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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울산

하동 토지 세트장 박경리 문학관

오래전부터 옆지기와 설명절에 애들 다녀가면 여행하자 약속했기에 비소식에도 우산두개

챙겨서 간단한 간식거리 준비해 길을 떠난다 정체가 심할거라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시원스럽게 잘도 빠저나간다 일찍 출발했기에 9시도 않돼 평사리 주차장에 도착 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비는 지짐지짐 내리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야 있나 드라마 세트장과

박경리 문학관으로 출발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은 이렇게 아무도 통행을 안하는것 처럼 고요하다

 

 

                  상술인지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부엉이는 돈을 부르고 코끼리는 돈을 지킨다는

                  문구에 더 관심있게 이것저것 둘러보며 사진으로 담아본다

 

 

 

평사리는 악양면 서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며 봉대리와 이웃한다. 상평·외둔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졌다.

 산기슭에 상평마을이, 섬진강 변에 외둔마을이 터를 잡았다. 2011년 3월 31일 현재 면적은 4.19㎢로 이 중

 밭이 0.33㎢, 논이 1.16㎢, 임야가 1.60㎢이며 총 100가구에 187명[남자 85명, 여자 1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하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평사리는 섬진강 포구로서 수운 및 육로 교통의 요충지이며, 마을 앞으로 넓은 악양들을 끼고 있어 일찍이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둔촌동(屯村洞), 평사동(平沙洞), 검두동(儉頭洞) 각

일부가 통합되어 악양면 평사리가 되었다.

서쪽으로 지리산 삼신봉에서 뻗어 나온 신선봉 줄기가 솟아 있고, 동쪽으로 악양천이 서북에서 동남 방향으로

 흘러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토지드라마를 보신분은 알겠지만 여기가 월선이네집이다

                   천연염색을 하는 집에는 서희와 길상이를 상호로 사용하고있다

                   비는 추적추적 산허리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두꺼비를 꼭 닮은 두꺼비바위 그런데 소원석이란 또 무엇일까 관광지마다 소원글귀는

                단골매뉴가 됐있다

 

                 토지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집과 특징을 살펴본다

 

               

 

 

 

 

 

 

                  서서방네는 주민이 살고 있는것 같다 외양간에는 소가 있다 저분이 주인인가보다

 

 

 

 

                 우리 중학교때 김이평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김이평이를보니 더 반갑네

 

 

 

 

 

 

 

 

 

                물래방아간하면 이효석의 매밀꽃 필무렵이 생각나게 한다

토지의 줄거리를 차례로 나열해본다

<토지>는 우리의 역사적 흐름을 잘 말해주는 귀중한 소설이다. <토지>는 중요한 만큼 여러 사람에 의해 논의되어 왔다.

<토지>를 심도 있게 다룬 기사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동학농민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뒤 조선의 식민지화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을 타게 되었다. 러시아와 일본은 각기 아관파천과

 명성황후 살해를 통해 조선의 식민지배를 꾀했다. 일본 낭인들의 국모 시해라는 전대미문의 치욕을 맛본 유생들은 단발령을

 계기로 수하들과 농민군 잔여세력을 규합하여 전국적인 의병투쟁을 전개하지만,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농민군의 분발에 당황하고 일본의 이른바 내정개혁 강요에 몰린 정부는 갑오개혁을 단행한다. 왕권 제한,

 조세의 금납화, 도량형 통일, 문벌 타파, 과거제 폐지, 노비법 폐지, 과부의 재혼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갑오개혁은

 농민전쟁에서 집약적으로 분출된 봉건체제의 내부모순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였음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이 일본의 조선 내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박경리(70)씨의 대하소설 <토지>는 농민전쟁과 갑오개혁, 을미의병 등이 차례로 근대사의 연표를 채우고 지나간

 1897년 한가위로부터 문을 연다. 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식민지배와 민중의 검질긴 독립투쟁, 그리고 2차대전에

