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少太山)이 태어난 영촌마을, 어린 시절을 보낸 구호동(九虎洞), 마당바위, 노루목[獐項],
선진포(仙津浦), 범현동 재각(軓縣洞齋閣), 언답(堰畓), 구간도실(九間道室),
구인기도봉(九人祈禱峰) 등의 유적이 포함되어 있다.
영촌마을의 생가는 없어졌다가 최근에 복원되었으며, 구호동은 소태산이 산신과 도사를 만나려고
노력하던 곳이다. 마당바위는 구호동에서 삼밭재로 오르는 산중턱에 있는 넓다란 바위로
11∼15세까지 산신을 만나기 위하여 기도하던 곳이다.
노루목은 구호동과 영촌마을의 중간지점에 있는 고개로 1916년 4월 28일 이곳에서 대각(大覺)을
이룬 것을 기념해서 만고일월(萬古日月)이라는 비가 세워져 있다. 선진포는 지금의
영산선원(靈山禪院)에서 1㎞ 떨어진 해변 나루터이다.
소태산이 구도시절 법성포 장에 가기 위하여 배를 기다리다 입정상태(入定狀態)로 한나절을
서 있던 곳이다. 범현동 재각은 소태산이 크게 깨달은 후 9인의 제자를 얻어 첫 집회를 열고
십인일단(十人一團)의 단조직을 한 곳이다. 불법연구회기성조합(佛法硏究會期成組合)을
결성한 첫 집회장소이기도 하다.
언답은 1918년 3월부터 1년에 걸쳐 소태산과 그의 9인제자가 바다를 막아 만든 논이다.
당시는 2만 6000여 평이었으나 그 뒤 2, 3차 공사 끝에 현재 6만 8000여 평에 이른다.
구간도실은 1918년 12월 방언공사를 진행하면서 옥녀봉 아래 신축하였던 원불교 최초의
건물로서 백지혈인(白指血印)의 법인성사(法認聖事)가 이루어졌던 유적지이다.
구인기도봉은 소태산의 9인제자들이 1919년 3월부터 10월까지 각각 기도를 드렸던 산봉우리,
즉 중앙봉(정산)·설래바위봉(一山)·밤나뭇골봉(二山)·촛대봉(三山)·눈썹바위봉(四山)·
마촌앞산봉(五山)·옥녀봉(六山)·공동묘지봉(七山)·대파리봉(八山) 등을 일컫는다. 영산성지에는
현재 원불교 영산출장소·영산선원·성지고등학교·영산교당 등이 있다.백과사전에서
영산 성래원
차와 도자기가 있는 휴식의 공간입니다.
뜰에는 매실이 주렁주얼
공부하는 학생들이 휴식도하고 식사도하는 식당과 휴게실
원불교대학
원불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불교의 한 종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아닙니다.
시작은 불교의 교리의 영향을 받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의 4대 종교로서 위상을
드높이고 있습니다.
원불교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교리아래, 우주의 근본원리인
일원상(一圓相, 즉 O의 모양)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종교입니다.
외부로부터 전해진 다른 종교와 달리 원불교는 전라남도 영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옥녀봉
탄생가 바로 뒤편에 있는 산봉우리입니다
소태산이7세경 천지자연에 대해 의문을 품고 구름을 잡기 위해
옥녀봉에 올라 갔으며 산 아래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의심을 풀기도 했던 곳입니다
소태산대종사가 탄생하여 성장하고 구도과정 끝에
마침내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크게 깨친 후,
9인의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성사 등
교단의 초석을 다진 기록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먼저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백제 시대에 불교가 법성포를 통해 들어온 지역입니다.
때문에 이 지역에는 불교가 널리 퍼져있었고, 원불교도 바로 불교의 금강경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교조(敎條)인 박중빈이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박중빈은 어려서부터
우주와 인생에 대한 회의를 품기 시작하였는데, 5년 동안의 수양 끝에 깨달음을 얻게
된 그는 특히 《금강경(金剛經)》이 자신이 깨달은 진리와 일치함을 깨닫고 근본 진리를
밝히는 데는 불법(佛法)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여 석가를 선각자로 존숭하는 동시에
불교와의 인연을 스스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펴기 위하여서는
종래의 불교와는 크게 다른 새 불교 ·새 교단을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원불교를 설립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전대열 객원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
대립하고 있는 이념논쟁의 절정에 공산주의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막스주의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무신론이라고 하지만 모든 개개인의 머릿속 사상과 이념 그리고
신앙심을 무슨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겠는가.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말로 절대기피의
대상으로 꼽았지만 공산국가에서도 교회와 성당 그리고 사찰이 존재한다.
