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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블레어주택과 계산예가

        대구 중구 달구벌대로 2029

블레어 주택은 선교사 블레어(Blair)와
라이스(Rice)가 살던 일제 강점기의 건물이다.
1989년 6월 15일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교육 역사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집은 외관상 같은 시기 미국의 방가로등에 가까운
양식주거 건물로서 지금까지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1층 교육. 역사관
2층 3.1운동 역사관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2층은 노후가 되어 개방하지 않고, 현재 수리할 준비중이라 하였다.

 

 

                     서당


서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속되어
초등 교육을 담당한 사립 학고로서 고구려의 정당이나
고려의 서재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서당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활발해져서
선비와 평민의 자제로서 사학이나 향교에 입학하지 못한
8.9세에서 부터 15.16세에 이르는 자들의 유학도장으로 중요시 되었다.


서당은 비록 사설이라고 하나 지방민의 교화와 유학의 학풍등에
끼친 영향을 인정하여 나라에서 감독, 장려, 개선을 꾀한 일도 있다.


교과목은 천자문. 동몽선습. 통감. 소학. 시경. 사기. 당송문. 당류등를
공부하였는데, 이는 사학이나 향교의 예비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베틀


삼베, 무명, 명주 등의 씨줄과 날줄을 이용해 옷감을 짜는 틀을 말한다.
실이 감겨진 도루마리를 베틀에 걸어놓고 한 손으로는 바디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북을 들어 발을 당겼다 폈다 하면서 배를 짜 나간다.


이와 같이 베틀을 이용하여 옷감을 짜는 일을 '길쌈'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인 복식생활이 시작되면서
기본적인 베틀 구조가 형성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베틀이 사용되었다.


베틀은 전통사회의 과학기술이 잘 응용된 집적물이며,
오늘의 방직기술 또한 베틀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새끼 꼬는 기계

짚으로 꼰 길 줄로 초식, 고식이라고도 한다.

두 가닥의 볏짚을 양 손바닥으로 비벼 꼬는데, 오른손을
바깥쪽으로 왼손을 안쪽으로 끌어당겨서 꼬는 것이 일반적이다.

굵기에 따라 가는새끼, 중간새끼, 굵은새끼, 동아, 밧줄 등
종류가 많으며, 짚신의 새끼날, 가마니포장, 지붕의 영새끼,
소고삐 등 쓰임새도 다양하였다.


농경시대 이후부터 널리 쓰였고, 손으로 직접
꼬아서 쓰다가 기계를 써서 대량생산을 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부터 비닐 끈이 보급되자
거의 그 쓰임새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풍금

 원래는 서양의 오르간이라는 악기의 한자식 번역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르간 중에서 리드 오르간을 일반적으로 풍금이라고 한다.

 

 

 

 

 

 

 

 

 

                이런 교육자료를 보니 어렸을때 생각이 저절로........

 

 

 

 

 

청라언덕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블레어 주택
1910년 무렵 미국인 선교사들이 블레어 선교사를 위하여 지은 집으로
동산 위의 여러 주택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잡은 붉은 벽돌의 2층 집이다.
남쪽은 경사지로 반지하실이 딸려 있다.

 

동산병원 뒤쪽 언덕은 대구지역 기독교의 역사와 희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곳이다. 그 흔적들 중 많이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 12명의 묘비가 새겨진 묘지 정원이다.

 

대구지역 복음 전파를 위해 희생된 선교사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은혜정원’. 선교사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이 정원에는 ‘그녀는 죽은 것이….’라는 묘비명이 적혀있는 제일교회 설립자 아담스 목사의 부인 넬리 딕 아담스

(Nellie Dick Adams`대구의 첫 순교자)의 묘비를 비롯해 12개의 묘석이 있다. 구한말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가족들이 이곳에 고이 잠들어 있다.

 

1893년 미국 베어드 목사가 대구지역에 뿌린 복음의 씨앗은 동산병원 언덕 위에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미국 약방’이란 이름으로 진료소를 내고 의료선교를 펼치던 존슨 선교사(의사)는 1899년 제일교회 구내에

 ‘제중원’(濟衆院)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인 진료활동을 시작했다. 이 약방과 제중원이 동산병원의 전신이다.

이 당시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아름답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 병원이나 학교`교회를 세웠고, 그를 통해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동산언덕에는 동산의료원과 선교사 사택, 신명학교, 제일교회 등이 건립되었다.

               블레어주택에서 제일교회쪽으로 원점회귀 90계단 쪽으로 내려와야 되는데 역으로 내려와 버렸다

 

 

 

 

             계산예가

도심관광의 핵심장소인 이상화․서상돈고택 등 다양한 도심의 근대역사문화 시설과 역사를 시청각 자료로

알려주기 위해 영상관(영상실, 전시관), 한옥 전시실 및 편의시설 등을 마련해 중구 도심골목투어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Even Now / Nana Mousko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