이은 해방까지의 긴박한 역사를 큰 호흡으로 훑어내려갈 소설의 첫 장면은 뜻밖에도 평화롭고 풍요롭다.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 서는, 마음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그렇기로서니 수상한 세월 힘없는 나라에서 맞이하는 박복한 백성들의 명절이 어찌 평화와 풍요의 겉보기에만

 그칠 것인가. 과연 작가는 곧 이어서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라며

시의 경지를 방불케 하는 문장을 내밀고 있다. 더구나 그 비애의 속내인즉, 산문적 사실성과 치열성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고많은 이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토지>는 만석꾼 대지주 최참판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고명딸 서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토지의 상실과

 회복을 둘러싼 대하 드라마를 전개한다. 치수의 어머니 윤씨 부인이 동학 접주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낳은 자식 김환이

 의붓형수인 별당아씨와 밤도망을 치는 사건은 장강처럼 흘러갈 소설의 초입에 물살 급한 여울목을 마련해 놓는다.

상피붙은 남녀를 쫓는 긴박한 추격전이 벌어지는 한편에서는 치수의 고임을 받아 그의 만석지기 농토를 차지하고자

하는 하녀 귀녀의 음모, 치수가 비명횡사한 뒤 최참판댁 재산과 토지를 노리는 그의 재종형 조준구의 행보, 마을 남정네

 용이와 무당 딸 월선이의 비련 등 인간사의 오욕칠정이 쉬임없이 피었다 진다. 거기에 동학군 출신인 대목수 윤보,

 의병에 가담하는 김훈장, 독립군으로 변신하는 길상과 그 아들, 조준구가 대표하는 상업영농과 서희의 곡물무역의

 자리바꿈에서 볼 수 있는 경제의 단계적 발전 등 사회·역사적 변모가 포개진다.

<토지>의 무대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3개 도 12개 군에 걸치는

남도 5백리를 내려와 하동포구에서 남해로 흘러들기 전에 강의 북동쪽으로 빚어놓은 악양들을 내다 보며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폭이 넓지도 수심이 깊지도 않으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으로 꼽히는 섬진강은 발원지에서부터

 남해 바닷물에

몸을 풀기까지 지리산 자락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구비쳐 내려오는데, 강을 바투 쫓아오던 경상도쪽

산자락이 문득 멀찍이 물러나 앉으면서 조물주의 선물처럼 이루어 놓은 너른 벌이 바로 악양들이다. 김제·만경의

 광활함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근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규모다. `외지 거지가 악양에 들어와도 1년은 놀고

 먹을 수 있다'는 말은 그런 규모가 가능케 하는 풍요와 여유를 가리키는 것일 터이다.

하동에서 멀지 않은 통영에서 출생해 진주에서 학교를 나온 박경리씨는 1960년대의 어느날 화개의 친척집을

 방문하는 길에 악양들을 접하고는 이곳을 당시 구상하고 있던 <토지>의 무대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소설을

 집필하는 도중 평사리를 직접 답사하지는 않았다. 소설 속 동네 구조와 실제의 평사리의 모습이 같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겨울 한복판의 악양들에는 <토지> 서두와 같은 벼이삭의 물결 대신 날선 바람의 갈기만이 휘날리고 있다.

어쩌다 한둘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는 이들이 눈에 뜨일 뿐 너른 들에 사람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 소의 음메 소리가 서로 화답하는 마을에서도 사람을 마주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담쟁이덩굴이 벋어 올라간 오래 묵은 돌담들, 담 옆 헐벗은 나무에 달랑 두 개 달려 있는 까치감, 마루 밑에

 넣어 둔 단호박 덩이들과 처마 밑의 메주, 시레기 다발 따위가 대신 사람의 자취와 체온을 전해준다.

악양들의 옥답과는 달리 산쪽으로 다가앉은 마을에는 유난히 돌이 흔하다. 거의 모든 집의 담이 돌로 되어

있음은 물론 마을 뒤편의 다랑논의 논둑 역시 돌을 쌓아 만들어 놓았으며, 돌을 고르다 못한 언덕빼기는 단감나무

 밭으로 알뜰하게 활용하고 있어 땅밖에 모르는 농부들이 박토를 일구며 흘린 땀을 짐작케 한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소설 속 임이네와 강천댁, 두만네, 막딸네 등 아낙들이 시름을 털어놓거나 신세를 한탄하는가 하면 작은 일로

 아옹대기도 했음직한 공동우물과 빨래터가 남아 있다.

