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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전

영동 평화공원

영동 노근리 평화공원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노근리 특별법이 재정된 후 2008년 노근리 쌍굴다리의 보전과 희생자의

 추념을 위한 평화공원의 건립이 추진되었다.역사공원은 노근리 쌍굴 다리와 인접하여 지어졌으며 기념관과 위령탑,

조각공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근리 평화공원의 관람은 무료이며 3월에서 10월까지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한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은 휴관한다

도로명 주소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넓은 공원의모습

물양귀비

장미는 이제 물러갈 시간이되어 시들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아쉬운대로 봐줄만하다



수련도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리연꽃은 연꽃 종류 중 가장 작은 꽃으로, 보통 연꽃은 지름이 15~20㎝ 정도 되지만 어리연은 1.5㎝밖에 안 되어

 거의 10분의 1 수준이다. 공원의 연못에 가보면 제법 보기 쉬운데, 보통 연꽃과는 많이 다르다.

제주도와 남부, 중부지역의 습지나 연못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수생식물이다. 물 깊이가 낮고 잘 고여 있는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며, 가느다란 원줄기는 약 1m 정도 자란다.


물칸나


물칸나(워터칸나,Thalia dealbata) 입니다

학명: Thalia dealbata

과명: 마란타과

원산지: 미국

다른 이름: 워터 칸나 마란타과 물칸나속 여러해살이풀





원추리

밑에서 2줄로 마주나와 늘어서는데 길이 60~80cm, 나비 12~15mm의 선형으로서 끝이 둥글게 뒤로 젖혀지며 끝이 뾰족하다.

 질은 다소 두껍고 단단하며 표면은 흰빛이 도는 녹색을 띤다.


7~8월에 잎 사이에서 나온 긴 꽃줄기 끝에서 가지가 갈라져 백합 비슷하게 생긴 6~8개의 등황색 꽃이 총상 꽃차례를 이루며

달려 핀다. 꽃의 길이는 10~13cm, 통 부분의 길이는 1~2cm이다. 꽃턱잎은 선 모양의 댓잎피침형이고 길이 2~8cm, 작은 꽃자루는

 길이 1~2cm이다. 꽃잎인 안쪽 꽃덮이 조각은 긴 타원형이고 가장자리가 막질이며 위쪽에서 뒤로 젖혀진다. 6개인 수술은

통 부분 끝에 달리고 꽃잎보다 짧으며 꽃밥은 노란빛을 띠는 선형이다.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며 계속 다른 꽃이 달린다.





끈끈이 대나물

잎은 마주나기하고 엽병이 없으며 달걀모양 또는 넓은 피침형이고 끝이 뾰족하며 밑부분이 둥글고 중앙부의 잎은

길이 3-4.5cm, 폭 1-2cm이다.


꽃은 6-8월에 피며 지름 1cm정도로서 홍색 또는 백색이고 원줄기 끝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져 끝에 많은 꽃이 모여 달린다.

꽃받침은 곤봉형이며 길이 15mm로서 끝이 5개로 갈라지고 열편은 끝이 둔하며 가장자리가 백색 막질이다.

꽃잎은 5개가 수평으로 퍼지고 밑에 조부(爪部)가 있으며 판연은 도란상 쐐기모양이고 끝이 파지며 후부(喉部)에

소비늘조각이 있다. 수술은 10개, 암술대는 3개이다.


물양귀비


양귀비과의 여러해살이풀.

물이 있는 시궁창같은 습지에서 자라는 수생식물로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의 일부분은 물속에서 일부분은 물위에

 떠서 잎과 함께  자란다. 초록색의 둥근잎은 물옥잠처럼 반질반질하고 깔끔하면서도 단순해보이는 노오란꽃잎이

 3장으로 피고 꽃 중앙에 붉은 빛의 수술부분이 자리잡고 있다.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다. 




저기 정자에 앉아있는 여자들일행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지 참으로 척박하게 보여 눈쌀이 찌뿌려진다

송엽국

번행초과 송엽국속 다년생 초본이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로 두툼하고 즙이 많은 다육질 잎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송엽국(松葉菊)이란 ‘소나무 잎이 달린 국화’라는 뜻이다. 솔잎과 닮은 잎, 국화와 닮은 꽃이 핀다는 의미가 있다.

소나무와 같은 상록 식물이기도 하다. 잎 모양과 무리 지어 피는 모습이 채송화와 비슷해 ‘사철채송화’라고도 한다.


높이 15~20cm 정도로 자란다. 봄부터 여름까지 자주색, 분홍색, 흰색 꽃이 무리지어 핀다. 꽃은 줄기 끝에 나며 크기는

지름 5cm 정도다. 얇고 긴 꽃잎은 매끄럽고 윤기가 나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속명인 람프란서스

(Lampranthus, 송엽국속)는 라틴어로 ‘빛나는 꽃’이란 의미가 있다. 잎은 육질이 두꺼운 원통 모양으로 마주난다.