공산종주국이었던 소연방이 붕괴된 후 모든 위성국들은 독립을 선포하고 각자의
성향에 따라 종교의 자유를 만끽한다. 표면적으로 공산당 지배하에 경영되는 중국의 정치도 모든 종교는 자유롭게
선교활동을 한다. 다만 독립운동을 벌이는 티베트는 체제내의 불교활동은 장려하고 있지만 다라이라마 등
전통불교는 용납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강박한 공산지배를 받고 있는 북한까지도 표면상 불교를 용인하며 기독교도 교회를 소유하고
있지만 활동은 미미한 편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왕조시대에 불교와 유교가 지배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성황을
이뤘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기독교의 활성화가 눈에 띈다. 일본의 침탈에 저항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동학혁명세력은 오늘날 천도교의 근원으로서 한 때 동학교도의 숫자만도 300만을 넘었다. 인구 1천만에
불과한 나라에서 3분의 1이 동학교도였다는 것은 썩어빠진 왕조를 뒤엎고 새로운 개벽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그만큼 많았음을 의미한다.
그런 와중에 태어난 종교가 원불교다. 원불교의 원형은 불교다. 원불교에서 사용하는 종교용어는 대부분
불교와 비슷하다. 다만 불교가 부처님 형상을 조각하여 법단에 모시는 것과 달리 원불교에는 일원상(一圓像)이
있을 뿐이다. 기독교는 십자가로, 원불교는 일원상으로 상징된다. 원불교 창시자는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이다.
그는 동학농민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영광에서 태어났다. 영광은 굴비의 고장으로 정읍 고창 부안과
이웃이라 동학혁명의 태동지(胎動地)나 다름없다. 그는 자라면서 일제의 침탈로 망해가는 왕조의 가렴주구 등
배신과 모략이 난무하는 말세적인 정신황폐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나라를 바로 세우고,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정신개벽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되었음을 크게 깨닫는다.
1891년에 태어난 소태산은 1916년 마침내 원불교의 개교를 선포한다. 나이 스물여섯이다. 그는 사은 사요
삼학을 원불교의 교리로 내세웠다. 사은(四恩)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을 말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과
나를 낳아주신 부모,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그리고 화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각 개인의 수신, 가정의
제가(濟家), 그리고 사회를 다스리는 법률의 존재가 없으면 하루도 안녕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는데서 법률을 말한 것이다.
현대의 종교들이 대부분 기복사상에 빠져있고 천당이나 극락 또는 연옥과 지옥이라는 내세의 행불행으로 몽매한
백성을 공포에 몰아넣는 것과 달리 순수한 삶의 기본에 충실한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사요(四要)는 자력양성,
지자본위(智者本位), 타자녀교육(他子女敎育), 公道者崇拜)와 같은 구체적 실천덕목이다. 스스로의 힘을 기르고,
지식과 지혜를 본위로 삼는다는 것이다. 타자녀교육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자식에게만 쏟는 이기적 교육을
지양하고 다른 사람의 자녀에게도 똑같은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엄청난 사교육비에
음서제까지 등장하고 있는 비뚤어진 가정교육의 잘못됨을 이미 100년 전에 간파하고 이를 경계한 것이다.
후진양성이 교육의 대도임을 선포한 것임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삼학(三學)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말한다. 부정과 부패에 빠지지 않는 올바른 정신자세를 가져야 하며,
편파적이고 과격한 논리에 떨어져 많은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는 상식이하의 행동은 사리에 어긋난다.
여기에 정의를 취하고 불의를 버려야만 올바른 사회정의를 이룩할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가르친 것이다.
위에서 살핀 사은 사요 삼학의 가르침은 실천과 궁행을 통해서 일상의 생활을 수행을 위주로 하는 영적인
삶과 실제적인 삶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만들어 영육쌍전(靈肉雙全)의 산 종교가 될 수 있음을 확실하게 밝혔다.
소태산은 몸소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초창기 영광에서 간척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3만평의 농지를
확보하는 자립기반을 성취했다. 또 당시로서는 개념이 없었던 저축조합을 장려하였으니 인간의 기본인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여 실제생활과 일체화시켰다. 지난 5월1일 서울 상암경기장에서는 세계 23개국
신도들이 참여하는 원불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원불교로서는 처음인 대집회를 연 것이다.
6대종단 대표와 삼부요인들이 참석한 5만 명의 대집회는 처음 시작할 때 고통과 고난을 함께 했던 아홉 분의
소태산 제자 송규 이재철 이순순 김기천 오창건 박세철 박동국 유건 김광선 등에게 종사(宗師)의 법훈을
수여함으로서 원불교 성인으로 모셨다. 경산 장응철 종법사는 10개국어로 번역된 원불교전서를 봉정하고
법문을 발표했으며 한은숙 교정원장은 정신개벽 서울선언에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두 변하고
지혜로워져야만 한다는 실천 강령과 미래비전을 제시했다.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100주년에 민족통일과
국민화합 그리고 민생안정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대구일보에서
백수해안길로 접어들며
우리가 사는 동해안에서는 찾아볼수없는 뻘과 민물길
저 건너에는 불교 최초 도래지도 보이고
영광대교도 개통이되고
칠산정에서 바라본 노을빛
백수 해안도로도 담아보고
등대와 대크 전망대
노을전시관에 들렸는데 관람시간이 넘어 못들어가고
영광대교도 건너보고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