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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진주성과의암

남사예담촌을 둘러보고 이곳 진주성으로 왔다

진주성공북문

공북(拱北)'이란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올린다는 뜻이다.

공북문은 17세기 이후에 그려진 진주성도에 진주성의 정문으로 나와 있으며, 2002년 5월 1일 홍예식 2층

다락루로 복원하였다. 공북문은 낮보다는 밤에 봐야 더 웅장하고 아름답다.

김시민장군

나는 충성을 맹세하고 진주성을 지켜 국가 중흥의 근본으로 삼을 것이니 힘을 합쳐 싸우면 

천만의 섬 오랑케들 무엇이 두려우랴! 나를 따르는 자 살 것이며 도망가는 자 멸할 것이니 

감히 도망하는 자는 목을 베리라 나의 엄지는 이미 떨어지고 식지와 장지로 활을 당기다

남은 세 손가락마저 떨어질 때까지 싸우리라

맥문동

김시민 전공비

진주촉성장춘단비

중간중간 노란 가락지의 조형물이 보인다 

논개가 일본장수를 껴안고 의암에서 뛰어내릴 때 손깍지가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낀 가락지라고 한다

호국종각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촉석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 정면 5칸, 측면 4칸. 남강(南江)의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어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다.

1241년(고종 28)에 창건하여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으며, 1365년(공민왕 14)에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과거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1725년(영조 1) 목사 안극효(安克孝)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중수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6 · 25 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에 재건하였다.

촉성루를 남장대라고도 한다

유유히 흐르고 있는 남강 10월에 유등축제가 열리면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농보 정문부의 시

조은 한몽삼의 시

촉성루기 

배율육의

면제정을 보의 시로 촉성루의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진양수계. 금란계

남강 하류 쪽 

의암 

원래는 위험한 바위라 하여 위암으로 불리다가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이 바위로 유인해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후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하여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의암 바위 옆에 새겨진 '의암'이라는 글씨는 정문부의 유언에 따라 그의 둘째 아들 정대륭이 전서체로 쓴 글씨인데

남강에 물이 찼을 때는 안 보이다가 물이 빠지면 보인다.

의기논개지문 

의랑논개의 비

의기사

논개영정

의기사의 오죽

진주성우물

영남포정사

영남 포정사는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병사 남이홍이 신축하였다.

고종 32년(1895년)에는 진주 관찰부, 건양 원년(1896년)에는 경상남도 관찰사 청사의 관문으로 사용되었다.

일명 망미루(望美褸)라고도 불리며, 경남도청이 부산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도청의 정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충무공 김시민장군상

 

llana Avital - Ne me quitte 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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