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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보경사와 청하계곡

  

옆지기는 매일 출근을하다 긴연휴에 집에 있기가 지루했나 봅니다 처제도가고 비가내리니 하루쉬고

어디로 나가자고 합니다 강원도는 너무 멀고 가깝다고 생각되는 포항과 경주를 제안하니 오케이

7일날 아침을 일찍 먹고 출발합니다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4년(602) 지명법사가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창건한 사찰이다.

지명법사가 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진나라 도인에게 팔만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략을 막을 수 있고,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하자,

 왕은 지명법사와 함께 동해안 명산을 찾아 나선다. 일행이 명당을 찾을 때 지명법사가

하늘을 보니 5색 구름이 내연산을 뒤덮고 있는 것을 보고, 내연산 아래 있는 연못을

메워 팔만보경을 묻고 절을 창건하여 보경사라 했다고 전해진다.

보경사는 보물 제252호로 지정된 보경사원진국사비를 비롯하여 보경사원진국사부도(보물 제430호),

 보경사오층석탑(유형문화재 제203호)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보경사가 위치한 내연산은

 빼어난 절경으로 유명하여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 중 하나이다.

 

경내에 들어서니 역시나 연휴이고 주말이라 많은 관광객이 몰려있습니다

여기는 보경사 종무소입니다

소재지: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622
보경사 경내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 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명 ‘금당탑’이라고도 부르는데,『보경사금당탑기』에는

, 도인, 각인, 문원이 고려 현종 14년(1023) 3월에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 보경사 적광전
경사 적광전(寂光殿)은 경내에선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보경사 금당탑비>에 1677년에 금당과 법당을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금당은 적광전, 법당은 대웅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라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지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뒤로도 몇 차례 수리되었습니다.

건물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입니다. 기단은 아주 낮게 조성되었는데, 기단 상면에는 벽돌을 깔고

네모난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주춧돌이 모두 옥돌입니다. 다른 전각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 건물은 특이하게도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면서도 천장은 뼈대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습니다.

 

이 수미단은 1569년에 조성되었다는 조성기를 가지고 있는, 조선시대 수미단 연구에 

있어서기준이 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수미단의 형태는 가리개형 수미단으로

 寶殿形수미단과 대좌형 수미단과 더불어 일반형 수미단으로 이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과도기적 형태로 볼 수 있어, 불단 연구의 변화과정을 살피는 데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특히 수미단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畵工 溟暿와 木手 克淳 등 제작자를

 분명히 알 수 있어 귀중하고, 당시 수미단 제작에 화공과 목수의 분업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어 큰 의의가 있다

비로자나삼존불
적광전 내에는 등신대(본존불 1.38m, 보살입상 1.83m)의 소조 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삼존불은 가운데에 좌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로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 있습니다.

이 삼존불이 언제 조성된 것이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아래 기록에 언급된 삼존불상과 같은

불상이라면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비로자나삼존불 뒤에 걸린 비로자나 후불탱
비로자나삼존불 뒤에는 비로자나후불탱이 걸려 있습니다. 이 후불탱에는 가운데에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하여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그려져 있습니다후불탱에는 이 밖에도 금강장보살, 제장애보살,

범천, 제석천, 사천왕, 가섭, 아난, 동자, 나찰, 야차 등도 그려져 있습니다.

영조 18년(1742년)에 그려졌고, 화주는 뇌선이며, 화원은 의관, 뇌현, 찰기, 석봉입니다.

 

전면 중심 칸에는 사자를 조각한 신방목(기둥 밑에 가로 방향으로 끼어댄 나무)이 있다.

보통 둥글게 만들어 태극문양 등을 새기는 데 비해 이 조각은 정교한 사자상으로 조각돼있다.

국내에는 보기 힘든 사례로 업계에서 그 가치가 높게 평가 된다.

