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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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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춘문(麗春門)은 대조전과 희정당 동쪽 중간쯤에 남향으로 난 문이다,

              1920년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 지으며 집상전 자리로 물려 짓는 바람에

              현재는 대조전에 속한다.여춘(麗春)은 '아름다운 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며 태양을 맞이하는 동쪽의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경희궁 숭정전의 동쪽문도 여춘문(麗春門)이였다.






                                  흥복헌은 대조전 동쪽에 붙어있는 익각이다 주로 임금이 친왕과 조정대신들을

                            접견하던 장소로 쓰였다 한다. 경술 한일합병 이라는 국치를 가져온 어전회의가

                            열렸던 역사의 현장 이기도하다


                                                                        대조전 내부의 모습


                                  선평문은 희정당의 북쪽에 있는 대조전의 정문으로 이문을 통해야만 대조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정면 삼칸의 삼문으로 높은 계단위에 위치했는데 이것은 왕비의

                            침전을 함부로 볼수없게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선평은 화평을 세상에 펼친다는 뜻






              창덕궁 희정당(昌德宮 熙政堂)은 원래 창덕궁의 내전에 속한 건물이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건물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연산군 2년 궁내의

                 숭문당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면서 당호를 희정당이라고 바꾸면서 창덕궁

             한 건물로 되었다.

                                   선정문은 왕이 선정문에 나와 백성들과 친히 대화를 나누고 배풀던 문








                                 숙장문은 왕이 친국을 하던 곳이라 한다

                                  호위청은 인조원년 궁중을 수호하기 위해서 설치한 군대다

                                  대장은 공신이나 척신 혹은 국구(왕의장인) 맡았다

      인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건물. 보물 제813호. 정전(正殿)에

      이르는 출입문으로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 문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처음 창건된 것은 1405년(태종 5)으로 창덕궁의 창건 때 지어졌다.

      임진왜란으로 본래의 건물이 불타 없어지자 광해군 즉위년에 창덕궁을 재건하면서 다시 세웠는데,

      이 건물도 1744년(영조 20) 인접한 승정원에 불이 나면서 연소되어 좌우행각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이듬해인 1745년에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창덕궁 인정전은 태종 5년 창덕궁 창건 때 지은 건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즉위년에 복구되었다. 이후 순조 3년 선정전 서행각에서 난 화재로 다시 소실되고,

            이듬해에 중건된 후, 철종 7년 해체·보수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인정전 앞뜰의

           품계석은 정조 6년에 설치된 것이다. 인정전 좌·우로는 동행각 36칸과 서행각 38칸이 딸려 있다.










          창덕궁 정청(政廳)은 이조와 병조에 속한 사무용 건물로 ‘정청(政廳)’은

        정무를 보는 관청’이란 의미이며 이조(吏曹)나 병조(兵曹)의 전관(銓官)이

        도목 정사(都目政事)를 보던 곳이다. 여기에는 사헌부(司憲府)의 대사헌(大司憲),

        병조 당상관(堂上官), 병방 승지(吏兵房承旨), 사관(史官) 등이 참예하여 관리의

        전형(詮衡) 임면(任免) 출척(黜陟) 등 인사에 관한 일을 의논하고 처리하였다.

        동국여지비고에 따르면 동전(東銓: 이조)의 정청(政廳)은 사라진 연영문(延英門)

        안에 있었고, 서전(西銓: 병조)의 정청(政廳)은 빈청(賓廳) 서쪽을 빌려 썼다고

        되어 있다. 동궐도에는 연영문(延英門) 동쪽 행각과 인정문 서쪽 행각에

        각각 정청(政廳)이 조성되어 있다

                              진선문에 북을 달아 신문고 역활을 했다 한다




                                                    약방(藥房)

                내의원인 약뱡입니다. 예전에는 약뿐만 아니라 병원을 통칭하여 약방이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때는 이곳이 헐려 내의원을 성전각으로 옮겼습니다. 왕실 가족을 진료하고

                의사들이 학문을 정진하는 곳이기도 하였답니다. 밑에 난 구멍들은 굴뚝이 아니고

                통풍시설이로 합니다.

 



                          만복문(萬福門)은 양지당의 남문으로 남쪽행각에 있는 문입니다. 

                          양지당(養志堂)

              양지당은 조상을 공양해서 기쁘고 즐겁게 한다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선원전과 인정전 사이에 있으며 임금님이 선원전에서 제사를 모시기 전에 목욕재개 하고

              향을 피우던 어재실(御齋室)이라 합니다. 또 궁궐을 보수한다든지 할때는 이곳에

              중요한 것들과 어진을 보관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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