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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대원사와 덕천서원

남해편백자연휴양림으로 가면서 서울팀의 첫 방문을 위하여 대원사에 들렸다 (9/5)

차창으로 바라본 대원사 일주문 

날이 가물었어도 계곡이 깊으니 물이 많이 흐른다 

'지리산 대원사(智異山 大源寺)',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입니다.

신라 548년(진흥왕9년) '연기조사(緣起祖師)'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처음의 이름은 '평원사(平原寺)'로 불렸는데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없어지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1685년(숙종 11년)에 들어서 '회암 운권(檜巖 雲捲)'

선사가 덕산에 있던 '불장암(佛藏庵)'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평원사 옛터에 사찰을 중건하면서 '대원암(大源庵)'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 천광루(天光樓)를 지어 '선불간경도량(禪佛刊經道場)'을 개설하여 설법하면서 영남 제일의 강당이 되었습니다.

 

암자로 중창되었던 대원암은 경종 4년(1724년) 담암 태흠 선사가 사리탑을 보수하고, 고종 7년(1870년)에 이르러 '구봉 혜은(九峰 慧昕)'선사가 조사영당을 보수하며 방장실과 전각과 누각을 중건하였고 이름을 대원사(大原寺)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1914년 1월 2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절집 전체가 소실되었고, 이후 50여 명의 스님들이 중창을 서원하여 1915년 3월에 중창불사를 시작으로 1917년에 이르러 12동의 전각, 184칸의 대가람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1948년 여순반란사건 때 진압군에 의해 다시 전소되었고 이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 9월, 비구니 '법일(法一)'스님이 주지로 들어오면서 탑전을 짓고 중창을 서원하여 하나 둘 전각을 짓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리산 대원사는 경남 양산의 석남사, 충남 예산의 견성암과 함께 대표적인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웅전은 지금 수리 중

석가모니와 보현보살과 문수보살

대원사는 조선 후기부터 기록에 나오는 사찰이다.

처음에는 수행을 위한 작은 암자였으나 규모가 점차 커져 19세기 후반에 사찰로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되어 폐허로 있던 것을 1955년에 비구니 선원을 개설한 이후 중창되었다.

대웅전과 원통전을 중심으로 양쪽에 거대한 파초나무가 서있다 

종루와 봉상루 

원통보전은 현세의 부처님이신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전각이다

대원사 신중도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중(護法神衆)을 그린 불화로, 조선 후기 1794년(정조 18) 설훈(雪訓), 덕민(德旻),

언보(言輔) 등 3인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그림의 크기는 세로 144㎝, 가로 123.5㎝이다.

현재 대원사 선방(禪房)에 봉안되어 있으며, 2001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화면의 상단에는 제석천(帝釋天)과 천부중(天部衆), 하단은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천룡팔부(天龍八部)가

배치되어 있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에는 아래위로 꽉 차게끔 인물들을 그려 넣었는데, 상단의 중앙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두 손으로 꽃을 받쳐 든 채 정면을 향해 상반신을 드러낸 제석천을 두고, 좌우에는 2 보살과 일 궁 천자

(日宮天子), 월궁천자(月宮天子), 주악천인(奏樂天人), 동녀(童女) 등을 배치하였다. 이들 뒤에는 병풍이 둘러져

있어 마치 실내와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지만 상단과 하단을 구분 짓는 채운(彩雲)으로 인해 천부중들이

모두 구름 속에 묻혀 천상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경내의 사리전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8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기단의 위층은 이 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으로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는 대신 인물상(人物像)을 두었고, 4면에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새겨 놓았다. 탑신의 각 지붕돌은

 처마가 두꺼우며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있다. 8층 지붕돌에는 금방이라도 고즈넉한 경내를 깨울 듯

풍경이 달려 있다. 자장율사가 처음 세웠던 탑이 임진왜란 때 파괴되자 조선 정조 8년(1784)에 다시 세워

놓은 것으로, 드물게 남아있는 조선 전기의 석탑이다. 전체적인 체감비율이 뛰어나고 조각은 소박하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탑에서 서광이 비치고 향기가 경내에 가득했다고 하며,

