 둘러보고 숙소로 정한 이곳 봉화 정자문화생활관에 왔다

 

여느 자연휴양림과 다를 바가 없다

경북 봉화군 외삼리에 위치한 봉화정자문화생활관은 누각과 정자를 테마로 한 관광지로, 숙박시설

솔향촌에 머물며 누정문화를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다. 숙박 형태는 펜션형과 숙박형으로 나뉘고 예약은

봉화군 체육시설사업소 홈페이지에서만 가능하다. 생활관 내 누정 전시관, 야외 정자 정원, 누정 쉼터와

마당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인근에 창평 산림욕장과 다덕약수관광지, 문수산 자연휴양림 등의 관광지가 있다.

내가 먼저 도착을 해서 누정전시관을 보고 무작정 도로가 있는 곳으로 오르니 마지막 

주차장이 나오는데 관리사무소를 찾을 수가 없다 기다렸다 조카가 와서 합류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 잠시 산책길에 오르는데 우리숙소 위에 곱게 핀 배롱나무가 보인다

좌측동이 우리가 묵고 있는 복층 숙소이다 

누정저시관인데 내려가면서 들러볼 곳이라 먼발치로만 바라본다

누정 주변의 잘 가꾸어진 잔디광장 

고마리 

산수유나무가 물이 부족한지 벌써 단풍이 물들고 있다

물달개비 물옥잠화라고도 한다

세연정 

한벽루 

한벽루 

거연정 

함양의 화림계곡을 끼고 있으며 부근에는 동호정 군자정 농월정이 있다 

부용정 오르는 길에는 코스모스도 피어 있고

금사매

갈퀴망종화라고도 하며 미국이 원산지다

스텔라원추리

키가 작아서 왜성원추리라고도 하며 6~10월까지 피어 사계원추리라고도 한다

비원에 있는 부용정을 재현했는데 건물만 같은 모형이고 다른 곳은 전연 다른 모습이다

다른 정자도 마찬가지 건물만 같은 모습이다

메꽃 

배롱나무 

차이브

식용이 가능한 백합과의 식물. 유럽과 시베리아, 일본 등이 원산지이고, 양지 혹은 반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전체적인 형태는 한국의 부추와 매우 비슷하나, 잎 모양에서 차이가 난다. 꽃은 5월에 연보라색으로 핀다.

식재료로 활용할 때에는 수프 등에 향신료로 넣어 먹는다. 봄인 줄 알고 피는데 꽃이 별로다 

5개의 마지막 정자 광풍각이다 

소쇄원의 대표적인 정자다

누정전시관

이곳은  전시관과 세미나실로 사용하기에 내부는 별로 볼 것이 없다

봉화의 시인들의 작품인 것 같다

와선정

와선정은 태백오현의 후손들이 그 정신을 추모하려고 1832년에 세운 정자다.

심장세(1594~1660), 홍우정, 정양, 강흡, 홍석이 모여 시를 읊고 시국을 논하던 고았다

각금당(覺今堂) 심장세(沈長世, 1594~1660), 두곡(杜谷) 홍우정(洪宇定, 선조 29년~효종 5년),

포옹(泡翁) 정양(鄭瀁, 선조 35년~현종 9년), 잠은(潛隱) 강흡(姜恰, 선조 35년~현종 12년),

손우당(遜遇堂) 홍석(洪錫, 선조 37년~숙종 5년) 태백오현이라 부른다.

병자호란 때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중국 청나라에 무릎을 꿇자 벼슬을 버리고 숨어 살았다.

그들은 와선대, 사덕암. 은폭이라 이름 지은 곳에 모여공론을 벌였다.

이후 사람들이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높이 사서 태백오현이라 불렸다.

옥류암

옥류암(玉溜庵)은 홍우정(洪宇定,1595~1656) 선생이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임금이

오랑캐에게 수모를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봉화 봉성면 두곡마을로 낙향하여 은거하며

지은 정자이다. 두곡(杜谷) 마을의 두자는 막힐 두(杜) 자로 산으로 꽉 막혀있다고

붙여졌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옥류암이란 "옥(玉) 같은 깨끗함이 머물러 사는 초당"이라는 의미로, 편액은 전서의 대가인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이 쓴 글씨이며, 이러한 한국의 편액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에 등재되어있다.

사미정

사미정은 조덕린(1658년∼1737년) 선생이 말년에 수양하고자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을 찾아서 조선

영조 3년(1727년)에 지은 정자이다.

계곡을 낀 경사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에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현판 ‘사미정’과 내현판 ‘마암’은 정조(재위 1776년∼1800년) 때 이름난 정승 채제공이 직접 썼다고 전하고 있다.

조덕린은 본관은 한양, 자는 택인, 호는 옥천이다. 1677년 사마시, 1691년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사간,

동부승지를 지냈다. 당쟁의 와중에 휘말려 여러 번 유배당하였으나, 높은 도학과 절의로 명망이 높았다.

도암정

조선시대의 문신 황파 김종걸이 효종 1년(1650) 무렵에 세운 정자로 당대 유림들의 교유,

토론, 풍류를 위해지었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간결하게 꾸민 건물로 가운데 칸은 마루를 놓았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다.

누마루 주변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정자 앞의 연못, 인공섬, 큰 바위들과 노송 등 주변 경관과 정자가 잘 어우러져 당시 양반들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연비어약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속에  고기가 뛰어노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

로운데  이는 솔개와 물고기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타고난  길을 가기 때문이다라는 뜻으로, 

만물이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전체적으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도임을 말함이다

 

도암정 앞에는 연꽃이 많이 피는 곳이다 마을이 너무 좋아  3번이나 갔던 곳이다

경체정은 예조좌랑과 승지를 지낸 강윤과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완, 그리고 가의대 부를 지낸 강한

3형제의 우애와 덕행을 기리기 위해 강윤의 증손자인 강태중이 철종 9년(1858)에 지은 정자이다.

정자는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의 정사각형 건물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

강 씨 3형제는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화친에 반대하여 봉화로 은거한 강흡의 고손자로 가세가

기울었으나 서로 도우며 학문에 힘써 법전강씨 문중을 명문가로 다시 번창시켰다.

 

전국에 정자가 600여 곳이 있는데 봉화에 103곳이 있다고 한다

봉화읍내의 모습

 

13 Jours En France(하얀 연인들) / Francis 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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