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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광주.제주

적상산 안국사

와인동굴과 적상산전망대를 돌아보고 이곳 적상산 8부 능선에 있는 안적사로 왔다 (8/23)

반대쪽에는 국중제일정토도장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차창으로 바라본 적상산 안적사 일주문

적상산 사고터에서 굽이돌아 오르는 안국사의 초입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 맞배건물인 일주문이 있다.

낮은 단층기단 위에 다듬지 않은 2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운 뒤 창방과 평방을 얹고 그 위에 화려하기 그지없는

다포로 장엄하였다. 일주문에는 1992년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이 쓴 ‘적상산 안국사(赤裳山 安國寺)’라는

편액과 1995년 여산(如山) 권갑석(權甲石)이 쓴 ‘국중제일정토도장(國中第一淨土道場)’이라는 2기의 편액이

걸려 있다. 특히 권갑석(權甲石)이 쓴 편액 ‘國中第一淨土道場’은 무학대사가 이곳을 ‘국중제일의 길지’라고

한 설화에서 유래한 편액으로, ‘안국(安國)’과 ‘정토(淨土)’를 바라는 안국사의 염원을 담고 있다

 

옛날 사용하던 우물

쥐손이풀 

암국사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군 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안국사가 호국사지에 있다. 전각 15여 개로 1995년 이건, 중창되었고 산 정상에 산정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가을철 단풍이 절경이며, 산 정상까지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할 수 있다. 인근에는 무주리조트와

나제통문 구천동 계곡이 있다. 주요 문화재는 영산회상괘불(보물)과, 유형문화재인 극락전, 호국사비,

사적 적상산성, 기념물 사고 등이 있으며 세계의 불상을 수집하여 모신 성보박물관이 있다.

청하루

 

안국사의 누각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목조 맞배건물이다. 1990년대 적상호의 수몰로 인해 안국사 옛터에
있던 누각을 해체한 후 1992년에 복원한 것으로, 현재 불교용품점과 무주 33경의 비경을 엿볼 수 있는 전망대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외부는 이중구조로 누각 아래로 출입하며, 건물 내부에는 ‘석실비장(石室秘藏)’ㆍ‘청하루(淸霞樓)’ㆍ‘
극락전(極樂殿)’ㆍ‘산신각(山神閣)’ 등 수몰되기 전 안국사에 있던 현판들이 걸려 있다.
특히 이 가운데 현판 ‘淸霞樓’는 송석(松石) 이도익(李都翼)의 글씨로 1859년에 쓴 것으로, 가로 165㎝,

세로 55㎝의 장방형 목판에 활달한 필체로 양각되어 있다.

이곳은 본래 호국사가 있던 자리인데 불타고 빈터만 남았었는데 적상사가 양수발전소 건립당시

저수지에 들어가 이곳으로 이전을 하였다고 한다

안국사 극락전
높게 쌓아 올린 축대를 한 걸음 올라서면 누각 위로 구름에 두둥실 떠 있는 듯한 안국사의 큰 법당이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맞배건물로, 1991년 원행(圓行) 스님이 옛 안국사 터에서 옮겨지은 것이다.
잘 다듬어진 자연석 축대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정면 3칸에는 꽃빗살문을 칸마다 설치하였다.
정면과 좌측은 4분합이나 우측은 2분합으로 협칸의 구조가 특이한 평면을 보여준다. 건물 외부는 정면과 배면에
다포계양식의 공포를 설치하였는데, 외부는 3출목으로 되어 있으나 내부는 4출목으로 쇠서는 연봉으로 장엄한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 건물 외벽은 삼면에 심우도(尋牛圖)를 비롯하여 석가탄생도 등 다양한 설화적 도상을 표현하였으며
, 단청은 얼금모로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엄하였으나, 극락전 우측창방 쪽에는 안국사의 설화를 입증하듯 딱 하루만큼
단청할 분량의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안국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삼존불

안국사 극락전에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있다. 불상의 조성기록은 없으나,
고개 숙인 자세에 굵고 짧은 목, 장방형의 얼굴에 오뚝한 코, 자연스런 천의(天衣)의 옷주름, 사실적인 손표현
등에서 17세기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이 보인다. 본존인 아미타여래좌상은 앉은키 67㎝, 무릎 폭 43.5㎝의 중형
불상이다. 전반적으로 고개를 숙여 움츠린 듯한 어깨에 구부정한 자세를 보이며 장방형의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띤
원만한 상호를 가지고 있다. 얼굴은 중앙계주와 정상계주를 가진 나발에 턱이 짧아지고 각이 진 모습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오뚝한 코에 삼도가 표현된 짧은 목을 지니고 있으며,
 