마음이 맑은 사람은 근처 연못에 비친 탑의 그림자로 탑 안의 사리를 볼 수 있었다고도 한다

6.25 때 이팔 층 석탑만 남고 모두 불탔다고 한다 그것도 아군이 빨치산 은거를 막기 위해서 

유평마을까지 가면서 바라본 아름다운 계곡의 풍경

풀협죽도

하얀 무궁화

유평마을로 통하는 구름다리 이곳으로는 한 번도 가 보지를 않아서 어떻게 통하는지 모르겠다

덕천서원 앞 덕천강가에 있는 세심정

남명의 제자이자 유명한 성리학자인 최경영이 1582년(선조 15년)에 덕천서원 유생들의 휴식처로 세운정자다

 

덕천서원 안내문

외삼문인 시정문 

서원은 전형적인 전학 후 묘의 배치다. 앞에는 강당이, 뒤에는 사당이 있다. 건물은 크지 않지만 정연해 질서와 절도를

보여준다. 경내에 들어서면 먼저 강당이 보이고, 조금 더 오르면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 나타난다.

1576년 제자들이 남명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이 서원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1602년에 다시

지어졌다.

1609년에는 사액이 내려졌고, 흥선대원군의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20년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입구에는 5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굵은 줄기와 웅장한 가지가 세월의 깊이를 말해준다. 나무는 남명의

기개를 상징하듯 우뚝 서 있다. 강가로 내려섰다. 세심정이 보인다. 맑은 물가에 놓인 작은 정자는 이름처럼 마음을

씻고 다스리라는 뜻을 보여주는 듯했다.

동제와 서제에 배롱나무가 있는데 절정기를 지나서 겨우 몇 송이의 꽃들만 보인다

조식(曺植, 1501년 7월 10일(음력 6월 26일) ~ 1572년 2월 21일(음력 2월 8일)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 명종과 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대부분을 거절하였으며

아울러 한 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조식(曺植)의 자(字)는 건중(楗仲)이며, 경상도 삼가현 사람이다. 한미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숙부가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비로소 관료의 자제가 되어 사림파적 성향의 가학을 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30세까지

서울 집을 비롯한 부친의 임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혔고, 후에 명사가 된 인물들과 교제하였다.

 

조선 중기의 큰 학자로 성장하여 이황과 더불어 당시의 경상좌·우도 혹은 오늘날의 경상남·북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유일(遺逸)로서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였다.

 

그의 제자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 수백 명의 문도를 길러냈으며,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하였다. 사후 사간원대사간에 추증되었다가 북인 집권 후 1613년(광해군 7년) 

의정부영의정에 증직 됐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위키백과에서

서제인 수업재

동제인 진덕재 

서재는 평민자제가 동제는 양반자제가 주로 기거를 하며 공부를 했다

경의(敬義)'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주역(周易)>의 64괘 중 2번째인 '곤괘(坤卦)'의 문언(文言)에서

"무릇 군자는 경(敬)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義)로써 바깥을 반듯하게 한다"(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한다.

남명 조식 선생의 학문과 실천의 지표도 '경(敬)'과 '의(義)'였습니다. 그에게 있어 '경'과 '의'가 지닌 의미는

하늘의 해와 달과 같아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될 진리로 보았다.

조식 선생은 "'경'으로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서 실제로 행하라"라고 하여, 경에 근본을 둔 정신 수양과

의를 바탕으로 한 투철한 실천 정신을 강조하였다.

경의당(강당)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 

여러 현판들 

뜰에 상사화 두 송이가 피었다가 한송이는 다 지고 한송이가 거의 지고 있는 형태로 서 있다

잘 다듬어진 차나무 

부추꽃

내삼문

숭덕사

조식선생의 위패를 모신 숭덕사 사당 

 

9월에 따난사랑/유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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