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桂山洞)은 약전골목이 된 대구읍성의 남쪽 성곽 옆에 신천을 끼고 형성된 동네를 말한다. 계산동의 ‘계산’은
계수나무가 있는 산을 의미하는데 계산은 현재의 동산병원이 들어선 동산의 다른 이름인 듯하다. 동산은 東山과 銅山
두 가지를 다 쓰고 있는데 1905년 대구지도에는 東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동산 바로 밑에 신천이 흘렀으며
그 신천을 따라 형성된 동네가 계산동이다.
계산동은 서성로, 남성로와 서문로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 서문시장과 염매시장을 인근에 두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양반들과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인지 올곧은 근대 민족운동가와 뛰어난 문화예술인들이 이 지역에서 많이
태어났다. 민족시인 상화 이상화, 요절한 천재시인 고월 이장희,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운동가 서상돈,
교육자이자 시인이며 정치가인 한솔 이효상, 이상화의 형 독립운동가 이상정, 이상화의 동생 IOC 위원 이상백,
서예가 회산 박기돈,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청구대학 설립자 야청 최해청등
이상화가 말년까지 살았던집
서상돈고택 입구 대문은 따로 있는데 저렇게 큰건물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따로 출입을 하게 해놨다
복원하기전에 앞에 이미 큰건물이 지어져 있었는듯 출입문은 따로
이상화 형 이상정 댁 현재는 음식점으로 사용하고 있는듯
두사충(杜師忠)은 명나라 이여송 휘하 장수로 조선에 왔다가 귀화하였다.
그는 별다른 귀화의 변(辯)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풍수이기 때문에 명나라의 국운(國運)을
예견하고 자기는 오랑캐 청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을 거부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명나라는 그가 귀화한지 5년 뒤에 망했다.
그는 조선군과 합동작전을 펼 때 당시 수군을 통괄하던 이순신장군과 교분이 있었다.
두사충은 임진왜란이 평정되자 고국으로 돌아 갔는데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그는
두 아들을 데리고 그의 매부인 진린 도독과 함께 조선에 나왔다가 이순신이 두사충을 만나자
시 한수를 지어서 주었는데 그 시는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모명재(慕明齋)의
주련시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북으로 가서는 고락을 같이했고 (北去同甘苦)
동으로 와서는 생사를 함께했네 (東來共死生)
성 남쪽 타향의 달빛 아래에서 (城南他夜月)
오늘은 한 잔 술로 정을 나누세 (今日一盃情)』
이 시에서 이순신은 두사충이 수 만리 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고 두 번씩이나 나와
도와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두사충은 두보의 22세손이며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원군인 명나라 장군이다.
그는 명군(明軍)이 왜군과 전투하기 전에 진을 칠 곳을 결정하는 수륙지획주사(水陸地劃主事)로
이순신과 친분이 두터워 이순신이 죽은 후 묘자리를 봐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진린에게 “도독은 황제의 명을 받은 사람이니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나는
이곳에 남겠다.”고 한 다음 압록강까지 배웅을 하고 귀화하여 대구에 정착하였다.
두사충이 귀화하자 조정에서는 그가 원하는 곳에 살게 해 주려고 했다.
그곳은 현재 대구경상감영공원 자리였다. 두사충에게 하사한 땅에 경상감영의 관아가 안동에서
옮겨오게 되자 두사충은 흔쾌히 인접지역 계산동으로 옮겼다.
이곳이 두씨의 세거지(世居地)가 되었다.
두사충은 주위에 많은 뽕나무를 심어 잠농을 시작하여 훗날 대구가 섬유도시로 발전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고도 한다.
두사충도 보통 인간이다. 고국 명나라를 생각하며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관복을 입고 고국의
천자(天子)를 향해 배례를 올렸는데 그 단의 이름을 따 대명동(大明洞)이라는 동명이 되었다.
그는 비록 몸은 조선에 있으나 나의 근본은 명나라 백성임을 잊지 않는다는 그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다.정성삼님 글중에서
이상화댁과 서상돈댁 그리고 이상정댁을 둘러보고 두사충 이야기를 보며 약령시장으로간다
Everybody hurts / R.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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