  아래층에는 종이 윗층에는 북이 있습니다

경북 포항시 송라면 보경사 경내에 소재한 소나무로소나무의 족보를 알려주는 안내 표지가 없어서

정확한 기록은모르겠는데 나무아래 기와장에 반송. 수령 약 300년 추정이라 페인트로 써서

세워 놓았는데 제대로 된 안내판이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 건물은 603년(진평왕 25)에 지명법사(智明法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보경사의 대웅전이다.

보경사의 현 건물들은 1677년(숙종 3)에 중건한 것이며 그 후로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평면은 전칸을 통칸으로 처리하여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기단은 화강석의 장대석을 3단 쌓고 갑석을 둘렀으며 기단의 상면에는 벽돌을 깔았는데 이는 1978년에 개수한

것으로 말끔한 모습이다.

기단위에는 자연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는데, 기둥위에는 모두 평방 뺄목을 돌출시켰다.

공포는 외3출목 내2출목으로 쌓아 올렸으며, 내외의 살미형태는 다르다.

외포의 살미는 앙서가 4개인데 단부가 직절되었고 끝에는 연봉을 올렸으며, 쇠서는 끝이 말려 올라간 형태이다.

내포는 살미없이 제공의 뒷몸을 당초로 초각하여 장식하였다.
 1고주 5량가이며 대량 위에 충량을 걸었고, 천정은 우물반자이다. 불단은 고주에 의지하여 설치하여 삼존불상을

모셨으며 상부에는 낙양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보개를 설치하였다.
 1932년에 중수하여 후기적인 요소들만이 주로 남아 있다.

좌는 미륵보살 중앙은 본존불 우는 제화 갈라보살

 

 

보경사 대웅전 백의관음 벽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백의를 걸친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어린아이의 순조로운

출산과 그 어린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보살피는데 유독 주의를 기울이는 보살이다.

백의관음은 백의를 입었다는 그 모습에서 이름을 따온 듯한데 그 상징적 의미는

언제나 청정을 의미하는 흰 연꽃 위에 앉았으므로 백처존(白處尊)이라 했다는

그의 별명에서 찾을 수 있다. 백의관음은 인도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중국풍의 수월관음

이전부터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당나라 시대 말기부터 수월관음도에

백의가 응용되기 시작하여 수월관음상에 백의관음상이 융합된 것으로 추정 된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데는 수묵화의 발달과 선종의 융성으로 수묵 관음도가 나타나면서

표현상 관세음보살이 자연스럽게 백의를 걸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보경사 대웅전 포대화상 벽화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契此)이다.

호를 장정자라 했고 악림사에서 출가 했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는 모습이었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다. 그 자루 속에다 장난감, 과자, 엿 등을 가득히 넣고는

 마을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포대화상은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 사람들과 같이 차별 없이 어울리면서 진리의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고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 없는 대자유인이었으며,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사방을 걸림 없이 다니며, 천지를 내 집 삼아 살던 포대화상은 때때로

길흉을 예언하였는데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어도 스님이 나막신을 꺼내 신고 나타나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그리고 장마철이라 비가 계속 내리다가 스님이 짚신을 신고 다니면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날씨의 변화를 알아채곤 했다. 그는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지만 사람과 어울려

길흉화복에 대해 곧잘 얘기를 했는데 아주 신통했다.

 

요사체인듯

 

 

팔상전과 산령각

원진전과 영산전

 

원진국사(圓眞國師, 1171~1221)는 속성이 신(申)씨이며, 자는 영회(永廻), 법명은 승형(承逈)입니다.

 13살 때 희양산 봉암사 동순(洞純) 스님을 은사로 하여 승려가 되었고, 금산사 계단(戒壇)에서 비구계(比丘戒)를

받았으며, 1197년 선과(禪科)에 상상품(上上品)으로 합격했습니다. 그 후 지눌 스님으로부터 불법을 배웠고,

고려 고종 2년(1215년)에 대선사(大禪師)로 임명되어 보경사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능엄경>에 능했으며, 

1221년 8월에 팔공산 염불사(현재 동화사 염불암)에서 세상을 떠난 뒤 국사(國師)로 추증되었습니다.