법의는 통견의로 자연스런 옷주름과 사실적인 손표현에서 아미타불의 원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좌협시인
관음보살은 본존불과 흡사한 모습으로 짧은 상투 속에 보관을 착용하였으며, 보관(寶冠) 아래쪽으로 자연스럽게
머리칼을 흘러내리고 있어 보살의 오묘함이 느껴진다.
우협시인 세지보살은 관음보살과 대칭적인 구도로 조각수법에 있어 아미타불상의 특징을 그대로 닮고 있다.
관음과 세지보살은 앉은 키 61㎝, 무릎폭 36.5㎝로 아미타불상과 함께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은 현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후불탱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도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다보여래ㆍ문수ㆍ보현보살이 있고,
왼쪽에 아미타불ㆍ관음ㆍ대세지보살이 서 있는 군도양식이다. 이와 같은 구도는 조선시대 대형 불전인 대웅전이나
대광명전 등에 3폭의 불화가 배치되는 형식을 한 화면에 담은 것으로, 본존불을 강조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기한 것이다. 이 괘불은 길이 10.75m, 폭 7.2m의 대형으로 임금과 왕비ㆍ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해 발원하였으며,
1750년경 경남 고성의 운흥사(雲興寺)를 중심으로 전국 각처에서 활약한 의겸비구(義謙比丘)가 참여한 것이 주목된다.
주존인 석가모니는 화면 중앙에 서 있는데, 이목구비는 큼직하며 건장하고 각진 어깨,
 유난히 길게 늘어진 팔, 짧은 하체 등 이상화된 불상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하는 듯하다.
얼굴인상은 원만하지만 다소 불균형한 듯한 신체표현, 통견의를 걸친 어깨에서 느껴지는 묵중하고 건장한 신체와
거신형 광배 등에서 의겸의 화풍을 짐작할 수 있다.채색과 문양은 녹색과 주홍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회색ㆍ황색
ㆍ분홍 등 중간색을 배합하여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또 연화문ㆍ모란과 변형된 꽃문양이 단청문양처럼
도안화되어 괘불의 군도형식과 더불어 영축산에서의 설법장면을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792년(정조 16)과
1809년(순조 9)에 후배지(後背紙)를 중수한 기록만 전하고 있어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평화의불

 회승당과 범종각

안국사 지장전
1992년에 원행(圓行) 스님이 극락전 아래 세운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낮은 단층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얹고 그 위에 원형의 기둥을 세운 주심포계 건물로, 평방 없이 창방 위에 익공식
연화공포가 도출되어 있다. 건물 외부는 2ㆍ4분합의 빗살창호와 4기의 주련이 걸려 있으며, 어칸 상부에는
일중거사(一中居士)가 쓴 지장전 편액이 양각되어 있다. 건물 내부는 육엽연화문으로 단청된 우물천장과 불단으로
구성되며,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도명존자ㆍ무독귀왕 및 지장탱이 봉안되어 있다.



요사채

회승당 

문화수련관으로 템플스테이 숙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안국사의 범종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범종은 1788년(정조 12)에 조성된 곳으로써,

종신의 형태는 입구가 약간 벌어진 형태이며 천판(天板) 위에 용뉴(龍紐)가 결실되기는 하였지만,

조선시대 범종의 전통을계승하면서 외래 형식을 가미한 조선후기 범종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중앙부 종신(鐘身)에 주성기(鑄成記)가방형곽을 이루고 있어 범종의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

또한 주성기에 보이는 주조장인 이만중과 권동삼은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인물로서,

이는 주조장의 계보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국사 천불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건물로 극락전 우측 축대 아래에 있다. 1991년 옛 사고(史庫) 터에 있던 선원각을 옮겨 지은 것으로, 전란의 화마를 입지 않은 유일한 사고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중간에 가로로 방(枋)을 쳐서 중층의 구조를 가진 독특한 모습으로, 하부는 사고를 수장한 창고를 겸하며 상부는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 어칸에는 4분합의 빗살문과 강암(剛菴) 선생이 쓴 ‘千佛殿’ 편액이 걸려 있으며, 좌우 측면에는 내부에 채광을 공급하는 특이한 교창이 있다. 건물 내부는 중앙 불단을 중심으로 좌우 보조단이 있으며, 1995년 합성수지로 만든 석가여래좌상과 문수ㆍ보현보살을 비롯하여 석고천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후불탱은 붉은 바탕에 금니로 출초한 홍탱으로 금어 남인식(南仁植)이 1969년에 조성한 것이다.

성보박물관

세계각국의 불상과 탱화 그리고 불교유물과 도자기 등

5백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사찰 규모에 비하여 성보박물관이 잘 정돈되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불상과 불교문화 도자기등 많은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어 불교와

별 인연이 없는 분도 한번쯤 둘러볼만하다

전각사이로 바라보이는 덕유산 향적봉

 

Emmanuelle - Joe Youh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