 송엽국속 식물 대부분이 길고 즙이 많은 잎을 가지고 있다. 해가 지면 꽃이 오므라든다.




'장미정원'은 유토피아 장미원 안대성 대표로부터 장미 1500주를 기증받게 되면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지난 60여 년 동안 노근리사건의 아픔을 간직하고, 추모의 공간으로만 여겨지던 노근리평화공원이 아름다운 '장미정원'을

통해 많은 군민과 방문객들로부터 사랑받는 평화와 사랑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현재 약 1만3000㎡의 정원에 총 2600주의 다양한 장미나무들이 심어져 있으며, 따뜻한 햇살 가득한 요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장미꽃 5만여 송이가 피어나 노근리평화공원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놓고 있다.


공원 내에는 장미정원 뿐만 아니라 연꽃정원, 작약정원, 국화정원 등이 들어서며, '사계절 꽃피는 정원'의

 위용이 점차 갖춰가고 있다

.

올해도 펜지 2만본, 금잔화 4000본을 비롯해 무궁화, 리빙스턴데이지 등의 봄꽃들을 추가로 식재하고 하천

주변으로 들국화와 금계국이 만발하면서 공원이 더욱 풍성해졌다.


현재, 장미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석(境界石) 구석구석에 심었던 '붓꽃', '사계절 채송화'가 '꽃의 여왕' 장미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장미꽃을 비롯해 이러한 다양한 꽃들을 즐기기 위해 주말, 공휴일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노근리평화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지속되고 있다.

그시절 군용장비들을 전시해 놓았다

여기는 5`60년 대의 거리 모습을 재연해 놓은 곳이다


백합

백합과 나리속의 여러해살이 풀. 키가 1m까지 자라고 비늘줄기는 납작한 공 모양이다.

 잎은 잎자루 없이 줄기를 감싸며 어긋난다. 5~6월에 꽃이 줄기 끝에서 2~3송이씩 옆이나 아래쪽을 향해 피며,

보통 향기가 있지만 품종에 따라 향기가 없는 것도 있다.

             키가 1m까지 자라고 비늘줄기는 약간 납작한 공처럼 생겼다. 잎은 잎자루 없이 줄기를 감싸며 어긋난다.

 꽃은 5~6월에 줄기 끝에서 2~3송이씩 옆이나 아래쪽을 향해 피며, 보통 향기가 있지만 품종에 따라 향기가 없는

 것도 있다. 타원형의 납작한 열매가 8~9월에 열린다.

모감주나무

잎은 어긋나기하며, 홀수깃모양겹잎으로, 길이는 25 ~ 35cm이다. 소엽은 7 ~ 15개이고, 달걀형의 긴 타원형이며

길이와 폭이 각 3 ~ 10cm × 3 ~ 5cm로, 뒷면 잎맥을 따라 털이 있으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하고 둔한 톱니가 있다.


원뿔모양꽃차례는 길이 25 ~ 35cm로 가지 끝에 달리고, 꽃은 짧은 퍼진 털이 있고 지름은 1cm로, 노란색이나

 중심부는 붉은색이다. 꽃받침은 거의 5개로 갈라지며 꽃잎은 4개가 모두 위를 향하여 한쪽은 없는 것 같이 보이고,

 뒤로 젖혀진 아랫부분에 붉은색 부속체가 있고, 6월 말 ~ 7월 중순에 개화한다.

비비추

모두 뿌리에서 돋아나와 비스듬히 퍼져 자라는데 길이 12~13cm, 나비 8~9cm의 달걀을 닮은 심장형 또는 타원 모양의

 달걀꼴이다. 8~9개의 맥이 있으며 끝은 뾰족하다. 가장자리는 밋밋하지만 물결 모양으로 약간 우글쭈글하다. 앞면은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색이 약간 연하며 광택이 있다. 잎자루는 길이 약 15cm이고 밑 부분에 검은빛이 도는 자주색의

반점이 있다.


7~8월에 연한 자주색으로 피는데 곧게 선 꽃줄기 끝에서 총상 꽃차례를 이루며 대롱 모양의 꽃이 한쪽으로 치우쳐 달린다.

꽃턱잎은 얇은 막질이며 자줏빛이 도는 백색이고 작은 꽃자루의 길이와 거의 비슷하다. 꽃부리는 길이 4cm 정도의

 종 모양이며 끝이 6개로 갈라지는데 갈라진 조각은 약간 뒤로 젖혀진다.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길게 꽃 밖으로 나온다


칸나

홍초과 홍초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 홍초속은 홍초과의 단일 속으로 약 500여 종의 식물이 포함된다.

비늘줄기성 식물인 칸나는 서인도제도와 중앙 아메리카의 열대·아열대 지역에서 자생한다. 넓은 타원형인 잎은 양끝이

좁아지고 원줄기를 감싸고 있다. 꽃은 빨강·노랑·보라·오렌지색 등으로 여름부터 가을까지 계속 핀다. 칸나 인디카를

비롯하여 100종 이상의 원예품종이 있으며 온대지방의 온실, 열대지방의 정원에서 흔히 재배되고 있다.


