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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대

 설악산만경대를 비때문에 못들어가고 시간이 남아 선교장과 경포대를 덤으로 들렸다

033-640-4471 강원 강릉시 경포로 365

가을이 짙게 물들어 감에따라 주차장에 감도 붉게 익어간다

                 경포호를 주변을 달리는 자전거 나도 저렇게 달려보고싶다

    새섬과 월파정 오른쪽에 현대 씨마크호텔 전에 두번이나 왔을때 짖고 있던데 완공이됐나보다

               호수에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들

 

경포호수 홍장암에 얽힌 전설 (박신과 홍장의 사랑 이야기)
고려 우왕때 강원도 안렴사 박신은 백성을 잘 다스려 칭송이 드높았다. 그는 강릉기생 홍장을 깊이

 사랑하였다. 그때 강릉부사 조운흘이 홍장과 박신의 사이를 알고 한번 놀려주려고 궁리를 하였다.

 어느 날 박신이 순찰을 마치고 홍장을 찾아갔다. 이때 홍장은 조부사와 짜고 숨어버렸다. 조부사가

 홍장이 갑자기 죽었다고 박신에게 알리니 박신은 몹시 서러워하였다. 어느 날 조부사는 박신을

 초청하여 경포대 뱃놀이를 베풀었다. 석양에 경포호수에 이르니 경호는 십리나 뻗쳐 물결과 주변이

 어울린 아름다움이란 비길 데가 없었다. 두 사람의 취흥이 무르익을 때 문득 멀리 호수를 보니

그림 배 한 척이 보이는데 그 속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를 가늘게 부르고 있는지라 박신은 놀라

저 배가 무슨 배인가를 조부사에게 물었다. 조부사는 짐짓 놀라는 체하면서 저것은 선녀의 놀음으로

 경포에는 가끔 선녀가 뱃놀이를 하는데 우리도 가까이 가서 뱃놀이하며 같이 놀아보자고 하였다.

조부사와 박안렴사는 호수에 배를 띄워놓고 그림배만을 보고 있었다. 그 속의 여인은 필경 홍장의

죽은 넋이 선녀로 화하여 오늘 경호에 나타난 것 같다면서 배를 저어 가까이 갔다. 그 미인은 분명

홍장인지라 박신은 깜짝 놀라며 그제서야 조부사에게 속았음을 깨닫고 세 사람은 경포호수에서

 한바탕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 둘은 행복한 여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76년 6월 17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이 자리는 삼국시대 때의 고찰(古刹)인 인월사(印月寺)

 터였다. 방해정은 1859년(철종 10), 운정동 강릉 선교장(江陵船橋莊:중요민속자료 5)의 주인이자 통천군수(通川郡守)

였던 이봉구(李鳳九)가 지은 건물이다. 당시는 선교장의 부속건물이었으나 지금은 박연수가 소장하고 있다.

이봉구는 예빈시(禮賓寺) 참봉을 거쳐 청안현감과 통천군수를 지냈다. 선교장의 주인으로서 관직에 나간 사람은

 이봉구가 처음이었으므로 그 전에는 이씨댁(李氏宅)으로 불렸으나, 이봉구가 통천군수를 지낸 이후부터는

 통천댁(通川宅)으로 불렸다.

방해정은 관직을 물러난 이봉구가 1859년(철종 10) 선교장의 객사(客舍) 일부를 헐어다가 짓고 만년을 보낸 곳이다.

 화강암 장대석 두벌대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기와로 된 ㄱ자형

 팔작지붕집이다. 왼쪽은 마루방이고 그 옆에 큰방, 오른쪽 끝에는 누마루가 있다.

누마루는 네모난 화강암 주춧돌을 높게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웠다. 마루방 뒤쪽에 작은방이 있고 마루방과 큰방

 사이는 여섯짝 분합문(分閤門)으로 되어 있다. 누마루 뒤쪽은 부엌이며, 부엌에는 다락이 설치되었다. 전면은 모두

 분합문에 띠살문을 달았다. 누마루를 제외한 전면과 왼쪽 측면에 툇마루를 놓았고 누마루 하부에는 머름을 둘렀다.

 방해정이라는 현판 글씨는 서승보(徐承輔)가 썼다.

방해정은 평지에 있지만 문을 열면 경포호의 전경과 호수 건너편 초당동의 소나무숲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온돌방·마루방\·부엌이 갖추어져 있어 살림집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예전에는 집 바로 앞이 호수여서 대청마루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놀았으며, 배로 출입하였다고 한다. 이봉구의 증손

 이근우(李根宇)가 1940년에 중수하였고, 1975년에 다시 보수하였다. 1940년에 이근우는 주변을 금잔디로 가꾸고

 이가원이라 이름 붙이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다.

 

 

 

 

 

 경포대

 

 더위를 피해 동해 찾아간다면 강릉에 있는 경포대를 떠올린다.

그 유명한 경포호 북쪽 언덕에 있는 누각인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호수 풍경이 관동팔경에 속할 만큼

 시원하고 장쾌하다. 바다를 오가다 들러도 좋을 곳이다.

경포호는 석호다. 모래 같은 퇴적물이 만(灣)의 한쪽 입구를 막으니 바다가 호수가 됐다. 그래서 호수

 옆이 바로 피서지로 이름 날리는 경포해변이다. 호수는 원래 둘레가 12km나 될 만큼 넓었다는데

지금은 약 4km로 줄었다. 한 바퀴 도는데 한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요즘은 경포대 주차장 인근에서

 자전거도 빌려준다.

이 넓고 예쁜 호숫가 북쪽 언덕에 경포대가 있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강원도의 한 관리가

 당시 방해정 뒷산 인월사 옛터에 세웠던 것을 조선 중종 3년(1508)에 강릉부사 한급이 지금의

자리에 옮겼다.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어제시'를 비롯해 숱한 시인묵객들의 글이 적혀있다.

 율곡 이이가 열 살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도 볼 수 있다.

경포대에 올라 호수를 내려다 보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멀리 보이는 월파정이 참 예쁘다. 월파정은

 호수 한 가운데 있는 누각이다. 경포호 그림이나 사진에 꼭 등장하는, 작은 바위(새바위) 위에

서 있는 그 누각 맞다. 이거 들어앉은 자리가 기가 막혀 경포호의 상징이 됐다. 경포대 주변으로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우거졌다. 여름 볕 피하며 가볍게 산책할 수 있다.

경포대에서 보는 풍경은 달 뜨는 밤에 더 멋지다. 경포대가 관동팔경에 든 것도 최고의 달맞이

명소이기 때문이다. 은은한 달빛 비친 수면이 부드럽고 곱다. 송광 정철의 애를 그토록 태웠던

 풍경이 여기 있다. 그는 '관동별곡'에서 이곳에서 보는 달밤 풍경이 관동팔경 중 으뜸이라고 했다.

 달빛 쏟아지면 하늘, 바다, 호수, 그리고 술잔과 임의 눈동자에 달이 뜬다고도 했다

 

 

 

 

 

             처진 소나무 한그루가 경포대 아래를 가리우고 있다

                            경포대 앞의 충혼탑

 

 

 

 

 

 

 

                                      경포대 오르는길의 시비들

 

 

 

 

           마지막으로 경포호와 경포대를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흥해에서 해물탕으로 저녁을 먹고 부산으로 직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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