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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

화순 모후산




유마사 주차장-산막골-용문재-모후산-중봉 -집게봉-유마사 주차장



모후산(母後山) 919m

 

모후산(母後山)은 전라남도 화순군과 순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919m의 산으로 나복산ㆍ

모호산 이라고도 불리는 섬진7지맥의 한 봉우리로 주암댐의 담수와 더불어 삼면이

 푸른 물줄기로 둘려 있다.정상에 오르면 멀리 무등산ㆍ조계산ㆍ백아산과 동복호와

주암댐 및 득량만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본래 나복산(蘿蔔山)이라고 부르다가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에 홍건적의 고려침공이

있었을 때 공민왕 부부가 태후와 함께 피난해 산 것을 계기로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이라는

뜻에서 모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 선조25년인 1592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동복현감인 김성원이 노모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죽었다

하여 모호산(母護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모후산 남쪽 계곡에는 당나라의 유마운이 창건했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유마사가 있다. 산세가 험하고, 지리적으로 요충지이기 때문에 6·25전쟁 당시 빨치산

 전라남도 도당이 유마사에 은거하면서 모후산과 백아산을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지금도 당시에 파놓은 참호가 발견된다.(10/12)



산행하기전 준비운동부터 하고

우리가 오늘 올라야할 모후산을 한번 살펴보고

단체 사진도 남기고

유마사쪽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매서운 한파는 조금씩 누그러저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다

안내도를 보니 여러가지 보이는데 목적은 산행이니까 일단 산행을 한뒤에

 시간되면 다시 둘러보기로 한다


   < 모후산 유마사 維摩寺>

627(백제 무왕 28)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

보안은 이서면(二西面) 보산(寶山) 뒤에 보안사(普安寺)라는 절도 지었다고 한다

 

고려 때에는 귀정암(歸靜庵)과 금릉암(金陵庵) 8개의 암자를 거느려 당시 호남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

17세기에 경헌(敬軒)이 중건하였고, 가안(可安)이 나한상을 모셨다.

 

1889(고종 26) 전라도 관찰사 김규홍(金奎弘)이 중수하였고, 그 뒤로도 오호연·김해연 등이 중수한 바 있다.

19506·25때 소실된것을 주지 박상규스님이 복원하다


남천도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이렇게 꽃무릇 군락지가 보인다 오르면서 보니 여기저기 많이도 퍼져있다

9월에 오면 이런 꽃무릇을 원없이 볼 수가 있을 것 같다

조금오르니 무지개 다리도 보이고

겨울이되니 나무들도 다 나목으로 변하여 스산한 느낌이다

어느님이 소원탑을 정성스럽게 높이도 쌓아 놓았네 소원이 꼭 이루어지길

이제 데크계단과 아래의 돌계단을 올라야 되는데 벌써 숨이 차기 시작한다

그러나 코스가 짧아 쉬엄쉬엄가도 약속시간 오후4시까지는 충분히 내려올 것 같다


용문재에 다다르니 강우레이다 관측소에 생활용품을 나르는 모노레일이 보인다

저길 따라가면 정상으로 향한다


여기는 용문재 모두들 점심식사를하고 출발 준비를 한다

내리 저수지

나는 몇주 산행을 안해서 쉬엄쉬엄 가기위해 먼저 출발을 한다

중간에 우뚝솟은 산이 제암산인가 보다

중앙 뒤로 보이는 산이 월출산이다

우측에 무등산 앞에 보이는 풍경은 장흥쪽 산군들이다

풍력발전기가 있는산이 별산 그뒤로 좌측이 안양산 우측이 무등산 그우측 뒤로는

단풍으로 유명한 추월산과 강천산이겠다

저기 보이는 바다는 순천만 일 것 같은 예감 맞는지 모르겠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우레이다 관측소

식사하고 출발을 먼저해 쉬엄쉬엄 올라왔기에 여유를 가지고 셀카도 날리고


정상이 가까워오니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뒤따라오는 일행들도 담으며 사브작사브작 혼자서 오른다

북사면에는 지난번에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강우레이다 기지가 있는 곳

드디어 정상에 도착 표지석도 담아보고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


카메라를 거치 할 수 있는 바위도 있으니 이렇게 혼자서도 셀카를 날릴 수가 있어서 좋다

좌측에는 흐미하게 보성 동악산도 보인다

모후산은 주변의 산들에 비해 유난히 높게 솟은 출중한 산세가 일품이다. 정상에 서면 동복호,

주암댐의푸른 물이 삼면을 감싸고 있는 독특한 풍광을 만나, 멀리 무등산, 조계산, 백아산 등

 호남의 산줄기가 조망된다. 눈을 들어 조금 더 멀리 보면 하늘과 맞닿아 어른거리는

 득량만의 바다까지 볼 수 있다.


