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월연정
월연정(月淵亭)은 경상남도 밀양시 용평동에 있는, 조선 중종 15년(1520) 월연 이태 선생이 지은 건축물이다.
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243호 월연정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월연정은 조선 중종 15년(1520) 월연 이태 선생이 지은 것으로 원래는 월영사가 있던 곳이다.
이태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성리학에 입각해 개혁정치를 추구한 조광조 파가 죽음을 당하는
기묘사화(1519)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경관이 뛰어난 곳에 모여 있는 이 모든 건물들은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정자의 기능을 가지며 각기 다른
형태로 지어져 있어 흥미롭다. 이 건물들 외에 탄금 암, 쌍천교 등의 유적과 백송, 오죽 등의 희귀한 나무들이 있다.
월연대는 추화산(243m) 동편 기슭, 밀양강과 단장천이 만나는 지점의 절벽 위에 조성된 정자이다.
저기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분이 아마 종손인가 보다
살림집은 따로 있고 여기에서 관리를 하고 해설사 역할도 하시는 것 같다
점심식사하러 간다고 꼼꼼히 둘러보라 하신다
쌍 경당과 관리동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1520년(중종 15) 함경도 도사 이태가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여 월영사(月影寺)라는 옛 절터에 월연대와
쌍 경당(雙鏡堂, 월연정)을 지어 별서(別墅; 별장)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월연이라는 호를 쓴 이태는 자신을
월연 주인(月淵主人)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때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가 1757년(영조 33) 쌍 경당을 중건하고 1866년(고종 3) 월연대를
복원하였으며, 1956년 제헌(霽軒)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제헌은 이태의 맏아들인 이원량(李元亮, 1504~
1567)을 추모하는 건물이다.
쌍경당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익 공계 팔작지붕 건물로, 월연정의 대청인 쌍 경당은 임진왜란으로 불탔으나
영조 33년(1757)에 월암 이지복이 중건하였고, 쌍 경당에는 문을 달아 열면 주위 경관을 볼 수 있게
했으며, 방, 아궁이를 설치해 4계절 두루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쌍 경당 현판 입은 숭정 기원 후이 갑신(崇禎紀元後二甲申), 즉 숙종 30년(1704년)에 쓴 현판이다.
쌍 경당(雙鏡堂)'이란 이름은 '강물과 달이 함께 맑은 것이 마치 거울과 같다.'라는 말에서 왔다.
이태(李迨)는 쌍 경당과 월연대 등 주건물을 세웠는데, 그중 쌍 경당으로 평면을 보면 남측으로 대청 2칸을
통간으로 두고 그 우측에 온돌방 2칸을 배설하였고, 특히 온돌방과 대청 사이에는 사 분합문을 두어 주위
경관을 조망하기 좋게 평면을 구성했으며, 대청의 우측 1칸은 둘로 나누어 앞쪽에는 방을 뒤쪽에는
아궁이를 두었다
새들이 많이 날아와 지저분하니까 새가 날아들지 못하게 망을 처 놓은 듯
현판이 여러 개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지만 보이지도 않는다
관리동
협문을 지나면 정면 5칸에 측면 2칸의 규모로,
왼쪽부터 대청과 방을 연이어 들이고 2칸 대청이 배설된 제헌(霽軒)이 자리하고 있다
재헌
월연 이태의 장자인 이원양을 위해 건립하였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을
올렸고 가운데 방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대청을 두었다
문창 살도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
제헌(霽軒)은 고종 3년(1866)에 이종상과 이종증이 월연대를 보수하고,
그 당시에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제헌(霽軒)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왼쪽부터 대청·방·방·2칸 대청이 배설되었다.
일반적인 3칸 규모의 정자를 평면적으로 확대한 건물형 태이다.
재헌
월연대는 가장 높은 언덕에 남향으로, 쌍 경당은 중간 높이 지대에 동향으로, 제헌은 가장 낮은 곳에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 외에 쌍청교(쌍 경당과 월연대 사이를 잇는 다리), 탁조 암(강기슭의 반석),
죽오(쌍 경당 서편 언덕의 대숲)를 비롯하여 영월 간, 수조 대, 행단, 한공 이공대, 백송 등 이경관을 구성한다.
