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마을의 유래는 이 태극도를 빼놓고는 말할수없다
감천의 옛 유래는 감내다 감은 검에서 온것이며 신이란 뜻이다. 천은 내를 한자로 적은 것이다
다른 유래는 물이 좋아서 감천이라 했다고 한다. 그이전에는 내를적어 감내 또는 감래라고 하였고
다내리 (다대안쪽마을)로 부르기도 하였다. 반달고개는 아미동과 감천동을 연결하는 교통로로서
왕래가 잦았던 고개로 감천2동에서 서구 아미동을 넘어 갈수있으며 천마산과 아미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태극도는 1918년에 조철재가 증산 사상에 기초하여 세운 종교로서 4천여명의 태극도
신도들이 이 반달고개 주변에 모여 집단촌을 만들었는데 이 태극도 신앙촌이 중심이되어 1958년
현재의 감천 2동이 만들어졌다
연탄은행 기부받은 연탄을 자원봉사자들이 어려운 가정에 배달해 주고있다
태극마을이 형성되기시작할때의 모습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있던 대중목욕탕을 문화가 흐르는 휴식 문화공간으로 재생하였다
옛 목욕탕의 흔적을 남기도록 최소한의 마무리로 재생시켜 도자기 체험공방 겔러리와 카페
강좌실 방문객 쉼터로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체험과 교류로 마을 주민들과 방문객들의
문화 소통의 장이되며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골목의 148계단 관광객들이 오르내림 체험을하고 있다
줌으로 땡겨본 골목 계단들
감천동은 한국전쟁 당시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 까지 민족 근대사의
흔적과 기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산복도로는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지역의 지형적 특성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문화적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독특한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는 감천동만의 독특한 장소성을 보여주고 있다
뒷집을 가리지 않게 지어진 주택의 미덕이 살아있는 감천동은 현대의 도시인 들에게 예전의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서로를 배려 하면서 살을 부비고 사는 민족 문화의
원형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다
방문객 쉼터
게스트 하우스도 보이고
미로같은 골목길
작은 카페도 있고
문화마을 빵집도 있다
감내카페도 다시 담아보고
화분대의 기발한 발상
감천마을을 둘러보고 광복동으로 이동 거리를 둘러보며 모임장소로
거리에는 많은 인파와 트리로 장식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음악소리 소음에 가깝다
사슴과 눈썰매가 인상적이다
부산타워 모습도 보이고
완전 빛의 거리다
많은 사람들이 바램과 소원을 적어 걸어두는 소원탑
삼거리에는 희망탑도 조성해놓고
비상(飛翔)
해방 70주년 분단 70주년 태극 문양처럼 휴전선은 남과북으로
인파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다
국제시장 노점상들도 한목 잡으려는듯
카렌다를 팔려고 펼처 놓았으나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는것 같다
금년에는 자선남비가 유난히도 많이 설치 돼 있는데 썰렁한 느낌이든다
부평동 족발골목으로 이동
오늘 우리 모임을 주선하는 친구의 의료기상도 담아본다
Une Femme Amoureuse / Mireille Mathieu
'부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래 읍성과 복천동 고분군 (0) | 2015.12.22 |
---|---|
충렬사 (0) | 2015.12.21 |
부산 감천 문화마을1 (0) | 2015.12.09 |
국화 전시장을 돌아보고 시립박물관 뜰로 (0) | 2015.11.10 |
평화공원 국화 전시장 (0) | 2015.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