 


원진국사비는 원진국사가 세상을 떠나고 3년이 지난 고려 고종 11년(1224년)에 세워졌습니다. 

 

비는 귀부 위로 비신(碑身)을 세운 간결한 모습인데, 비신은 청석을 깎아 만들었습니다. 크기는 높이 1.83m,

너비 1.04m, 두께 17cm입니다. 비머리가 없이 비신의 위쪽 양 끝을 귀접이한 것과 둘레에 섬세한 당초무늬가

띠처럼 돌려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양식의 하나입니다.
시계방향으로1.귀부와 받침돌은 한 개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귀부는 목을 앞으로 뽑아 크게 벌린 입에

여의주를 물고 눈을 크게 치떠 한껏 위세를 부렸습니다.2.비좌(碑座)에는 가늘고 긴 연꽃잎을 사방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이고 단조로워 그런대로 체면치레하는 수준에 머뭅니다.

6각형의 귀갑문에는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겼습니다. 이것은 국사였던 비의 주인에 대한 예우로 보입니다

3.귀부 머리와 발귀부는 왠지 듬직함이나 힘이 모자라 보입니다.
이런 느낌은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귀부의 발이 유난히 왜소하여 더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성기의 귀부에서는 땅을 딛고 있는 발의 모습만 보아도 그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에선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지 여의주를 입에 문 채 앞을 바라보는 귀부의

머리에서 마지막 남은 힘의 한 조각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4.비신의 제액비신 상단에는 '원진국사비명'(圓眞國師碑銘)이라고 가로로 쓴 해서체의 제액을 음각하였습니다.

비문은 "고려국 보경사주지 대선사(高麗國寶鏡寺住持大禪師)

증시원진국사 비명 병서(贈諡圓眞國師碑銘幷序)"로 시작됩니다. 글씨는 구양순체(歐陽詢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활달함을 보입니다. 비문은 당대의 문신 이공로(李公老)가 왕명을 받들어 짓고,

김효인(金孝印)이 교칙(敎勅)에 의해 썼습니다.하늘사랑님 글에서

 

 

보경사 경내에선 장독 600개가 있다. 근처에 다가서면 된장, 간장 특유의 고릿한 냄새가 풍긴다.

 

흙돌담에 인접하여 있는 나무는 높이가 약 6m, 가슴높이의 둘레 60㎝, 밑둥치의 둘레 97㎝이며, 지상 160㎝에서

가지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각각 다시 둘로 나뉘어서 수관(樹冠)은 대체로 구형(球形)을

이루며 수세(樹勢)는 왕성하다.다른 하나는 높이 6m, 밑둥치의 둘레 103㎝이며 지상 40㎝에서 가지가 동서로

갈라져서 가슴높이의 둘레는 각각 50㎝, 55㎝이다. 수세는 흙돌담에 인접해 있는 것에 비하여 떨어지는 편이나

비교적 양호하다.

 이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

[Daum백과] 보경사의탱자나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천왕문 양옆에도 이런 사자 모형이 있습니다

 

기단부의 아래ㆍ중간ㆍ윗받침돌 가운데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아래받침돌은 맨 윗단에만

연꽃조각이 둘러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겨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탑신은 몸돌이 매우 높아 마치 돌기둥처럼 보이며, 두 쪽 면에 자물쇠모양을 새겨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모서리에서 뻗어나가는 곡선의 끝마다 꽃장식이

 조그맣게 솟아있다.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여 그다지 조각적인 멋은 없는것 같다, 부도는 들려보지 않아서 빌려온 사진입니다

 

전에 몇번 들렸던 사찰이라서 대충 보고 청하계곡으로 트래킹합니다

내연폭포까지는 2.7km 한시간정도 걸립니다

나야 괜찮은데 옆지기가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도됩니다

비가 많이 와서인지 게곡은 물이 많아 지그재그 돌틈을 휘감는 물줄기와 소리가

눈과귀를 즐겁게 합니다

숲길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니 시원한 계곡 소리가 들립니다.

