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터키 소금호수 으흘라라 계곡을 거처 카파도키아로 이동

앙카라 외곽에 있는 아야쉬에서 묵고 오늘도 4시 반 기상 6시40분에 호텔을 나선다

오늘은 소금호수와 으흘라라 계곡을 거처 지하도시인 데린구유를 보고 카파도키아로 이동 을한다

어제는 몇시간을 달려도 산만 보이던데 오늘은 시작부터 대평원이 펼처진다

비록 척박한 땅이지만 이런것이 부럽기만하다 터키는 모든국민이 자급 자족할 만끔의

 밀이 생산된다고 한다

어떤 곳은 지평선만 보이는데 프랑스와 독일 모로코 이태리에서도 보던 풍경들이다

드디어 투즈괼 소금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호수라기보다 바다라고 해야할 듯 볼리비아의

티티카카 호수를 보는듯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는 듯하다


여기서 터키인들의 소비량의 소금을 64% 정도 생산한다고함

군데군데 이러한 소금 덩어리들이 널려있다

이호수 이름을 터키어루 트즈괼 호수라고 한다

이곳은 오래전에 바다였는데 지각 변동으로 호수가 되었다고 하며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서 호숫물이 마르면서

소금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넓은호수는 수평선을 이루고 있으며 우기에는 수심이 얕아 육안으로 소금 결정체들을

볼 수 있지만 건기인 여름철에는 증발이 빨라서 온통 소금밭이라고 한다. 소금호수 주변에는 수많은 소금제조 공장이

 있지만 정작 관광객에게는 매점이 있는 곳을 통과하여 이런 넓은 호수만 볼 수가 있다

터키에는 옛날부터 먼길을 이동하며 물건을 팔러 다니는 대상이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에게 소금을 섞어 만든

항아리가 훌륭한 수통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트즈괼 호수의 소금과 진흙의 비율을 맞추어 만든 항아리는

아무리 더워도 얼음물 처럼 차고 변질이 안된다고 해서 최고의 물건으로 첬다고 한다



여름에는 이렇게 소금의 결정체들이 보인다는데 우리가 갔을때는 일반호수와 별차이가 없이 보였다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보니 이렇게 약간의 하얀 소금이 보였다

또 다시 대평원이 펼처지고 있다



이산은 이지방에서 가장높은 핫산 산이다 높이3268m 로 오늘하루는 270도 이산을 끼고 돌 것 같다


으흘라라 계곡으로 이어지는 바위산

직벽의 바위군락에는 많은 동굴들이 산재해 있었고, 교회도 수십군데 발견된 협곡이다

으흘라라 계곡은 영화스타워즈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약20km에 달하는 웅장한 계곡 양옆으로 60여 개의 교회와 수도원이 들어서 있는데 이는 비잔틴 시대에 은둔생활을

하던 수도사들이 만든 것들이다.

깍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맑은 강이 흐르고 있으며 나무가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 으흘라라

계곡 트레킹은 깨끗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이렇게 역사가 있는 곳인데 우리 가이드는 위에서 사진 몇장 찍는걸로 대신했으니

아주 나쁜 가이드다 쇼핑센타에 대리고 갈때는 참 열심이더니만 앞으로 노랑풍선은

가지 않을 작정이다

줌인해본 핫산 산


데린구유는 18.000명 정도 상주하는 소도시로 50년전 닭을 쫓던 소년이 없어진 닭을 찾다가

지하도시를 발견 이 소년은 도시 입장료에 대한 지분으로 많은 돈을 모았다고 한다

지금은 노인이되어 부자가 되고 편안한 생활을 한다고 한다

데린구유는 깊은 우물을 뜻한다고 함 이곳은 공기배출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곳은 그 많은 박해를 피해 살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생생한 삶의 흔적이지만 지금은 훼손이 많이 되었으며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아나톨리아의 기독교인들이 1~ 3세기동안 로마인들의 침입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이곳 땅속 지하도시를 만들어 피난하였다고 한다.

 

제일 아래층은 우물인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이곳이 '데린구유 (깊은 우물)' 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데린구유 마을은 1962년까지 이 우물들을 실질적인 수원으로 이용해왔으며 아직 그 의존도는 상당히 크다고 한다.

지하 120m 까지 내려가는 거대한 지하도시이란다. 현재는 8층까지만 일반인에게

공개 되고 있으며 지하 1, 2층은 방 , 부엌, 교회, 곡물저장소, 동물 사육장,

성찬, 세례를 베풀던 장소, 신학교, 그리고 지하 공동묘지등 도시 기능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으며 초대 교회당시 기독교인들의 예배장소인

십자가형태의 교회 흔적도 발견 되고 있다.


그렇게 지하에는 20여개나되는 방이 있으며 동굴의 통로는 한 사람만이

 빠져 나갈수 있는 구멍으로 되어 있으며, 그것도 선채가 아닌 완전히 엎드려서

 가야한다. 그리고 이 대린구유 주변에는 3 ~ 40개가 넘는 지하도시가

10km 넘는 도시로 형성되어 있고 수용 인구만하여도 3만명 이 넘는

수준이 라고 한다. 우리는 지하 4층 까지만 내려 가 보았는데 지하 4층까지는

그래도 쌍방이 비켜 다닐수가 있을 정도로 터널이 넓었으나 4층 이하는

터널 구멍이 좁아 겨우 한 사람만이 통과할 수밖에 없는 통로라

한번 들어가면 내려오는 사람이 없어야올라 올수가 있다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로마군이 교인을 잡으러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곳곳에

소위 말하는 덧 구멍을 파 놓아 잡으러 들어오는 로마군의 작전지연을 위한

 장치도 있었다.


