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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투덕왕릉과 띠엔무 사원

 

후에 관광지 안에는 외국인 가이드 단속이 심해 버스속이나 관광지 입구에서

 설명을 듣고 자유관람을 해야만 했다.

카이딘 왕릉을 둘러보고 난후 투덕왕릉을 관람했다.

후에 시내에서 7km 떨어진 반 니엔산에는 투덕황제의 왕릉이 있다.
투덕황제는 응엔 왕조를 가장 오랫동안 통치했던 황제였다고...
 응웬왕조 중 통치기간(1847~1833)이 36년으로 가장 길었던 투덕왕릉의 무덤이다...
 투덕왕 본인이 직접 설계해서 지었고 생전에도 즐겨 찾았던 곳이라고...
살아서는 휴식처로, 죽어서는 영생을 위한 안식처로
삼기위해 3년동안에 걸쳐 건설하였다하다.
 그런데 정작 투덕황제의 시신은
제 3의 장소에 묻혔다고 알려져 있다

                          저앞에 보이는 건물이 충겸사 투덕왕은 이곳에서 꽃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고

                          때때로 시를 쓰기도 했다한다

 

                                      유겸사 와 유경호 이곳에서 왕이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비정(碑亭) :비문은 일반적으로 자식이 아버지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며 적었는데 뚜덕황제는

                                       자신이 직접 비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잘한것도 못한것도.병때문에 자식을 자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조카를 입양했다함

                   이비를 만들기위해 돌을 50km거리에서 4년에걸처 이송하였다함.무게가 20톤이 넘는다고한다

                                                      투덕왕릉 인데 정작 무덤은 딴곳에 있다는 주장

 

 

 

                                                                                    왕의 집무실인것 같다

 

투덕 왕은 생전 104명의 아내, 후궁들을 두고
최고의 사치를 누리며 살았다 하는데,
 당시 프랑스 식민지가 되어가던 때라 실권이 없던 왕으로써...
살아서는 별장, 죽어서는 자신의 무덤으로 삼은 곳이니
세월이 무상하다고 해야 하나

 

 

 

 

 

                                       

                                       명겸전 용상을 자세히보면 왕이 앉아 발을 올려 놓는 해태상이 마주보고있다                          

                                                                                왕이타던 가마인듯

                        충겸사에서 시를 쓰고 유겸사에서 낚시를 즐기고 유겸호에서 뱃놀이를하고 우측에

                        호수를 만들기 위해서 파낸 흙으로 인공섬을 만들어 작은 집을 짓고 동물을 기르고

                        104명의 후궁들과 향락으로 36년을 살았으면서도 후사가 없으니 색에 빠저 방사를

                        많이해 무정자증이 아니었을까 ?

후에는 흐엉강(Song Huong)이 흐르고 있는데 흐엉은 향강(香江)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도 Perfume River라고 불린답니다.

강변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공원도 있고 수상식당도

 많이 있습니다.

 

               베트남 후에(市)에 있는 후에 티엔무사원(Thien Mu Pagoda)

               후에시내에서 향강(Perfume River)을 따라 남서쪽으로 4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19세기에 세워진 8각 7층 석탑 높이만 해도 21m가 넘는 유명한 석탑이다.

               본당 좌측으로 돌아가면 틱광득 스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불교탄압에 항거해 분신으로 소신공양한 틱광득 스님이 수행하시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법당 뒤쪽으로 돌아가면 연못이있고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아담한 정원이 나왔다.

                                                                    부처님 사리탑이라는데 창살 넘어로 들여다봐도 무슨 집무실같다

                                                                     1601년에 건립 21m에 달한다

 

 

 

복연탑을 지나면 본당으로 들어 가는 삼문이 보이고 모두 여섯개의 신상이 있는데

보통 네개가 있으면 사천왕이라고 하는데 여기는 여섯이니 육천왕인가

 

 

 

 

본당 좌측으로 돌아 가면 틱꽝득 스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티엔 무 사원의 주지로 있던 틱꽝득 스님은 부패한 월남정부의 불교탄압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티엔 무 사원으로 부터 사이공까지 먼길을 지금 전시되어 있는 차를 타고 가서 미대사관

 앞에서 분신을 했다고 합니다.

1963년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또한 월남 국민들의 마음이

 정부를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면서 마침내 월남군은 월맹군에게 패하고 1975년에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빛바랜 낡은 자동차 뒤편에는 한 장의 대형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사진작가 ‘말콤 브라운(Malcom Browne)’에 의해 촬영되어, 1963년 세계의 보도사진(퓰리처상)에

 선정된 이 사진 속에는, 놀라운 장면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격렬하게 치솟아 오르는 화염(火焰)속에서도 전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가부좌(跏趺坐)한 채, 선정(禪定)에 든 틱 광덕 스님의 마지막 모습이랍니다.


이 한 장의 사진과 마주하는 순간, 저는 ‘화염 속에 핀 연꽃’이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아무런 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왼쪽 벽면에 걸려있던 두 장의 사진이

 다시 눈에 띄었습니다. 쇠잔해가는 베트남 불교의 앞날을 유난히 염려하였던 스님의

 사진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그 어떤 불의(不義)와도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수행자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그 유명한 ‘

영원의 심장(Eternal Heart)’으로 알려진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던 틱 광덕스님의 소신공양 의식이

 끝난 후에도,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틱 광덕스님의 온 몸이 불타고 사그라졌건만, 웬일인지 몇 시간이 지나도,

스님의 심장만은 계속 불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외신기자들에 의해, 삽시간에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간 이 한 장의

 사진이야말로, 오늘날 베트남 통일의 초석을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빌려온글

 

 

 

 

 

 

                                            어디를가던 옛날 자전거는 오토바이로 교체가돼 도로를 질주한다

                               투덕왕릉과 티엔무 사원을 둘러보고 한식당에서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조개국물로 저녁식사를 했다 술반입은 금지 소주한병에 7불 한국사람이 더무섭다

 



 

도란의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