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아침 7시40분 출발 거문도에 10시30분도착 아직도 파도가 심해 많은 사람들이
울렁증과 공포감에 많이 시달렸다
우리가 타고온 줄리아 아쿠아호
거문도 여객터미날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고흥반도로부터 남쪽으로 40㎞ 지점에 있다. 삼도(三島)·삼산도(三山島)·거마도(巨磨島)라고도
불린다. 고도(古島)·동도(東島)·서도(西島)의 세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고도만을 거문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도의 면적은
0.42㎢이고, 해안선 길이는 3.70㎞이다. 서도의 면적은 7.77㎢이고, 동도의 면적은 3.43㎢이다.
서도는 세 섬 중 가장 큰 섬으로서 온 섬이 동백나무로 뒤덮여 있어 연중 푸른데, 이곳에 위치한
수월산(水越山, 128m)에는 다도해의 뱃길을 비춰주는 거문도 등대가 있다. 고도와 서도는 삼호교로 연결되어 있다.</P>
[Daum백과] 거문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885년(고종 22)에 영국은 청·러시아·일본과의 세력 균형을 이유로 동양 함대를 주둔시켜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여 해밀턴항(Port
㏊milton)으로 불렀다. 그 뒤 영국은 섬을 매수하겠다는 등 갖은 술책을 쓰다가 결국 1887년 2월 27일에 이곳에서 철수하였다. 이때
종래 부르던 삼도를 거문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한해협의 문호로서 과거 러시아의 태평양 출구 구실을 하여 ‘동양의
지브롤터(Gibralter)’라고도 불리었다.
[Daum백과] 거문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885년 4월 15일 영국은 군함 3척(대포 76문, 617명)과 수송선을 동원해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다. 이유는
러시아가 먼저 거문도를 장악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영국 정부는 4월 20일 청나라와 일본 정부에 거문도
점령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조선 조정엔 한 달도 더 뒤인 5월 20일에야 통보했다. 영국은 조선을 야만국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영국은 그후 8월 중순까지 군함 11척과 해병대 100여
명을 더 파견했다.
영국은 오래 전부터 거문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손바닥 보듯이 환하게 알고 있었다. 1845년 영국 해군
탐사선이 제주도∼거문도 해역을 한 달 동안 샅샅이 조사를 했던 것이다. 그들의 지도엔 이미 거문도가
포트 해밀튼(Port Hamilton)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해밀튼은 당시 영국 해군성 차관 이름.
러시아도 거문도의 중요성을 영국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1854년 4월 러시아 황제 특사 푸차친이 기함
팔라다 호를 타고 거문도에 상륙해 11일간 머물렀을 정도였다. 조선과 영국은 1883년 조영수호통상조약을
맺었고, 조선과 러시아는 1884년 조러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조선 땅은 부동항을 얻기 위하여 남하정책을
펴고 있던 러시아와 이를 막으려는 영국의 각축장이 된 것이다.
거문도에는 초등학교 30명 중학교 20명 고등학교부터는 뭍으로 나가서 다닌다고 합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이런 종교들이 들어서있다
1991년에 가설한 거문도와 서도를 잊는 삼호교
2015년에 건립한 거문교 서도와 동도를 연결
마을은 고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
유람선을 타고 서도 거문도등대 선착장에 도착
선착장에서 등대로가는 동백나무턴널 이런길이 오랫동안 이어진다
보로봉과 목넘이
수월봉과 보로봉을 잇는 목넘이는 글자 그대로 목처럼 좁은 곳으로 바닥이 해수면과
비슷할 정도로 낮다
오르면서 바라본 선바위
줌으로 땡겨본 목넘이쪽 해안 위에는 보로봉
거문도 영해기점 상진 조형물
등대에서 목넘이쪽 해안과 선바위도 담아보고
좌에 소삼부도 우에 대삼부도
몇층의 계단인지는 모르지만 아스라해 위에서 찍어봤다
각지방의 등대들을 소게해놨다
등대 점등기
아래에서 올려다본 상층부
관백정
좌측에 상백도 우측에 하백도. 거문도에서 백도까지 28km약 한시간 10분거리
등대 상층부 전망대
달팽이 모양의 조형물 아마 기적을 울리는 도구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수월봉아래 해안도 담아보고 유람선을 기다린다
거문도 등대에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는데 이렇게 푸집하게 나오네요 아래 회까지(4명당)
식사후 13시에 백도로 출발 처음계획은 녹산등대에서 수월봉까지 산행하고 백도를 돌아볼
계획이었는데 풍랑으로 하루밤 여수에서 묵었기에 서도를 다 돌아보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전라남도 거문도의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며 부르는 노동요의 하나.
<고사소리>·<술비소리>·<놋소리>·<월래소리>·<가래소리>·<썰소리>가 있다.
<고사소리>는 고기잡이 배가 떠나기 전에 풍어(豊漁)를 비는 의식요인데, 자진모리장단으로 길게 엮어 부른다.
<술비소리>는 배의 밧줄을 꼬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이 소리를 <술비소리>라고 함은 ‘에이야라
술비야’ 하고 받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 소리는 3분박(三分拍)의 보통 빠른 3박자로 세마치장단에 맞는다.
선소리꾼이 두 장단을 메기면 어부들이 ‘에이야라 술비야’ 하고 받는다. 선율의 구성음을 편의상
서양음악의 계이름으로 표시한다면 ‘솔·라·도·레·미’로 되어 있는데, ‘솔’로 마치는 5음음계로 평조인 경토리로
되어 있다. 웅장하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놋소리>는 어부들이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들고 나며 부르는 소리이다. 이 소리는 3분박 좀 빠른
4박자로 늦은 자진모리에 맞는다. 도사공(都沙工)이 한 장단을 메기면 어부들이 ‘어야듸야’ 하면서 한 장단을 받는다.
<놋소리>의 선율은 ‘미·솔·라·도·레’로 되어 있는데, ‘미’로 마치는 5음의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으나 경상도 민요보다 시김새(표현기법)가 단순하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월래소리>는 바다에 쳐놓은 그물을 여러 어부들이 힘을 합하여 한 가닥씩 끌어당겨 배에 올려 놓으면서
부르는 소리로, 이 소리를 <월래소리>라고 함은 이 소리의 뒷소리가 ‘월래보자’라고 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P>
‘월래보자’라고 함은 올려 보자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도사공이 한 장단을 메기면 어부들이
‘월래보자’ 하고 받는다. 선율의 구성음은 ‘미·솔·라·도·레’로 되어 있는데, ‘미’로 마치는 5음의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고 씩씩하게 들린다.
<가래소리>는 그물에 걸려 들어온 고기를 가래로 퍼담으며 부르는 소리이다. 이 소리는 3분박 좀 빠른
3박자로 세마치장단에 맞는다. 도사공이 두 장단을 메기면 어부들이 두 장단을 ‘어낭성 가래야’ 하고 받는다.
선율은 <놋소리>같이 5음의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다.
<썰소리>는 만선이 되어 들어오며 부르는 소리라고 하는데, 기능은 다른 고장의 <배치기소리>와 같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입상했으며, <거문도뱃노래>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Daum백과] 거문도뱃노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n Aranjuez Con Mi 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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