 이곳은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 되었다.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이렇게 사람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통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안에서 보초를 섰다고함


가축을기르며 냄새를 줄이기위해서 환기통을 만들어 놨다


굴속의 지하 교회는 거미줄 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세례 받는 곳과 그 안에서 죄를 지면 벌을 받는 곳 학교 등 여러 곳을 들러보았다.


데린구유를 떠나 카파도키아 우치사르 괴레메 마을로 향하며 잠시 점심시간을 갖는다

 

항아리 케밥

 

터키에 여행을 와서 계속 만나게 되는 케밥은 원래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라는 뜻이다.

  중국, 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의 하나로 꼽히는 터키 요리 중에서도 대표적인 요리다.


  터키는 다양한 역사적·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음식 종류도 다양한데, 특히 드넓은 중앙아시아 땅을

 누비던 유목민족 조상 덕분에 빠른 시간 내에 쉽고 간편하게 해먹는 요리에 익숙해졌고 케밥도

그 과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재료가 단순했지만 오스만 제국이 아나톨리아 지방에 정착하면서 술탄의 밥상에 동일한

요리를 올려서는 안 된다는 법칙에 따라 재료와 조리법이 풍부해졌다.주재료는 쇠고기, 양고기이며

 닭고기를 쓰기도 하며 고등어 케밥 처럼케밥의 종류가 200~300가지에 이를 정도로 매우 다양하고

지방마다 특색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숯불 회전구이인 도네르(Doener) 케밥, 진흙 통구이인 쿠유 케밥, 꼬치구이인 시시(Shish)

케밥, 도네르 케밥에 요구르트와 토마토 소스를 첨가한 이슈켄데르(Ishkender) 케밥 등이 있다.

 

이런 케밥 중에서도 카파도키아 항아리 케밥은 터키어로는 도자기라는 의미의 테스티 케밥(Testi Kebab)

이라고 하는데항아리 속에 소고기나 양고기(선택)와 함께 양송이, 고추, 가지, 토마토 등 여러 종류의

야채와 소스를 섞어 넣고 2~3시간 동안 항아리를 불에 올려서 익혀내는 음식이다.

 

카파도키아의 아바노스 지역이 도자기가 발달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항아리를 이용한 조리방법의

 케밥이 발달한 듯하다.


항아리 케밥으로 식사를하고 우치사르 관광과 사파리투어에 들어간다

 카파도키아는 도시 이름이 아니고 중앙 아나톨리아 고원의 동남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광활한 아나톨리아 지역을 지칭하던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의미의 카파투카에서 기원했다는데,

네브셰히르(Nevsehir)주가 중심지역으로 동쪽의 카이세리(Kayseri)주와

서쪽의 악사라이(Aksaray)주를 포함하고 있는 지역이다.

한 때 카파도키아 왕국이 있던 지역이어서 통칭 이 지역을 카파도키아로 부르고 있다.


동서 교역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새로운 제국이 생길 때마다 전쟁터로 변하곤 했는데,

기원전 18세기에는 고대 철기문화를 일으켰던 히타이트왕국이 정착했었으며,

그 후 페르시아, 카파도키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 등 수많은 왕국과 제국들이

지배했다고 한다.



이곳은 약 300만 년 전에 카이세리(Kayseri)주의 에르지예스 산(Erciyes Mt. 3,917m)

악사라이(Aksaray)주의 하산 산(Hasan Mt. 3,268m)이 화산 폭발하면서 분출된 용암과

대규모 지진으로 인해 형성된 지형인데,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작용을 일으켜 부드럽고

쉽게 깎이는 응회암지대로 바뀌었다.

 

파란것은 악마의 눈이다


그 때문에 바위를 깎아 만든 거주공간은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할 수 있었고, 지하도시는

쉽게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아 기독교 탄압시기에 기독교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그로인해 오랜 세월 기독교인들의 은신처가 되었으며, 예배를 드리기 위한 수도원 등이

산재하여 오늘날 기독교의 성지라는 의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뾰족한 바위’를 뜻하는 우치사르는 괴레메에서 남서쪽으로 3km정도 떨어진 곳으로,

해발 1300m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산이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역대 이 지역 지배자들의

성채와 망루 역할을 하던 곳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가까이 가지 않고 먼 곳에서 조망하는 것으로 대신하는데 수도사

들이 신앙을 지키며 예수의 가르침을 수행하고자 바위산에 큰 구멍을 뚫고 생활한 곳

이라고 한다.

그냥 하나의 큰 바위로 된 산인데, 하늘을 향해 성채처럼 우뚝 솟은 채 작은 계곡을 감

싸고 있는 풍광이 괴이하다. 경사면을 따라 둥글고 네모난 구멍이 촘촘히 뚫려 있다

이곳도 로마의 핍박을 피해, 기독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으로 바위산과 아래 마을을

연결하는 지하터널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을 비둘기 계곡이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많은 비둘기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비둘기들은 이곳에 거주하던 기독교인들에겐 귀한 손님이었다.

이들은 비둘기를 키워 편지 왕래와 소통의 도구로 썼으며,

비둘기 알에서 염료를 얻어 석굴예배당의 성화를 채색하였다. 

성채의 내부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멀리서 사진만 간단히 찍고 바로 괴뢰메로 이동한다. 




가이드 말로는 낙타를 사진 찍으면 1불을 내야 된다기에 멀리서 한장 담았다

괴레메마을


이렇게하여 카파도키아 우치사르 관광을 마치고 사파리투어에 들어간다

 

Don't Cry For Me Argent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