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수목원. 윤두수고택. 땅끝전망대. 윤철하구택을 차례로 돌아보고 이곳 윤선도 유적지에 왔다
돌아볼 곳이 많아서 오늘 남은 시간에 다 돌아볼 수가 있을까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유적들이
부근에 다 모여 있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6/19)

고산윤선도 유적지 초입 표지석

연지




오우가(五友歌)
1. 序首
내 버디 멋치나 하니 水石과 松竹이라
東山의 달오르니 긔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다삿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2. 水
구룸빗치 조타 하나 검기랄 자로 한다
바람 소래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츼뉘 업기 난 믈뿐인가 하노라
3. 石
궂은 머스 닐로 퓌며셔 쉬이 디고
플은 어이하야 페르난닷 누르나니
아마도 변티아닐 산 바회 뿐인가 하노라
4. 松
더우면 곳픠고 치우면 닙디거날
솔아 너는 얻디 눈서리랄 모라난다
九泉의 불의 고단줄을 글로하야 아노라.
5. 竹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난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四時예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5.1. 月
작은 거시 노피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듕의 光明이 너만 하니 또잇나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벋인가 하노라
【원문】오우가(五友歌)

잔디정원이 잘 다듬어 저 시원스럽게 보인다


주말 이곳에서 국악 공연이 있는 것 같다


고산 오우가정원은 약 2,000평 규모로 오우가에 나오는 다섯 가지 벗인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을 주제로 한
한국전통정원으로 조성. 특히 사모정에서 고산 선생이 산중신곡 등 작품활동을 했던 금쇄동을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입니다.



녹우당은 고산의 4대 조부인 어초는 윤효정(尹孝貞, 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
600년 전통을 이어온 해남윤 씨 어초는 공파 종가인 녹우당은 덕음산을 뒤로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호수 은행나무
수고 23m 둘레 5.9m 수령 500년
해남윤 씨 득관조이신 오초는(윤효정) 공의 장남 귤정(윤구) 공의 1513년 (중종 8년) 진사시 합격과
1516년(중종 11년) 문과 급제를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다

고산 윤선도선생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시비
1. 춘사(春詞)
우는 것이 뻐꾹샌가 / 푸른 것이 버들 숲가 /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 안갯속에 들락날락 /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맑은 깊은 연못에 / 온갖 고기 뛰 논다.
2. 하사(夏詞)
석양이 좋다마는 / 황혼이 가까웠다 / 배 세워라 배 세워라
바위 위에 굽은 길이 / 솔 아래 비껴 있다 /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푸른 나무숲 꾀꼬리 소리 / 곳곳에 들리는구나.
3. 추사(秋詞)
수국에 가을이 드니 / 고기마다 살쪄 있다 /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만경창파 싫도록 놀아보자 /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인간세상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
4. 동사(冬詞)
물가의 외롭게 선 솔 / 홀로 어이 씩씩한고 / 배 매어라 배 매어라
험한 구름 원망 마라 / 인간세상 가린다 /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파도 소리 싫어 마라 / 속세 소리 막는 도다.


고산 윤선도 시비기

충헌 각忠獻閣
해남 윤 씨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중요한 고문서와 교지ㆍ유품 등보 관하기 위해
세운 장서각藏書閣으로장서각藏書閣으로 윤선도와 윤두서를 비롯한 해남 윤 씨 가문의
역사 자료를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충헌 각 건물

사랑채인 녹우당.
집 전체를 녹우당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사랑채를 녹우당이라고 하며 집 뒤편의 비자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푸른 비가 내리는듯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녹우당은 고산이 수원에 있을 당시 효종이 고산에게 하사한 집으로 고산 윤선도는 봉림대군(효종)의 스승이었다.
녹우당은 고산이 82세 되던 1669년 뱃길로 옮겨와 다시 지었다.
원래 호남지역 양반집의 건축양식은 ‘ㄷ’ 자이거나 ‘ㅡ’ 자 집이나 녹우당은 서울이나 중부지방 양반가와 같은 구조인
‘ㅁ’ 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때 아흔아홉 칸에 달하던 녹우당 고택은 현재 55칸 정도만 남아 있다.
녹우당은 우리나라 사대부 양반가의 고택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녹우당 하면 고택 전체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나, 녹우당은 이 집의 사랑채를 말한다.
이 건물이 들어섬으로 인해 전체적인 모습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사랑채 현판으로 걸려있는 ‘녹우당(綠雨堂)’이라는 당호는 고산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와 절친했던 옥동 이서가
‘녹우당’이라는 현판을 써준 것으로 이때부터 이 집의 공식적인 명칭이 됐다. 옥동 이서는 집 앞의 푸른 은행나무 잎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을 보고 녹우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이곳 녹우당은 조선후기 공재 윤두서의 학문과 예술의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다산 정약용, 소치 허유 등 쟁쟁한
문인예술가들이 머물거나 교류한 곳이 되어 해남의 문예부흥이 이곳 녹우당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녹우당의 역사는 고산 윤선도의 4대조이자 해남윤 씨 어초는파의 시조가 된 어초은 윤효정(尹孝貞, 1476~1543)이
백연동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이 집의 역사와 건축형태는 지금까지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거나 중건을
하고 또 보수 등을 거듭하면서 오랜 세월을 이어와 지금의 녹우당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처음의 건물 역사에 대한 문헌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어초은이 연동에 들어온 시기로 보아 대략 15세기
중기에 지어져 지금까지 이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녹우당의 영역 속에 있는 주 건물로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헛간, 그리고 안 사다, 어초는 사당, 고산사당과 좌측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어초는 추원당(追遠堂)이 있다.
또한 이외에도 고산서원과 후원에 별당채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이곳 녹우당의 고산 사당은 영조 3년(1727년)에 불천지위(不遷之位)로 지정되어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사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불천지위는 보통 국가의 공이 인정될 때 불천지위로 지정되어 모시게 된다.
따라서 이곳은 입향조인 어초는 공과 불천지위인 윤고산의 사당을 따로 지었다.
그리고 집안 동쪽에 사대조를 받드는 안사당이 있다. 현존 5대 봉사를 하고 있는 안사당은 순종 21년(1821)에
세웠으며 그 1년 뒤인 순조 22년(1822)에는 어초는 사당을 중수하였다.