박경리씨는 평사리를 답사하지 않았지만, 이곳 주민들은 <토지>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볼 기 뭐 있다꼬

 사램들이 시도 때도 없이 와 쌓십니더”라는 가게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서 평사리가 이미 문학사적 지명으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평사리에는 여관이나 여인숙, 식당은 물론 민박집 하나도 변변한 것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것이 생겨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달랑 지도 한 장 들고 물어 물어 찾아오는 수많은 독자들을 위해 마을

 입구에 이곳이 소설 <토지>의 무대라는 안내판 하나 정도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

<토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줄거리를 소개해볼까 한다.

최참판 댁의 정신적 지주인 윤씨 부인은 젊어서 남편을 잃고, 동학당 접주로 사형을 당한 김개주와의 관계에서 환이라는

 아들을 낳게 된다. 그 후, 환은 동학당이 되어서 몸을 피하다가 구천이라는 가명으로 최참판 댁에 숨어든다.

 별당 아씨와의 애정 관계로 갈등하던 환은 결국 자신의 형 최치수의 부인인 별당 아씨와 함께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윤씨 부인의 비밀을 캐내려던 최치수는 이종형 조준구와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성불구자가 된다.

 그 후 최치수는 아내(별당 아씨)와 구천(환)을 찾기 위해 총을 들고 지리산을 뒤진다. 그러나 별당 아씨가 자기의

 품에서 숨을 거둔 뒤, 환은 연곡사 우관 스님에게로 간다.

한편, 신분이 천한 귀녀는 최참판 댁의 대(代)를 거둘 욕심으로 최치수에게 접근하지만 실패한다. 그러나 귀녀는

 강 포수와 칭성이를 꼬여 씨를 받은 후, 최치수를 살해하고 최씨 집안의 대(代)를 이으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윤씨 부인이 귀녀의 자백을 받아낸다. 용이는 무당의 딸 월선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마을의 임이네와 관계를

 맺어 홍이라는 아들을 얻게 된다.

어느 날, 대(代)를 잃은 최씨 집안의 재산을 탐내고 있던 조준구가 찾아온다. 호열자와 흉년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윤씨 부인이 죽자, 조준구는 최씨 집안을 독차지하게 된다. 고아가 된 어린 서희는 집안을 지키기 위해 조준구와

 맞서 싸운다. 노일전쟁과 을사 보호 조약이 체결되자, 대세는 친일파인 조준구에게 더 유리해진다. 그러나 조준구에

대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마을 사람들이 의병을 일으켜 최참판 댁으로 쳐들어오지만, 조준구는 찾지 못한다.

서희와 길상은 재물을 챙겨 간도(間島)로 떠난다.

간도에 정착한 서희는 가문 되찾는 것을 목표로, 길상과 공 노인의 도움을 얻어 노력한 끝에 거부(巨富)가 된다.

이를 위해 그녀는 친일 관계도 하였다. 길상과 혼인한 서희는 두 아들을 얻는다. 길상은 옥이네에 대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내 서희의 가문에 대한 집착과 신분 때문에 고독을 느낀다. 이 때, 환(구천)이 나타난다. 환은

 별당 아씨가 죽은 후, 윤봉. 윤도집. 지삼만. 판술 등과 함께 의병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활동 방법에 관한 견해차

 때문에 간도로 건너오게 된 것이다. 간도에서 환은 길상과 이동진, 권필응 등을 만난다.

한편, 서희의 결혼으로 충격을 받은 상현은 서울로 돌아와 일본 유학을 떠나지만 정신적 패배감 때문에 안주하지

못한다. 서희와 헤어진 봉순은 기생이 된다. 이름도 기화로 바꾸고 미모와 소리 잘하는 기생으로 이름이 난다.