추화산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월연정 전경
월연정은 쌍청당·제헌·월연대 등의 건물군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별서로 평가된다.
특히 지형에 맞추어 각기 다른 평면을 지닌 건물과 주위에 희귀한 나무와 꽃, 수석(水石) 등이 아름답게
배치된 것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조영한 별서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월연대(月淵臺)는 정방형에 가까운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정자의 기능을 지닌 건물로,
월연대(月淵臺)는 가운데 방을 두고 주위를 돌아가며 마루를 시설하여 호남식 정자의 유형을 보여 주는데,
평면의 가운데 칸에 방을 두고 네 면에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정자의 기능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온돌방의 모습으로,
사방으로 들 문인 분합문(分閤門)을 두어 방에서의 개방성을 더 하였고,
월연대(月淵臺)의 마루 위에는 여러 기의 기문(記文)으로 보이는 편액이 올려져 있는데,
일부는 새들로부터의 보호 때문인지 그물망을 쳐두어 알아보기가 힘듭니다.
방의 천정은 고식인 우물천정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월연(月淵)', '쌍경(雙鏡)'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달의 경관과 관련이 깊은 곳으로, 특히 월 주경(月柱景;
수평으로 길게 이어진 강에 비친 보름달이 달빛 기둥을 이루는 풍경)이 아름다워 월주가 서는 날인 기망일
(旣望日;음력으로 매달 열나흗날)에는 월연대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다고 한다.
월연대 일원의 건물은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의 기능을 가지지만 여느 정자와 달리 각기 다른 지대에서
다른 방향으로 지은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어 독특하다.
월연대(月淵臺)는 가장 북측의 높은 언덕에 남동향으로 앉아 있다.
건물은 정방형에 가까운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주위를 돌아가며 마루를 시설하였다.
평면의 가운데 칸에 방을 두고, 네 면에 두 짝 여닫이문을 달아 정자의 기능을 충실하게 하였다
월연정(月淵亭)을 세운 이태(李迨,1483~1536)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중예(仲豫), 호는 월연(月淵)으로,
1507년(중종 2)에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510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512년 봉교로 재직 중 모친의 병을 거짓 칭탁하고 사직하고,
창기(娼妓)와 함께 하향한 것이 문제 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았으며,
1519년 함경도 도사로 있을 때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학문에 전념하였다가,
뒤에 등용되어 1532년 삼척부사가 되었으나 탐학 죄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삭직 된 뒤 향리에 은퇴하였고,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힘썼습니다.
월연대 일원은 배산임수의 지형으로, 뒤로는 추화산이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이 동천과
합류 해남 하한 단장천과 만나 흐르고 있다. 멀리로는 용두산, 꾀꼬리봉, 금오산이 보인다.
풍광이 뛰어나 ‘월연대 12경’이라 불리는 경관들이 있지만 강 상류에 댐이 생긴 후 퇴적물이 급증하고 강물이
줄어 월 주경을 볼 수 없고, 월연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예전만 못하다. 그럼에도 산과 하천이 조화를 이룬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우며, 오랜 역사를 지닌 별서로서 관련 문헌과 그림도 남아 있는 등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있다. 2012년 2월 8일 명승 제87호로 지정되었다.
큰 백송나무는 태풍으로 쓰러져 고사를 하고 이 한 그루만 남았다고 한다
가마우지가 몰려있는데 먹이 사냥을 끝냈는지 휴식 중인 것 같다
여가도 큰 은행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지난 번 금시당 백곡재에 왔을 때 여기도 둘러봤으면 좋았을 텐데
내년에는 두 곳을 한 번에 돌아봐야겠다
월연 터널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당시 사용되었던 철도터널로 1940년 경부선 복선화로 선로가
이설 되면서 일반 도로로 이용되고 있다 폭 약 3m 총연장 약 130m이며 백송 터널이라고도 한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산책 도로로 인기가 높으며 영화 똥개의 촬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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