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 배롱나무를 보고 집으로 오면서 반계정의 배롱나무는 어떤가 하고 들려봤더니
여기는 북향이라서인지 아직 필 기미도 없다

이곳 반계정은 조선 영조 51년(1775) 반계 이숙(1720∼1807)이 지은 정자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를 읊던 곳이다. 이숙은 세속을 떠나 시골에서 글을 읽으며 지내던 선비로 유명하였다.
이 정자는 밀양강의 맑은 물이 감도는 강 언덕 반석 위에 서 있다. 현재 정자 옆에 기거를 하는 사람이 있어
비교적 깨끗이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정자다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인지 아직 호박꽃이 활짝 피어 있는 모습이다



몇 년 전의 모습

벌써 포도가 익어가고 있다

반계정을 뒤로하고 헤산서원의 흰 배롱나무를 보기 위해 구도로로 집입하면 마을 앞에
이러한 배롱나무가 10여 그루가 보인다

중국에서는 배롱나무를 '자미(紫薇)'라고도 부른다. 자미는 '뭇 별들의 주인(萬星之主)'인 북극성을 가리키는데,
당나라 수도 장안에 있는 황제가 사는 궁궐인 '자미궁(紫薇宮)'에 이 나무가 많이 심어졌다고 해서 그렇게 불려져
온 것이다.
일본에서는 줄기가 매끄러워서 원숭이도 미끄러진다고 하여 사루스베리(猿滑, サルスベリ)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몇장 담고 밀양시 산외면 다죽리에 있는 혜산서원으로 간다

혜산서원의 신도비 옆의 오래된 소나무


오늘의 목적은 흰배롱나무 꽃이기에 신도비 뒤에 있는 배롱나무를 먼저 만나고
서원 안에 있는 흰 배롱나무를 보러 진입을 한다


서원으로 가면서 바라본 어느 집 담장의 능소화

그리고 그집의 배롱나무

다원서당에 있는 배롱나무

다원서당은 오래된 차나무와 향나무등 정원이 잘 정비되어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변칙으로 광산고택이라 현판을 달았다

1971년 서원의 경력을 확장 정비하고 각지에 분산되었던 일직손 씨 명현(名賢) 다섯 분의 서원 즉, 정평
손홍량(靖平 孫洪亮:1287-1379)의 안동 타양서원(安東 陀陽書院), 겸재 손조서(格齋 孫肇瑞:1412-?)의
밀양 서산서원(密陽 西山書院), 모당 손처눌(慕堂 孫處訥:1553-1634)의 대구 청호서원(大邱 靑湖書院),
문 탄 손 린(聞灘 孫遴:1566-1628)의 대구 봉산서원(大邱 鳳山書院), 륜암 손우남(綸菴 孫宇男:1564-1623)의
영천 입암서원(永川 立巖書院) 등을 후손들의 세거지인 이곳으로 옮겨 복설(復設)하고 혜산서원(惠山書院)
이라 편액 중건한 것이다. 서원의 규모는 1,3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우(祠宇), 강당(講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례문(尙禮門), 신문(神門), 중문(中門), 전사당(典祀堂), 신도비각(神道碑閣),
다원서당(茶院書堂), 이이정(怡怡亭), 고사(庫舍), 대문(大門)등 13동의 건물이 경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 다죽리는 연극배우 손숙씨의 고향이기도 하다

혜산서원
산외면 다죽리 죽서(竹西)마을에 세거 하는 일직 손 씨의 5현(五賢)을 받드는 서원으로 본래는 영조 29년
(1753년)에 창건한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1412-?)의 서산서원(西山書院)이 있던 자리이다.
겸재는 조선초기 단종의 왕위를 찬탈(簒奪)한 세조의 횡포에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충의(忠義)와 탁 절(卓節)로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오직 도학에만 전념한 학자인데, 후일에 사림들의
추앙을 받아 이곳에 서원을 세웠으나 고종 5년(1868년)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훼철(毁撤)된 후
그 집을 "서산고택(西山古宅)" 또는 "철운재(徹雲齋)"로 편액 하였다.

혜산서원 건물 뒤에도 이러한 흰 배롱나무가 한 그루 서있다

7~9월에 약 100일 동안 진한 분홍색의 꽃을 피우는 데, 꽃은 가지 끝에 원뿔모양의 꽃차례로 달리며
꽃잎은 모두 오글쪼글 주름이 잡혀 있다.
수술은 30~40개로 그 중 가장자리의 6개가 길고, 암술은 1개이고 암술대가 수술 밖으로 나와 있다.
암수한꽃이다.



벌써 감이 이렇게나 커진모습이다


칸나

혜산서원의 강당 앞에 오래된 차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무 앞에는 한때 일직 손 씨 밀양 입향조인 손광 공이 진성 현감 시절에 진성
(현재 산청군 단성면)에서 차나무를 가져와 식수했고, 현재 600년이 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지만, 최근 마을 어른들이 600년이 되지 않았다며 설명을 떼 버렸다고 한다.
아마도 고사한 후 다시 심었지 않았나 생각을 해볼 뿐이다



이렇게 돌아보고 집으로 왔는데 집에 오니 9시도 안 되었다
금년에는 여행관계로 더 이상 배롱나무를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1주일 동안 강원도 대관령쪽으로 휴양림 순회 떠납니다
다녀와서 찾아뵐께요
Billy Vaughn - Come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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