충혼탑


충혼탑 내용



그당시 노근리의 피난행렬


모자상

노근리사건 당시 갓난 남자아이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총탄에 맞아 이미숨진 엄마의 젓꼭지를

 물고 있는 모습을 재연한 모자상이다 이 모자상은 노근리 사건 당시의 비참함과 전쟁의비극적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각품이다

시련

본작품은 무차별적인 폭격과 총격으로 얼룩진 비참한 역사를 떠올리며 정지된듯한

시간속에서 과거의 시련과 아픔을 돌아보고 그 날의 상황을 상상하며 잠시나마 숙연한

미음을 갖도록 제작되었다

시선

처참했던 사건 당시의 상황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남매의 모습과 폭격하는 비행기

그리고 잊혀져가는 기억을 상징하는 액자형의 틀을 두조형의 공간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하나되어 나가리

전면의 당당한 인물군과 뒷쪽의 죽어가는 양민들의 상황을 현장감이 있게 표현하고 있고

총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운동감 있는 인체를 기반으로 상승하는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된 미래를 향하여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주제로 하여 남과 북이 통일되어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남과 여로 상징한 도약하는

인체로 표현 하였다 기둥을 둘러싼 무작위의 곡선형을 드리미칼하게 운동성을 보여주며 주제를 보조하고 있다

그날의 흔적

앞면은 피난행렬을 뒤에는 죽어가는 양민들의 처했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상단의 총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제작되었다

노근리 쌍굴다리위로 기차가 그 때를 아는듯 모르는듯 지나가고 있다



수많은 총탄자국 250여명이라는 양민이 여기서 희생을 당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노근리 쌍굴다리는 개근천(愷勤川) 위에 무근콘크리트조로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이다. 1934년 경부선 열차의 운행을

 위해 지어졌다. 영동역에서 하행하여 황간역에서 3km 정도 못 미치는 지점에 있다.


노근리 쌍굴다리는 한국 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현장이다.전쟁이 일어난 지 한달 뒤인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까지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집단 약 250명에서 300여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굴다리에는 지금까지도 총탄 흔적(○, △ 표시)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던 노근리 학살 사건은 1999년 미국 AP통신의 보도로 널리 알려졌고, 그 이후 국내 여러 주요

언론도 보도하였다. 미군이 일으킨 학살이기에 AP 내에서도 보도 결정이 쉽지 않았다. 노근리 학살에 대한 보도는

 그 이전에도 있었으나 미국 언론이 보도하기 전에는 한국의 주요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보도 이후 미국은 사건을 부정하려 하였고, 조사를 하는 동안 사건 당시 "진지로 접근하는 모든 피난민을 사살"하라는

협조가 공군에 요청된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이를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즉 고의가 아닌 사고로 평가해 비판을

 받았다.미국은 1년의 조사 이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 2017년 6월까지도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은 없는 상태이다.

노근리사건 발생 50년만인 지난 1999 년에야 한미 양국정부가 진상조사를 시 작했다.

진상조사 후 2001년 1월, 미국 의 클린턴 대통령은 노근리사건 피해자 와 한국 국민에게

이례적으로 유감표명 성명서를 발표했다.

노근리사건에 대한 최초의 기록화 작 업은 1960년, 고 정은용 씨가 노근리사 건의 비극적 기억을 가진 자신의 부인 과

 생존 피해자 몇 명을 대상으로 구술 증언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시 작됐다.


 이를 통해 수집된 구술기록을 서울에 소재한 주한미군배상사무소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청원서가 만들어졌 다.

 이 청원서는 노근리사건의 전말을 다루면서 노근리사건은 국제법적으로 전쟁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미국정부의 공식사과와 손해배상을 요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곧 피해 자들이 하나의 기억 공동체로서 형성되 는 최초의 움직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손해배상 요구를 제 기한 이듬해인 1961년 5월, 5·16 군사쿠 데타로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후 30여 년간 군부독재 정권 아래 이 문 제를 발설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시대 가 이어졌다.

 
그러나 고 정은용 씨는 여기에서 포 기하지 않고 수집된 구술기록을 토대로 문학작품을 집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물이 1977년 11월, <월간 한국문 학>에 발표된 노근리사건을 주제로 한 중편소설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그 러나 탈고된 원고를 가지고 서울의 유 명 출판사 등 출판사 10여 군데를 찾아 다니며 출간을 부탁했으나 번번이

거절 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4월, 장 편 실화소설 <그대 우리 아픔을 아는가 >가 출간됐다.

 

이 장편소설 출간을 계 기로 1994년 6월, 노근리 미군양민학살 사건 대책위원회(이후 피해자대책위로 약칭)가 구성됐다. 


다시 공원을 한바퀴 돌아보고 다음장소로 이동을 한다

이곳에서 뿐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이렇게 많은 희생을 당했다

거창 신원에서는 750여 명이나 부역했다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 사살을 했다

이래도 전쟁을 해야하는가 우리는 깊이 반성을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르르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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