저 앞에 주암호이며  뒤로 보이는게 조계산이렸다

저멀리 보이는 바다는 또 어디일까 아리송하기만하다

중앙이 중봉 우측이 우리가 가야할 집게봉

좌측의 한일자로 뻗은산이 광양 백운산이고 억불봉이다

무등산도 줌인으로 담아보고 며칠전  눈으로 많이 쌓였을 것 같은데 벌써 다녹았을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맑은 하늘에 솔개 한마리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

저기 보이는 바다가 득량만 같은데 처음 와보는 곳이라 짐작으로만 .....산들은 보성과 장흥의 산군들 같고

지리산 천왕봉도 최대한 줌인으로 담아본다

좌측산이 지리산 만복대  중앙이 반야봉 우측이 천왕봉이다

모후산 정상에서 바라본 유마사 주차장과 유마사



모후산 정상에서 내려와 중봉으로

집게봉에 도착하니 표지석은 없고 나무에 집게봉이라고 (788.9m)

집게봉에서 바라본 모후산 정상

길은 이렇게 낙엽이 쌓여 눈보다 더 미끄러워 내려오는데 경사도 심하고 많이 힘들었다

낮기온이 영상인데 아직도 계곡에는 고드름이 그대로

맑은물에 대충 씻고 옷갈아 입으니 얼마나 시원하고 개운한지 여름 같으면 풍덩 하고 싶은 곳

내려오며 아직 남아있는 억새도 담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627년(무왕 28)에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부속암자인 귀정암(歸靜庵)·금릉암(金陵庵)·운성암(雲城庵)·

사자암(獅子庵)·오미암(五味庵)·은적암(隱寂庵)·남굴암(南窟庵)·동암(東庵) 등과 함께 수많은 승려들의

수행도량으로 이용되었다.


17세기 무렵 경헌(敬軒)이 중건하였고, 그로부터 약 50년 뒤에 가안(可安)이 나한상을 조성하였다. 1889년

(고종 26)에는 전라도관찰사 김규홍(金奎弘, 1845∼?)이 중수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이 절과 부속암자들은

 모두 소실되었고, 그 뒤에도 오호연·김해은 등의 승려들이 중수하였다. 최근에 주지 박상규가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음전


해련탑

탑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유마사로 오르는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이 탑은 탑에 새겨진 기록을 통해 해련스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형적인 8각 사리탑으로, 3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은

 옆면에 안상(眼象)이 얕게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활짝 핀 꽃조각이 있다. 가운데받침돌에도 큼직한 안상을

 새겨 두었으며, 탑신을 직접 받치는 윗받침돌에는 커다란 연꽃잎조각을 둘러놓았다. 탑신의 몸돌에는

 앞뒷면에 문짝 모양을 새겨 두었는데, 앞면에 새긴 문에는 문고리까지 장식되어 있고 그 윗부분에

'해련지탑(海蓮之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넓직한 3단의 받침이 있으며, 8각의

 모서리는 두툼하게 표현되어 있다.


도굴범들에 의해 훼손되어 구조물이 흩어져 있던 것을, 1981년 화순군에서 복원하였다고 한다.

기단부의 모습이나, 탑신에 새긴 여러 조각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보안교

전설에 의하면 유마사를 창건한 유마운(維摩雲)이 다리를 놓기 위해 모후산 중턱에서 많은 인부를 동원하여

 석재를 운반하려고 온갖 힘을 기우려도 일이 진척되지 않자, 유마운의 딸 보안(普安)이 치마 폭에 돌을

싸안고 옮겨서 다리를 놓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유마사는 19세기 후반에 계곡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전하여 건립되는데, 이때 두 절을 건너다니기 용이하도록 다리를 놓은 것으로 보인다.


유마사 보안교가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919년 「동복군 유마사 봉향각 창건 상량문

(同福郡維摩寺奉香閣創建上樑文)」에서이다. 현재 사찰 입구 유마교 근처에는 1860년~1863년 동복 현감을

 지낸 정원필(鄭元弼)의 영세 불망비(永世不忘碑)와 1889년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김규홍(金奎弘)의

공덕비(功德碑)가 있는데, 이들의 도움으로 19세기 후반에 보안교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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