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울산 십리 대밭에 맥문동이 있다기에 갔었는데 실망하고 온차에 주말에 쥬디님께서
경주 황성공원 맥문동을 멋지게 포스팅한 걸 보고 문의 했더니 친절하게 가르처 주시기에
오늘 땡볕에 기온이 높다지만 무조건 출발을 하였다
6.25전쟁 참가 기념비, 월남전참가 기념비
황성공원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인 역사 도시, 어느 땅을 파도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방이 경주국립공원으로 둘러쌓인 경주시에서 황성공원은 문화유적 답사에 지친 여행자들의
발을 편하게 해주는 쉼터 구실을 한다. 경주시 북쪽에 있는 공원으로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던 곳이다.
공원 안에는 공설운동장, 충혼탑, 높이 16m의 김유신장군 동상, 박목월 시비 등이 있으며,공원 주위는 온통 숲으로 덮혀있다.
2년마다 10월 초순이면 신라문화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주차장에서 진입하면 이렇게 참나무들이 즐비하나 조금 들어가면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 한 곳에만 맥문동이 있는 줄 알았는데 충혼탑을 돌아보고 소나무 사진을
찍기위해 가로 질러 가는데 여기보다 더 많은 맥문동 군락지가 있다
황성공원은 신라시대 진평왕과 충신 김후직에 대한 전설이 지금까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은 성격이 호방해 당시 황성공원 일대에서 사냥을 즐겼다. 병부령 김후직이 정사를
돌볼 것을 간청했지만 왕이 받아들이지 않아 스스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김후직이 나라를 걱정하다 죽음에 이르러 아들에게 “내가 죽으면 임금이 사냥을 다니는 길가에 묻어라”
고 유언해 황성공원에 묻혔다.
왕이 사냥을 나가는데 무덤 속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물으니 신하가 “김후직의 무덤에서 나는 소리”라며
유언까지 전해 올렸다. 왕은 눈물로 뉘우치고 “살아서 충신은 죽어서도 충신”이라며 사냥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풍물지리지에 전한다.
충혼탑
충혼탑 옆에는 무궁화 동산이 있다
이새가 후투티라는 새라고 한다 여기서 서식을 하는 모양인데 우연히 카페에들려 이새를 보게 됐는데
백송 선진규님께서 수 날을 다니시며 겨우 담은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잘 담으셨다
백송선생님 댓글에 말씀드리려 했는데 댓글을 달 수가 없어서 허락없이 가져왔네요 죄송합니다
후투티는 인디언 머리장식과 비슷한 머리깃털을 갖고 있어 '인디언 추장새'로도 불린다.
산란 시기는 4~6월이며, 한 배에 3~5개의 알을 낳는다.
후투티는 스스로 둥지를 만들지 못해 딱따구리가 파놓은 나무 둥지 등을 이용하고 땅강아지, 유충, 거미를 잡아먹는다.
경주 황성공원은 국내 후투티 서식지 중 가장 잘 보존돼 있어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천명의 사진작가들이 몰려온다
마치 소나무가 춤을 추는 듯 자유자제로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인다
김유신 동상 .최시형 동상
박목월 시비 달과 송아지
소나무를 좋아 하기도 하지만 고만고만 한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으니 찍고 또 찍고 자꾸 샷다를 누르게된다
2년전부터 새로 심기 시작한 황성공원의 맥문동은 기존의 소나무숲과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맥문동 명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맥문동 군락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배경을 주무기로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다.
햇볕이 너무 강렬하여 그런지 꽃 색깔이 그리 이쁘게 나오지를 않는다 사진술이 모자란 탔이겠지
시내 한 복판에 이렇게 아름다운 참나무숲과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는데 거기에 맥문동까지 재배하여
보라빛 향기를 더해주니 더할나위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게된다
경주에 살고 있는 분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요즘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단연 맥문동과 배롱나무 일것이다. 뿌리의 굵은 부분이 보리와 비슷해 맥문(麥門)이라
하고 겨울을 이겨 낸다고 해서 동(冬)을 붙인 맥문동. 이 꽃은 몇 해 전부터 깊은 여름만 되면 황성공원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나무 숲과 잘 어울리는 맥문동 밀양 삼문동 소나무 숲에 가을이면 구절초 꽃이 장관이던데
황성공원은 맥문동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공원전체를 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처음 접한 곳에 맥문동은 별로였고 두번째 군락지는 정말 멋젔는데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직 한군데가 더 있단다 날이 더워 다돌아보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오늘은 사진가지고 장난을 조금 처 봤다
황성공원의 역사
경주시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역사도시이다. 신라시대 초창기로부터 2천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도시의 형태와 문화는 크게 변화했다. 경주지역 전체에 신라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조금씩 보존되고 있다.
황성공원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형태는 신라시대의 모습을 가장 온전히 간직한 곳이라 짐작된다.
나무가 우거진 숲이기 때문이다. 숲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새로움을 추구해
현대적 문화의 옷을 껴입고 있는 곳이다.
황성공원은 경주의 중심에 있다. 토함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덕동댐, 보문호를 지나 황성공원 남쪽을 감싸 흐르고,
서쪽 경계도 토함산에서 발원한 남천이 형산강으로 합해 포항 바다로 이르는 강줄기가 현곡과 다리로 잇게 한다.
동쪽과 북쪽이 동천동, 황성동으로 연결되는 경주시 중심으로, 도시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허브 기능을 한다.
황성공원은 경주시 황성동 산1-1번지 약 90만m² 부지에 소나무, 참나무 등 60여종의 나무 1만2천여 그루가 심어져
사철 푸른 동산이다. 신라시대 고성숲으로 불렸다. 사냥터이자 화랑들이 심신단련을 하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시민들이 심신단련을 하고, 활 시위를 당기고, 백일장을 하는 등으로 그 기능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벌도 열심히 꿀 따러 다니고
오늘은 삼각대를 가지고 나와 여러장을 찍어보는데 역시 많이 찍지를 않아서인지 폼이 영 엉성하다
아직 한번도 염색을 안했는데 이제 옆머리도 완전 백발로 변해가고 있고 ㅜㅜ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새삼 우탁의 시 한구절이 생각난다
찍고 들여다보고 찍고 들여다보고 잘 나왔나 못 나왔나 연신 확인하는 처자들의 모습이 참 귀엽다
금년에는 이렇게 맥문동을 찾아 나섰으니 내년에는 담양 명옥헌 원림이나 달성 하목정
삼가헌으로 배롱나무 꽃과 연꽃을 보러 가야겠다
황성공원은 지금 경주시민의 공원이자 삶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민들의 쉼터로 발전하고 있다. 신라시대 고성숲으로 불리며 사냥터이자 화랑들의 심신수련의 장이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삼국유사를 비롯한 많은 역사서들에서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지금 황성공원은 아름다운 숲, 운동장, 문학비와 각종 기념비, 동상 등으로 꾸며져 백일장, 축구대회, 태권도대회,
테니스대회, 궁도대회, 뮤직페스티벌 등등 다양한 전국규모의 행사와 축제가 벌어지는 힐링의 중심센터로 기능하고 있다.
숲속의 산책로는 경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 기능을 넘어 스포츠인들의 훈련, 문화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도
크게 활용되고 있다.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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