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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구

경주 신문왕릉과 오릉

요즘은 어디를 가는 것도 두렵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다

실내는 모두 폐쇄고 조금 유명한 곳은 사람들이 많고 난망이다

인터넷 검색하다 경주 풍력발전단지를 발견했다

색다른 정보는 없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 간단히 먹거리 준비하여 

둘이서 출발

네비에 경주 풍력발전단지를 입력했는데 뭐가 잘 못되었는지

월성 원자력 발전소 부근에 대려다 준다 이게 아닌데 다시 입력

토함산 석굴암 오르는 길로 올라 풍력발전단지 입구에 왔다

토함산에는 불국사와 석굴암 가는 길에 풍력발전단지가 조성돼 있다

 경주 풍력 제1발전소는 한국동서발전과 동국 S&C가 440억 원을 들여

건설한 상업용 육상풍력발전 단지다.

거대한 크기의 풍력발전기 7대가 초속 3~25m/s의 풍속에 맞춰 365일 돌아가고 있다.

풍력을 통해 만들어진 전기에너지는 연간 3만 9,599mwh의 양이 생산된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바람의 언덕과 함께 방문객들이 무척 많은 곳이다다.

풍력발전기는 총 세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개, 너셀, 타워라고 불린다.

 바람개비처럼 된 부분이 바로 날개이며, 직경은 물론 95m나 된다고 한다.

무게는 무려 개당 11톤 정도 날개를 돌리는 부분인 너셀은 풍력발전기의 핵심 부분으로서

발전기의 역할을 한다. 타워는 땅에서부터 맨 꼭대기까지 있는 높이 80m의 철 기둥이다.

타워의 폭은 높아질수록 좁아지는데요. 바닥의 직경은 무려 4.8m라고 한다

주차장 옆에 경풍루라는 정자겸 전망대다

공기는 맑아 시야는 좋은데 바라보이는 곳이 어딘지 알길은 없고

겨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별로 볼거리도 없는데 선전은 많이 돼서

이 겨울에도 차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경주 시내로 나오면서 석굴암도 들려볼까 하다가 여러번 들렸던 곳이라 패스를 한다

오릉으로 가다보니 신문왕 묘라 해서 들렸다 예전에 왕의 길을 걸을 때 

바로 거기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릉과 감은사지를 다녀온 길이 었기에

신문왕이 문무왕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신문왕의 릉이 바로 여기다

 

사적 제181호. 지정면적 3만 5,283㎡. 무덤의 지름은 29.3m, 높이는 7.6m이다.

신문왕의 성은 김씨, 이름은 정명(政明) 또는 명지(明之)로 문무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자의왕후(慈儀王后), 부인은 신목왕후(神穆王后)이다.

681년에 왕이 되어 692년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으면서 국학(國學)을 창설, 학문을 장려해

설총(薛聰), 강수(强首) 등의 대학자가 배출되었다.

승하한 뒤 경주 낭산(狼山)의 동쪽에 장사하였다는 기록에 따라 이 곳으로 비정하고 있다.

상석이라 해야 되나 제단이라 해야 되나 왕이니까 제단이라 해야 맞겠지?

무덤의 외부모습은 둥근 봉토분이다. 밑둘레에는 벽돌모양의 잘 다듬은 돌을 사용해 담장을

쌓아올리듯 5단으로 쌓고 그 위에 갑석(甲石)을 올려 무덤 보호석으로 하였다.

 

가로·세로 90㎝, 두께 50㎝ 되는 다듬은 돌을 대각선으로 곱게 잘라내어 만든 삼각형 받침돌

44개를 호석에 등간격으로 받쳐 무덤 외부를 매우 튼튼하게 하였다.

 

남쪽의 받침돌 중에는 ‘門’자를 음각한 것도 있는데, 그 의미는 확실치 않다. 봉토분 동쪽에

석상이 있으나 석재가 고르지 않아 원래의 것인지 확실치 않다. 이 왕릉에는 아직 십이지상·

무인석·문인석·석수와 같은 표지가 없어 묘제가 완전히 갖추어지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능에 대해서는 신라 망덕사(望德寺)의 바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제32대 효소왕릉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그 근거로 1943년 황복사3층석탑을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사리(舍利)를 넣었던 금동함 뚜껑에

새긴 글을 들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탑은 신문왕이 692년 7월에 죽자 왕후와 왕위를 계승할

효소왕이 건립하였고, 뒤에 효소왕이 승하하자 706년(성덕왕 5)에 불사리(佛舍利)·아미타상(阿彌陀像)·

다라니경(陀羅尼經)을 넣어 죽은 신문왕·신목왕후·효소왕의 명복을 빌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황복사는 원래 신문왕을 위해 건립된 것이라 하여 경주 낭산 황복사지(皇福寺址)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파괴된 채로 흩어져 있는 곳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적으로

지정된 지금의 신문왕릉을 효소왕릉으로 본다.

잠시 신문왕릉을 둘러보고 오릉으로 출발

오릉의 외삼문인 신라문(新羅門)

신라문을 들어서면 넓은 평원이 펼처진다

첫 만남이 신라 오릉 정화사업 기념비(1972년)다

전에 와 봤기에 바로 왼쪽의 내삼문으로 향한다

용트림을 하고 있는 큰 소나무 한그루

연못

사적 제172호. 지정면적 8만 9,950㎡.
삼국사기 등 문헌에서는 사릉이라고도 한다.

내삼문인 숭의문 이문을 통과하면 바로 왕들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다

사당(제사를 모시는 곳) 각왕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오릉

사적 제172호. 지정면적 8만 9,950㎡.『삼국사기』등 문헌에서는 ‘사릉(蛇陵)’이라고도 한다.

