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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2일 날 동탄 큰 여동생집에서 막내여동생 내외와 우리 내외 만나기로 해서 모처럼 동탄에서 

모두 모여 밤을 보내고 아침에 비가 내리는데 동장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우산을 받쳐 들고

방화수류정과 장안문을 거쳐 행궁으로 이동을 한다(5/3)

하설초

하설초는 작은 꽃들이 길게 늘어져 있는 꽃대를 가지고 있으며, 봄부터 여름까지 꽃을 피웁니다.

꽃은 주로 흰색이나 연한 분홍색을 띠며, 총대 위에 술이 없는 꽃을 피우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식물은 전통적으로 한방 의학에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하설초는 주로 염증 및 감염을 줄이고,

통증을 완화하며, 혈액 순환을 개선하는 데 사용됩니다. 또한 기침이나 가래, 기관지염 등 호흡기계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고 여겨지며, 간 기능을 개선하거나 간독성을 제거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수원화성 동장대(연무대)

동장대는 장수가 군사 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라고도 불린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훈련지휘소로 썼다.

동장대는 대지 전체를 3단으로 나누고 마당 한가운데에 장수가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었다.

본래 전면은 개방하고 나머지 삼면은 벽이나 창문을 단 형태였으며, 가장 안쪽에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건물 뒤쪽으로는 수키와로 담장을 꾸민 양롱장이 있다.

정조는 동장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려주는 호궤(犒饋) 행사를 베풀었다. 화성 축성이 마무리되던

시기인 1796년 8 웜 19일, 감독관과 일꾼 등 2,700여 명이 호궤에 참여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으로, 정식 명칭은 화성(華城), 별칭으로는 수원성(水原城)으로

불린다.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또한 1997년 12월 4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개최된

제21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원화성은 1794년(정조 18년) 2월에 착공하여 1796년(정조 20년)에 축성된 것으로, 성곽의 총길이는 5.74km에

달한다. 지금의 화성시 안녕동에 융건릉을 조성하면서 그 일대에 있던 수원도호부의 읍치를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만든 계획도시로, 화성의 축조는 정조의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수원 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참고하여 축조하였다.

특히 당시에 거중기와 같은 신기술을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건축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 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 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축성 이후 수 차례의 자연재해와 일제강점기한국 전쟁을 거치며 파괴되었으나, 축성 당시에 그림과 글로 설계도와

내용을 철저하게 남겨 놓은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 본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는

원본 그대로인 건축물만 등재가 가능했으나, 기록물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는 점이 인정되어 이례적으로

등재되었다. 이후 화성성역의궤도 조선왕조의궤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또한 설계도와 작업 진행 기록이 온전히 남아있는 덕분에 현대에 유지보수를 해도 세계유산 자격을 그대로 유지가

가능하다. 한 마디로 세계기록유산인 설계도와 작업진행기록의 존재로 온전히 유지보수가 가능한 세계유산이다.

동북포루는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시설인 포루로, 방화수류정과 동장대 사이 우뚝 솟은 지형에 있다.

‘각건대’라는 별칭이 있다. 각건은 선비들이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면서 쓰던 머리 덮개인데, 서까래 길이가

짧은 동북포루 형상이 각건을 닮아 이런 별명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화성에는 모두 5개의 포로가 있다

동북포루는 수원화성이 완공된 해인 1796년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치성(雉城)만을

남기고 멸실(滅失)돼, 1976년 ‘수원성복원정화사업’ 때 누각을 복원했다

수원화성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화수류정과 용연이다

1796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북문인 장안문과 동문인 창룡문 사이에 있어서 동북각루(東北角樓)로도 불린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1848년(헌종 14)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방화수류정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방화수류정은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3월 3일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었다

방화수류정 아래에는 용연(龍淵)이라는 작은 연못이 있다. 

수원천과도 연결되는 연못인데 최근 들어서는 봄과 가을에 피크닉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른바 SNS상에서 퍼진 수원의 인기 관광 명소다.
창덕궁 후원 부용정과 미묘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러한 연못-섬-정자의 조화는 조선 정원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데 방화수류정이 이렇게 된 것도 정조의 건축적 취향이 담긴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정조가 다녀갔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방화수류정

조선 정조 18년(1794) 건립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 경근오천(雲淡風輕近午天), 방화수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

”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평면은 “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조선 헌종

14년(1848)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용연

용연은 화성의 북쪽 성밖에 있는 연못이다

금강산 구룡연을 비롯해서 전국의 이름난 명소에 용연이라는 명칭이 두루 쓰였고 갖가지 전설이 있다

화성의 용연은 용머리처럼 생긴 용두 바위에서 유래했다 용두 바위에 있는 방화수류정은 용두각이라고도 부른다

화성성역의 궤에는 용이 반달처럼 생겼고 용두 바위는 물고기를 잡는 조대로 쓸만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용연의 물이 넘치면 서쪽의 출수구를 통해 수원천으로 흘러나간다 출수구에는 용이 되기 전 단계의 짐승인 

이무기 상을 새겼는데 원형이 잘 남아 있다

효연에 비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인 용지대월은 화성에서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꼽는다

북수문(홍화문)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두 개의 수문이 있다

북수문은 1794년 (정조 18년) 2월 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419년) 1월 13일에 완성되었다 

별칭은 홍화문으로 화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자는 무지개를 뜻한다

장괘 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처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북동포로

북동포루는 장안문의 동쪽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포루 5곳의 포로가 잇는데 주변 지형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 한다

포루는 벽돌로 만든 3층구조로 이래두츤은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상층은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누각을 만들었다 정약용은 중국의 제도를 두루 살펴 화성에 발전된 형태의 

포르를 설계했는데 그 모습이 화성의궤와 정리의궤에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장안문

북동치

홍이포

북동적대 

북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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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을 한바퀴 돌았다

수원시가지와 저멀리 광교산도 보인다 서노대는 성가운데서 다연발인 활인 쇠뇌를 쏘기위해서 높게지은 시설이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 두곳이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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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사대문 중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장안이라는 말은 수도라는

뜻으로 또 다른 서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안문이 정문이라는 것은 왕이 수도인 한양에서 수원으로 들어오는 문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1794년 공사를 시작하여 약 6개월에 걸쳐 완성했으나 현재 있는 누각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1978년 복원한 것으로 지금도 성벽 곳곳에 한국전쟁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 축성 기술의 결정체인

화성 장안문은 조선시대의 성문이자. 성의 정문이라는 점에서 조선 초기에 세워진 한양 도성의 정문 숭례문과

비교할 수 있는데 서울의 숭례문과 외관은 매우 유사하나 크기가 큰 것이 특징이며 숭례문에 비해 좀 더 새로운

것은 옹성, 적대와 같은 군사시설인 방어 시설을 갖춘 것이 특색이다.

비가내려 더 이상 진출 하기도 그래서 장안사에서 마무리 하고 행궁으로 간다

소리새 - 5월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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