현재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의 14대손인 종손 윤형식(尹亨植) 씨와 종부 김은수(金恩秀) 씨가 살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종가에 머물며 차밭을 일구고 제사를 모시며 종가를 돌보고 있다.
불천위 제례와 4대 봉제사, 가을 시제, 설·추석 차례까지 합치면 일 년에 30여 차례 제례를 모신다.
일 년에 두세 번 제례도 번거로워하는 시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일이니 종가의 종손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사당도 세 개나 있다. 남동쪽 귀퉁이에 선조의 위패를 모신 사당(祠堂)이 있으며, 외원(外垣) 바깥에 윤선도를 모신
고산사당(孤山)과 증조인 윤효정(尹孝貞)을 모신 어초는(漁樵隱) 사당이 있다.

캡처한 사진
녹우단 사진들은 주인이 외출 중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캡처한 사진입니다

원래 ㄷ자형인 안채이지만 사랑채를 덧붙인 독특한 ㅁ자형 구조.
안채는 서쪽으로 중앙에 3칸 대청을 두고 좌우 아래로 방과 부엌, 창고 등을 적절히 배치한 모습이다.

안채에 걸린 일로향실(一爐香室) 현판.
추사가 제주도 유배 중에 차를 보내주는 초의 스님의 성의에 고마운 뜻을 전하기 위해 제자 소치의 인편으로
이 글씨를 써서 보냈다고 하는데 일로향실은 차를 끓이는 다로(茶爐)의 향이 향기롭다는 의미라고 한다.

소나무 보호수
수고 24m 둘레 3.4m 수령 300년
밑둥치 하나가 하늘로 치솟는 우람한 수형을 이루고 있는 이 곰솔은 불천지의 로 모셔지고 있는
고산 사당 옆에 풍치목으로써 그 기품을 잘 유지하고 있어 보호가치가 커 지정을 하였다

고산사당
고산 사당은 고산 윤선도(1587~1671)를 배향하고 있는 불친위 사당이다
고산 사후인 1727년(영조 3년)에 불친위로 지정되었다
불친위는 안사당에서 4대까지 모시고 묘로 가는 대신 영구히 사당에서 모실 수 있게 하고
있으며 보통 나라에서 공이 인정될 때 허락한 신위다

어초은사당 (지금 보수 중)
어초는사당은 어초은 윤효정(1476~1543)을 배향하고 있는 불친위 사당이다
윤효정은 덕음산 아래 이곳 백련동에 처음 터를 잡고 해남 윤씨가를 중흥시킨 인물로 사당 뒤에는 윤효정의
묘가 있다 녹우당 공간에서 어초는 제각 어초은 묘와 함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윤효정은 삼개옥문 적선지가라 불리게 할 정도로 적선을 실천하며 가문을 빛내게 하였다
매년 음력 11월 15일 시제사를 지낸다. 삼개옥문 적선지가란?
착한 일을 많이 하여 덕을 쌓아 지옥문을 세 번 열어 조상이 지은 죄까지 씻어 내어 구원한다는 뜻

좌로 가면 어초는 공묘 우로가면 비자림 숲이다

녹우당 뒤편 숲 속에 있는 어초는 윤효정 묘소.
해남윤 씨 문중을 명문가의 반열에 올려놓고 세 아들을 과거에 합격시킨 어초는 공파의 시조다

녹우당 뒤편의 숲 속에서 만난 추원당(追遠堂).
추원당은 이곳 백련동에 처음 터를 잡은 어초는 윤효정(1476~1543)의 제각으로 추원(追遠)은 돌아가신 조상이나
부모를 추모하고 숭배함을 뜻한다. 1935년 윤정현에 의해 지어졌다

추원당제각을 마지막으로 윤선도의 유적지를 다 돌아보았다

내려오는데 물까치들이 어찌나 시끄럽게 하는지 담으려고 하니 쉴 새 없이 날아다녀 겨우 이 정도 담았다
When I nee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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