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우륵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嘉實王) 때 악사로 활약한 가야금의 명인이자 시조이다. 가야국 성열현(省熱縣)에 살다가
가실왕의 부름을 받아 대가야(경북 고령)로 옮겨 궁중 악사로서 가야의 음악과 춤 노래 등을 통합 발전시켰다.
가야국이 매우 혼란해지자 신라로 망명한 우륵을 진흥왕은 국원(國原:지금의 충주)에 안치시키고 신라의 관료
세 사람(계고, 법지, 만덕)을 파견시켜 음악과 춤·노래 등을 전수하게 하였다. 이후 우륵의 음악과 춤·노래 등은
신라의 궁중음악인 대악(大樂)으로 채택되어 우리 고유음악의 큰 기틀이 다져지게 되었다.
- 계고(階古) - 대나마(大奈麻, 신라 17관등의 10번째)가야금 전수
- 법지(法知) - 대나마(大奈麻, 신라 17관등의 10번째)노래 전수
- 만덕(萬德) - 대사(大舍, 신라 17관등의 12번째)춤 전수
가실왕은 누구인가
대가야(大加耶)말기의 왕으로서 가보왕(嘉寶王)이라고도 한다.
가실왕의 생존 연대는 우륵(于勒)과 신라 진흥왕(546~576)과 같은 시기로 추정된다. 가실왕은 우리 민족
특유의 악기로 민족의 얼을 담은 음악을 구상한 문화적 성군(聖君)으로,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악기를
가야금의 형태로 통일시키고 우륵으로 하여금 각 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담은 12곡을 짓게 하였다.
이는 조선조 세종대왕이 당시 언어와 문자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한글을 창제한 것과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업적이다.
12곡의 의미
우륵이 가실왕의 명에 의해 작곡한 12곡은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하기물(下奇物), 사자기(獅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상기물(上奇物)이다.
가실왕이 ‘여러 나라의 방언이 그 성음에 있어서 서로 다르거늘 어찌 획일화할 수 있겠는가’하는 가실왕의
음악관에 따라 당시 가야 각 지방의 향토색 짙은 음악으로 작곡 연주하였을 것이다. 또한,
당시 대가야(경북 고령-상가라도)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이 미치던 지방과 소국의 음악 등을 가야금
음악으로 하나 되게 함으로서 정신적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
우륵이 작곡한 12곡 중 9곡이 지방의 이름으로 밝혀졌으며 한편에서는 의식과 같은 굿거리의 일종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령과 우륵
고령지역은 남해안에서 낙동강을 이용해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어 동서남북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하여 교역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고 선진 문물의 흡수도
다른 가야국들에 비해 빨라 5세기 후반 경에는 가야의 여러 소국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성장하였다.
또한, 대가야의 주요 교역품은 합천 야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쇠와 안정된 농업 기반을 바탕으로 생산된
농산물 등으로 이를 바탕으로 대가야는 수준 높은 음악 예술을 향유하였을 것이다. 대가야의 가실왕은
이와 같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천재 예술가인 우륵을 통하여 가야국의 문화적 통일을 이루려고 하였다.
고령군청에서 서북쪽으로 인접되어 있는 지역인 쾌빈리(금곡)에는 우륵이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금을
가지고 12곡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우륵의 가야금 연주소리가 “정정”하는 웅장한
소리가 났다고 해서, 마을 이름도 현재 ‘정정골’이라 부르고 있다.
가야금을 창제한 악성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 수집, 보존, 전시하여 국민들이 우륵과 가야금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건립한 전국
유일의 우륵과 가야금 테마 박물관이다. 맑고 깨끗한 가야금의 고장 고령에서 우리 민족 고유 약기인
가야금과 가야금 창시자인 우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며, 입혀져 가는 정통음악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Daum백과] 우륵박물관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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