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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경주 불국사

10월7일 숙소에서 나와 아침을 간단히 먹고 불국사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오르는 아주 넓은 잔디공원과 벗나무 봄에 벗꽃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불국사(佛國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신라시대경덕왕에서 혜공왕 시대에 걸쳐 대규모로 중창되었다.

신라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수축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불타버렸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 528년에 왕모 영제 부인의 발원으로 지어졌고,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해

 봉안하였다고 적고 있다. 문무왕 10년 670년에는 무설전을 새로 지어 이곳에서 화엄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모습, 오늘날 불국사의 상징물로 알려진 석탑(석가탑·다보탑)이나

 석교 등의 축조를 포함한 대규모 중창불사가 이루어진 것은 신라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서였다.

 삼국유사 권제5 효선9 대성효이세부모에는 김대성을 신라 신문왕 때, 혹은 경덕왕 때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덕왕 때의 사람이며 불국사의 창건도 경덕왕 10년의 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십이연기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김대성 자신의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굴암 석불사를,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으며, 공사를 마치기 전에 죽자 국가에서 나서서

 완성시켰다고 한다.

 

 

불국사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이런 아름다운 연못이 나오고 섬에 소나무가 정겹게 다가옵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관광객이 많지 않습니다

 

범영루도 담아보고

경주 불국사 청운교 및 백운교(慶州 佛國寺 靑雲橋 및 白雲橋. 국보 제23호)는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紫霞門)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자하문(紫霞門)과 연결된 전체 34계단으로 되어 있는 위로는 16단의 청운교가 있고 아래로는 18단의

백운교가 있다. 청운교(靑雲橋)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白雲橋)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직선으로 딱딱해졌던 시선을

부드럽고 생동감있게 풀어주고 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본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래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여지는

 반원아치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백운교의 옆모습

 

 

                                                                                             얼마전에 해체 복원된 석가탑

 

                       석가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 대 다라니경

 

 

 

 

다보탑과 자하문 석가탑

 

 

 

 

 

관음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가파르다

 

 

 

 

불국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77m의 이 불상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에는 머리칼을 작은 소라 모양으로 표현하였으며, 얼굴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풍기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은 매우 얇게 표현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 옷주름의 표현은 매우 사실적이다.

 손모양은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고 있어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과는 반대로 표현되었다.

이 불상은 양감과 적절한 신체비례 등에서 이상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불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높이 1.66m의 불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원만하고 자비스러운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눈썹은 반원형이고 콧날은 오똑하다.

 신체 표현은 장중하여 건장한 남성의 체구를 연상시키며, 두 무릎은 넓게 퍼져서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에는 거침없는 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옷깃 안쪽에서

 밖으로 늘어지는 옷 접힘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어깨 높이로 들어 약간 오므린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고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에 올려 놓고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약간 구부리고 있다.

떡 벌어진 어깨, 양감있는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등에서 사실적이면서 세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치미는 솔개꼬리라는 뜻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치미라고 부르고, 중국에선 치문(鴟吻)이라 부르는데 뜻은 같다.

 동양 건축에서 건물의 장식을 위해 사용되는 기와의 한 종류에 속한다. 주로 건축물의 맨꼭대기인 용마루 양 끝에

 설치한다. 꼭 궁궐에 한정되어 사용되진 않았지만 지붕 위에 무언가를 더 올린다는게 대단히 사치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불교 사찰같은 종교 건축물들이나 왕궁 정도는 돼야 발견할 수 있다.

고대 중국과 일본 건축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양식이기도 하다.

불국사 지붕에 위치미와 아래 둥근 모양의 장식이 있는데 알길이 없습니다

아시는분 알려주세요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기단은 연꽃잎을 새긴 반원모양의 돌을 위 ·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鼓)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 강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탑신(塔身)은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 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둥에 의해 나뉘어진 4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후,

그 안에 여래상(如來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돋을새김하여 모셔놓았다. 지붕돌은 추녀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의 우에노(上野)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재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경주 불국사 가구식 석축은 불전과 불탑 등을 배치하기 위해서 조성한 구조물이다.

 경사진 지형 여건에 따라 대웅전과 극락전 회랑 외곽에 자연석과 가구식 석축을 상․하 2단으로

 조화롭게 축조했다. 장대석재로 구획한 공간에 여러 형상의 석재를 채워 쌓은 가구식 기법과

 석난간의 구성 등은 종합예술로 국․내외 유일무이한 구조로 찬사 받고 있다. 특히 가구식 석축과

 연결되어 있는 청운․백운교 및 연화․칠보교는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됐으며,

 금번에 신청된 가구식 석축 또한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조건축으로 건축적 조형미는 물론

그 기법이 매우 독특해 신라 석조건축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보 제29호.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완성은
혜공왕 때인 771년에 이루어졌다. 이 종은 봉덕사(奉德寺)에 달았으나 수해로 폐사된 뒤 영묘사(靈廟寺)에

옮겼다가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하였다. 1915년 8월에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겼고

국립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됨에 따라 이 동종도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일명 봉덕사종·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최대의 거종(巨鐘)으로서 제작 연대가 확실하고 각 부의 양식이 풍요 화려한
동종의 하나이다.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범종을 대표한다.

[Daum백과] 성덕대왕신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아래 여기에 있는 종은 모조품이며 지금은 치지를 않는다고 함

 

 

 

 

 

 

입장할때의 반대로 연못을 한바퀴 돌아서 정문을 빠저나와 포석정으로 이동을 합니다

                                              

                                                         사랑 - 강영숙(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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