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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인흥 남평문씨 세거지와 도동서원

도동서원에 가면서 잠시 남평문씨 인흥세거지에 들렸다

생각한 것처럼 내부는 들어 갈 수가 없어 외부만 돌아본다

예전에 들렸을 때는 이러한 문익점선생상이 없었는데 얼마전에 조성한 듯

선조 문익점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 매년 앞 뜰에 목화를 심고 있다

연못도 얼마전에 조성하여 이제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仁興園(인흥원)]

 

인흥원은 경주 안압지를 본떠 만든 연못이라 한다.
세거지 입구쪽에 새로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내부 관람은 할 수가 없습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자세히 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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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물은 대구시장을 역임했던 문희갑씨의 생가다

종택에는 후손이 기거하는 것 같다 

[廣居堂(광거당)]

 

書舍(서사) 및 學堂(학당)으로 쓰인 건물인 廣居堂(광거당)
고종 9년(1873) 후은공과 문봉성이 남평 문씨
문중을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서 후손들의 수학 장소이다.

[廣居堂(광거당) 담장과 배수로 집주변을 감싼 소나무]

영화 '황진이' '씨받이'
SBS드라마 '달의연인 보보경심려' 등을 촬영한 곳이라 한다.

 

일연스님은 여기 인흥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 하다가 인각사로 옮겨서 완성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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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클릭하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화원 남평문씨 인흥세거지

        인흥세거지의 역사는 약 200년이 되었고, 유교적인 문화가 남아 있는 씨족 마을이기에 안동마을과 비교가         되곤 하는 곳이다. 문익점의 후손인 문경호가 가족을 이끌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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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도동서원 전경을 담아본다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가 심었다 한다.

수령이 400년 된 은행나무로 대부분의 은행나무가 곧게 위로 자라는 반면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가지를 옆으로 늘어뜨려 운치를 더하는데 높이 25m

은행나무를 두고 김굉필나무라 한다. 정작 심은 사람은 외증손 정구가 아닌가.

수월루는 도동서원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이지만 옛스러움을 잃어 버렸다. 외삼문과

누각이 올려진 모습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1888년 화재로 소실 된 후

 1973년 복원한 건물로 수월루란 강물위에 드리워진 달을 연상하게 한다는 의미로

김태수가 쓴 글이다.

김굉필(金宏弼, 1454년 ~ 1504년)은 조선 전기의 문인, 교육자, 성리학자(號)는 한훤당(寒暄堂)·사옹(蓑翁),

또는 한훤(寒暄)이며 자는 대유(大猷),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김일손, 김전, 남곤, 정여창

 등과 동문이었다. 《소학》에 심취하여 스스로 '소학동자'라 칭하였고, 《소학》의 가르침대로 생활하였다.

1480년(성종 11) 초시에 합격하고, 1494년(성종 25년) 훈구파 출신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에 의해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출사하여 주부(主簿), 사헌부감찰, 형조좌랑 등을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지방관으로 부임한 조원강의 아들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그 자신도 조광조·이장곤·주계정 이심원·김안국·이연경 등의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서인학파를 이루게 되었다.

 《소학》을 행동의 근간으로 삼아 《소학》을 알지 못하고는 사서육경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본관서흥(瑞興)이다. 한성부 출신.

수월루를 지나 마음의 근본이라 부르는 일각문인 환주문으로 들어선다. 환주문은

 높게 문을 올려 만들 수 있지만 고개를 숙여 들어 오도록 낮게 만들어 놓았다.

그 뿐만 아니다. 문이 낮고 좁아 동시에 두명이 들어 설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수월루를 지나 오르는 계단길도 조심스럽게 걷도록 높낮이가 높지 않은 대신 넓게

 계단이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성스러운 공간으로 누구던 고개숙여 인사하고

들어서도록 만들어 놓은 듯 보여진다. 환주문은 주인을 부르는 문, 자기 마음의 주인을

 찾는다 등으로 해석되며, 빗물 누수를 막기 위해 서원에서는 보기 드문 절병통을

올려 놓았다.

강당 기둥머리에 하얀 종이의 띠를 둘러친 것을 “상지”라고 하는데, 이것은 서원 사당에 모신

동방오현東方五賢의 수현首賢인 문경공 한훤당 김굉필(文敬公 寒暄堂 金宏弼)선생에 대한

존숭尊崇의 예禮를 표하는 휘장徽章이다. 

전국 650개 서원 중 도동서원에만 이 흰 띠가 둘러져 있다.

환주문에서 중정당으로 가는 돌길과 석단이 만나는 자리에 돌거북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앙다문 입 양쪽에 튀어나온 송곳니와 잔뜩 힘이 실린  눈매가 매섭게 보인다.