 

봉순 또한 간도로 건너가 서희와 길상 등 고향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외로움으로 인해 마음의 지주(支柱)를 갖지 못한다.

용정에 정착한 용이는 월선과 함께 국밥집을 한다. 그러나 돈에 욕심이 많은 임이네 때문에 괴로워 하고, 장사가

 몸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홍이는 퉁술포에 있는 청인의 소작농이 되어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벌목군으로

 일한다. 용이가 떠난 후, 월선은 홍이와 함께 살다가 암에 걸려 생을 마친다.

한편, 조준구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정한조의 아들 석이는 송관수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한 후, 조준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조준구 집에 하인으로 들어온다. 서희는 광산 사업에 실패한 조준구에게서 빼앗긴 토지와 재산

 문서를 되찾은 후, 월선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독립 운동을 위해 떠난 길상과 환(구천)과 헤어져 귀향길에 오른다.

윤도집이 운봉과 함께 죽은 뒤, 동학의 세력은 급격히 무너진다. 지삼만은 청일교 교주가 되어 많은 신도들로부터

 돈을 긁어모으다가 심복인 지 서방에게 살해당한다. 중국인 행세를 하던 금녀는 김두수에게 붙잡혀 묵비권으로

맞서다가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벽에 머리를 부딪쳐 자살한다.

한편, 길상은 계명희 사건에 연루되어 2년형을 언도 받고 복역한다. 아버지 길상을 존경하는 환국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으려 하지만 어머니(서희)의 권유로 와세다 대학 법과에 입학한다. 유학 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상현은

기생 기화를 모델로 소설을 써 보지만 심한 무력감과 자괴심으로 방황한다. 상현을 사모하던 명희는 자신의 사랑을

 상현이 받아들이지 않는 상현과 결혼하지만 실패한다. 상현의 아들 양현을 낳은 뒤, 명희는 상현과의 관계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자신을 보살펴 주던 서희를 떠난다.

기화는 그를 사모하는 정석(정한조의 아들)에게 돌아오지만 석이가 학교에서 쫓겨나고 가정 파탄이 생기자 섬진강에

 몸을 던진다. 이를 안 상현은 그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소설을 출판한 뒤, 고료를 양현을 위해 써달라고 한다.

 명희는 양현을 자기가 데려가려고 하지만, 서희는 양현을 친자식처럼 키운다. 서희는 두 아들이 시국 사건에

참여하게 되자 새로운 걱정이 생긴다. 명희는 우여곡절 끝에 자살을 기도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유인실은

 오가다의 아이를 낳은 후 독립 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간다.

             평사리 문학관이 새로지은 건물 현위치로 이사를해 박경리 문학관으로 개관을 하였다

               박경리여사의 동상 실물이 이렇게 작은지는 모르지만 내생각은 실물 크기로 제작했으면 좋았을걸

1926년 10월 28일 경상남도 충무시(지금의 통영)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박금이. 1945년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 씨와 결혼해서 이듬해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50년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한 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6.25 전쟁통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되었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을 잃게 된다. 이후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 한국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토지」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 8월 집필 26년 만에 「토지」전체를 탈고하였다.

 

1980년 지금의 박경리문학공원 자리인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에 정착하여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1992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소설창작론을 강의하였고, 1995년 같은 대학교 객원교수로 임용되었다. 1996년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하고,

 이어서 1999년토지문화관을 개관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토지문화관은 문학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학술 문화 행사를 기획,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 5일 폐암으로 타계하여 고향인 통영시에 안장되었다.

백과사전에서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겠지

                      박경리여사의 글이 연재된 현대문학지

                    이렇게 깨알같은 국어사전을 확대경으로 봐가며 원고를 집필했겠지

                                 토지에 얽힌 간행물들

 

 

                           젊은시절의 사진

                    어린시절 어머니와함께 찍은 사진 같다

 

                        박경리 여사의 유품들

 

                        노년의 삶을 담은 사진들

 

 

 

 

                   박경리 문학관에서 바라본 악양들과 앞산은 지리산 끝자락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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