 역시나 시원한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내연산은 올라가면서 여러개의 폭포를 만날 수 있는데 이름대로 12개의 폭포가 있다고 하지만,

대략 가장 잘 보이고 유명한 폭포는 상생폭포, 관음폭포, 연산폭포 세개의 폭포입니다

폭포 물줄기가 양갈래로 나뉘어져 흘러 내리는걸 보고 처음엔 '쌍둥이 폭포'라는 의미로

"쌍폭'이라 불리던 것이이후엔 상생의 의미로 바뀌어 상생폭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간혹 진짜 심한 가뭄 때에는 한쪽 줄기에는 물이 말라서 한쪽만 흘러 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날은 수량이 많아서 물이양쪽 다 흘러내리고 아주멋진 모습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요 인증도 함 해야지요

보기만해도 시원합니다 몇번을 왔어도 이렇게 웅장한 모습은 처음입니다

 

오르다보면 멋진 바위들의 협곡을 만나게되는데 설악이 부럽지 않습니다

쑥부쟁이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습니다 개쑥부쟁 같기도 합니다

여기는 보현폭포인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패스합니다

깍아지른절벽 설악의 천불동을 생각케합니다

또하나의폭포 그냥 지나칩니다 내려올때 조금 밑으로 내려가 보렵니다

관음폭이 있는 바위동굴과 기기묘묘한 바위절벽입니다

주위에는 많은 인파가 모여들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초상권침해는 어쩔 수가없습니다

비록 낙차는 낮지만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나이아라가를 연상케합니다

 

폭포 주변으로 동굴 같은 것들이 있어 묘한 풍경을 연출해 주고 있고, 윗쪽으로는 구름다리가 놓여져 있어

 사진 찍기에도 참 좋은 곳이지요.

저 구름다리를 지나면 바로 연산폭포가 나오게 됩니다.

어찌보면 상생폭포와 많이 비슷한 관음폭포입니다 햇볕이 비추어 준다면 물보라에 무지개가

아주 멋진 모습을 연출할 것 같은데 지나친 바램일까요

올라오면서 흘러내리던 땀과 더위를 관음폭포 주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마지막 구름다리를 건너 연산폭포를 향해 걸어가 봅니다

드디어 2.7km연산폭포에 도달했습니다 12폭중에 가장 낙차가 높고 학소대와함께 멋진 풍경을 보여줍니다

 

제가 몇번 다니던중 가장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내연폭포 집에 있었으면 볼 수 없는 경치

정말 잘 왔다고 옆지기 덕분이라고 힘들게 올라온 옆지기에게 한마디 덕담도 했습니다

미련이 남아서 찍고 또 찍고 후발로 오신분들 사진 찍게 자리 양보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좌측협곡 계단을 오르면 은폭으로 갈 수 있는데 옆지기가 힌들어하니 그냥 내려갑니다

 

낙화암이 이랬을까 위에는 멋진 정자가 자리하고 손짓을 합니다

멋진 폭포들을보니 자꾸 뒤돌아봐집니다 언제 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오를때 대충 보았던 폭포를 급경사를 타고 아래까지 내려가 다시 담아봅니다

 시어머니의 며느리 구박에 얽힌 밤풀때기의 전설에 얼힌 슬픈 사연을 안고 있는 며느리 밥풀꽃입니다

내려오며 또 줌으로 절벽위의 정자를 담아봅니다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하면서

사찰앞 어울림 한마당에는 음악회와 공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발랄한 춤사위를 보다 배도 고파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가을을 알리는 모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머잖아 단풍도 들겠지요 거의 3시간을 달려와 2시간 보경사와

청하계곡을 트래킹하고 이제 호미곶으로 가려고 합니다

     

 Et Si Tu N'existait Pas(그대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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