모두 5기가 있으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거서간과 왕비 알영(閼英), 제2대 남해차차웅,

제3대 유리이사금, 제5대 파사이사금의 무덤으로 전하고 있다.

 

원형봉토분으로 제1릉은 가장 남쪽에 있으며 높이 약 10m로 5기 가운데 가장 높고 크다.

제2릉은 제1릉의 동북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9m이다.

제3릉은 제2릉의 동쪽에 표주박 형태[瓢形]를 이루고 있으며 높이는 약 7.2m이다.

제4릉은 제2릉의 서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3.6m이다.

제5릉은 제4릉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1.8m이다.

 

아직 발굴조사가 실시된 바 없어 각 능의 구조를 알 수 없으며, 경주일대에서 3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원형봉토분의 구조형식이 확인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재 알려진 피장자와 직접

연관시키기는 아직 이른 실정이다.

1호분의 앞쪽에는 후대에 세운 장명등, 비석, 배례석 등이 있다.

돌무지덧널무덤, 즉 적석목곽묘로 추정되는 이유는 대형봉토분을 갖는
적석목곽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목곽이 썩게되면 붕괴되면서 봉분의 정상부가
살짝 내려앉으면서 편평해지게 되는 현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형태는 제멋대로지만 잘 가꾸어진 좌편 소나무 숲이다

오릉에 방목하는 사슴인 듯 뛰어가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포즈를 취해주는 것처럼

멈추어 주위를 살핀다 줌인으로 찍었다

우편 소나무 숲

정면 소나무 숲 3면이 모두 소나무 숲이다

능쪽에 공간이 있어서 인지 소나무 가지가 릉쪽이 더 발달해 있다

뒤에서 바라본 오릉

경주 오릉의 내부 구조는 알수 없어나 외형은 경주 시내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다른 많은 삼국시대 신라고분과 같이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원형 토분으로 되어있다.

삼국유사에는 제1대 박혁거세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에 승천하였다가 7일만에 유체가 5체로 나누어져 땅에 떨어졌다.
나라 사람들이 이를 모아서 장사지내려 하였으나 큰 뱀이
방해하므로 5체를 각각 장사지내서 오릉이 되었고 이로 인해
蛇陵(사릉)이라 하였으니 담엄사 북쪽에 있는 능이 그것이다.
라는 기록이 적혀 있다 한다.전설적인 이야기

가장 높은 무덤이 약 8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실 수 있다.
무덤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언덕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신라시조왕비탄강강유지비

숭덕전뒤 연못

숭성각 숭덕비

영숭문(외삼문) 출입금지다

수경문 (내삼문)이문을 통과하면 숭덕전 박혁거세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홍살문 안쪽으로 영숭문(永崇門)과 숙경문(肅敬門)을 지나면 숭덕전이 위치하고 있다.

숭덕전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인 맞배집이다. 왼쪽에 상현재(象賢齋), 오른쪽에 동재(東齋)가 있다.

영숭문의 왼쪽에 시조왕의 신도비와 비각이 있다

숭덕전 전체 모습

숭덕전은 후손들이 제향을 지내기 때문에 평소에는 문을 잠그고 개방하지 않아 안에 들어가

구경할 수가 없다. 그 입구에는 신도(神道)라고 성스러운 곳으로 표시하면서 올라가지 못하게

하여, 신라시조왕을 모시는 후손들의 태도가 매우 경건함을 엿볼 수 있다.

삼릉 소나무 숲

최근 삼릉 숲은 또 하나의 영상으로 주목 받고 있다.

tvN의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극 중 1화에서 어린 유진이 나무 지게를 매고

지나다 훗날 애신의 조부인 고사홍을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유진은 추노꾼을 피해 삼릉숲 빛으로 사라진다.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먼 훗날 다시 돌아오는 유진의 모습을 예견하는 장면이다.

안개가 드리운 아침 풍경이 멋진데 맞추어 올 수도 없고 신경주역에 가면

삼릉 소나무 숲이 멋진풍경이 대형으로 걸려 있다

삼릉 소나무 숲은 우리나라 소나무 숲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진사님들은 시도 때도 없이 숲을 담으러 몰려든다

천년 역사의 숨결을 품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 들머리. 삼릉을 호위하듯 에워 선 소나무 숲은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빛조차 쉽게 들어서지 못할 만큼 빼곡한 소나무들은 그 생김생김이 오묘하기까지 하다.

이무기가 하늘로 오르듯 용틀임을 하는가 하면, 사위를 활짝 펴고 장단을 타는 듯도 하다.

 

고단한 삶에 지친 듯 땅으로 드러누웠는가 하면, 그리움 사무친 듯 부둥켜안기도 했다.

한 세상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우리네 세상살이가 요지경이듯 송림 또한 그리 다를 바 없다.

소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의 빛내림

이른 아침, 숲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햇살 좋은 날이면 흙과 뿌리까지 온기를 빨아들여 잘 마른 이불처럼 뽀송뽀송해진다.

비 오는 날이면 작은 먼지까지 방울방울 아래로 흘려 보낸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은 길이 되고, 사람의 숨결, 손길을 아는 듯 숲은 좋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숲은 오가는 사람들로 생기를 얻고, 사람은 만찬을 즐기듯 초록빛 보약을 흡입한다. 

빌려온 사진

경주에 몇 번을 와서 후투티를 보려고 했지만 실물을 한번도 못 보았다

지난 번에 우포늪에서 후투티 실물을 보았는데 사진으르 담으려 준비중

날아가버려 담지를 못했는데 너무도 예쁜 모습이었다

역시 삼릉 숲에서도 만나지를 못했고 봄에 황성공원에서도 만나지를 못했다

이사진은 삼릉숲 오르는 길에  사진을 걸어놓은 걸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