배움의 학당 중정당 공간에서 학생들이 지켜야 할 엄한 규율을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인재

거의재

서원은 향교와는 차이가 있다. 서원이 오늘날 사립학교라면 향교는 공립학교이다.

서원은 학문에 열중하는 반면 향교는 과거를 위한 준비하는 공간을 성격이 약간 다르다.

김굉필은 1454년 한성 출신으로 27살에 생원시에 합격 후 마흔에 정6품 벼슬인 형조좌랑을

 지냈으며, 1504년 세상을 뜬 성리학자로 사림파 시조 김종직을 스승으로 두었다.

 도동서원 현판과 정료대

 

정면 5칸, 측면 2칸 반 주심포 계통의 맞배지붕을 올린 건물로 첫번째 외부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를 집자한 곳이다. 중정당으로 오르면 도동서원 현판이 2개가 정중당과 함께 총 3개가

일직선으로 걸려 있다. 현판 앞으로 팔각기둥에 네모난 모서를 다듬어 놓은 석재가 있는데

불을 밝히던 정료대로 대부분 서원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찾아볼 수 있는데 이곳 도동서원은

 아래에 설치한 것이 아니라 중정당 정면 마루 앞 자리에 보행을 방해 할 정도로 가깝게

설치하여 놓았다. 정료대는 행사가 있을때 솔가지, 기름통 등을 이용하여 불을 밝히는 곳이다.

기단의 돌은 사암(沙岩)으로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있다. 석축의 아랫부분에는 거북머리 돌조각이 있고,

상부 갑석과 만나는 부분에는 네 마리의 용두가 돌출해 있다. 좌우 계단 사이 두 마리 용은 물고기를,

계단 밖 각각의 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이들 네 개 용머리 중 옅은 색 하나만 진본이고 나머지

세 개는 복제본이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중정당 기단부에 막돌을 사용하여 올린 후 일정한 간격으로 양쪽 오르는 계단을 내고 중앙을

중심으로 각각 4마리의 용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그 중 한마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남은 3마리는 물고기를 물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물고기 표현은 아니며 용의 머리부분만

익살스럽게 보인다. 낙동강물의 범람을 막기위한 비보책으로 만들었다 하는데 용의여주를

물고 있는것이 건물 만들 당시 조각상이며, 다른 모습은 용두를 분실한 후 만들어 넣은 것으로

색상이 다르다.

강학공간인 중정당의 핵심 개념이 중정인의(中正仁義)다. 중정인의는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 “성인은 중정과 인의를 바탕으로, 고요함에 중점을 둬 사람의 태극을 이룬다.

(聖人定之以中正仁義 而主靜立人極焉)” 사람의 태극인 성인이 되기 위해 중정과 인의가 바탕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중정은 한 가운데 바로섬을 말하고, 인의는 어짐과 의로움이다.

 

중정당에는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도동서원이라는 사액현판과 이황의 글씨를 모각한 서원현판이다.

그리고 사액현판 아래 중정당이라는 당호현판이 걸려 있다. 강당 안쪽에 있는 사액현판은 경상도사 배대유

(裵大維)가 썼다. 중정당 현판은 봉조하(奉朝賀) 이관징(李觀徵)이 썼다. 이황의 글씨를 모각한 도동서원 현판

아래에는 「도동서원액판하(道東書院額板下」라는 작은 현판이 걸려 있다. 한강 정구가 1606년 이황의 글씨

현판을 걸게 된 사유를 적어 놓았다.

장판각藏板閣은 중정당의 왼쪽 한단 낮은 지대에 위치하며 정면 2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이다.

경장각經藏閣, 서고書庫 등으로도 불리며, 서책을 보관하거나 책을 찍어 낸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내삼문 안쪽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김굉필 선생의 위패를

그 왼쪽에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셨다. 사당의 좌우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왼쪽 벽화는

‘강심월일주(江心月一舟)’고, 오른쪽 벽화는 ‘설로장송(雪露長松)’이다.

강심월일주는 김굉필의 시 ‘선상(船上)’의 한 구절이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입을 벌리고 있는 거북 머리돌이 있다. 

정료대

 

사당 옆 증반소는 밥을 짓는 건물로,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장판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중정당 좌측 배면쪽 한 단 낮은 대지에 자리한다.

중당당 우측의 전사청은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ㄷ'자형으로

본채의 중앙 3칸은 전면이 트인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좌우 칸은 전면으로 이어져 익사(翼舍)를

형성하고 있다. 우익사는 배면부터 2칸 부엌과 2칸 온돌방, 좌익사는 배면부터 1칸 온돌방, 1칸 부엌,

1칸 온돌방, 1칸 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묘로 오르는 길

유물 전시관은 코로나 19로 폐쇄 들어갈 수가 없다

2017년 다람재에서 바라본 도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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