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화암사로 왔다
여기 화암사 들러보고 한화리조트로 이동을 할 것이다
화암사 다녀온 분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었던 수바 위 드디어 오늘 보게 된다
이 일주문은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고 진(眞)과 속(俗)이 하나이며, 만법이 일심(一心)의
소현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문입니다.
화암사는 설악산 권역에 있는데 '금강산 화암사'란 편액을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암
사는 예로부터 <화암사사적기> 등에서 모두 금강산이라 표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신라 혜공왕(惠恭王) 5년(769)에 진표율사(眞表律師)께서 이 절을 창건하시고
는 금강산 화엄사(金剛山 華嚴寺)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차로 사찰까지 들어가느라 일주문 사진을 담지 못해 캡처한 사진임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 편액 은초 정명수(隱樵 鄭命壽 1909~1999) 선생 글씨
은초 정명수(隱樵 鄭命壽 1909~1999) 선생은 진주 태생으로 진주에서 활동한 서예가로,
합천 해인사 「해탈문(解脫門)」, 문경 묘적암 「일묵여뢰(一默如雷)」, 진주 촉석루
「남장대(南將臺)」, 「서장대(西將臺)」, 「진남루(鎭南樓)」 등이 있으며, 그 외에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벚꽃이 다지고 없는데 이곳 화암사에는 지대가 높아서인지 벚꽃이 만개를 했다
이게 바로 수바위다
수바 위는 화암사를 상징하는 바위입니다. 유명한 바위에는 전설이 있는 법입니다.
이 수바 위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신라 36대 혜공왕(惠恭王) 5년 진표율사(眞表律師)가 769년에 창건한 화암사 남쪽
300m 지점에 위치한 우뚝 솟은 왕관 모양의 바위는 모양이 워낙 빼어나 빼어날 수(秀)
자를 써 수암(秀巖)이라 불립니다. 그래서 수바 위라 합니다.
진표율사를 비롯하여 역대 고승들이 이 바위 위에서 좌선 수도 했다고 전해지는 수바 위
꼭대기에는 지름이 2m가량 되고 깊이가 20cm 정도 되는 우물이 있습니다. 이 우물은
극심한 가뭄 때에도 이 물만은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가뭄이 심할 때 이 물
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온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화암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겹처마의 팔 작지
붕 건물로서 1991년 건립되었습니다. 안에는 특이하게도 수기 삼존불(授記三尊佛)이
모셔져 있습니다. 본존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보처 보살로 미륵보살, 제화 갈라
보살을 모셨습니다.
대웅전에 주련이 걸려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圓覺山中生一樹 원각 산중 생일수 원 각산에 한 그루 나무가 생겼는데
開花天地未分前 개화 천지 미분 전 천지가 나뉘기 전 이미 꽃이 피었다네.
非靑非白亦非黑 비청 비 백 역 비 흑 푸른색도 흰색도 검은색도 아니며
不在春風不在天 부재 춘풍 부재천 봄바람 하늘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네.
제화 갈라 보살(提和渴羅菩薩) 본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미륵보살(彌勒菩薩)
제화 갈라 보살(提和渴羅菩薩)은 과거불인 연등불(燃燈佛)께서 성불하시기 전의 보살이
름이며, 석가모니불은 과거세에서 선혜 보살(善慧菩薩)로 수행하실 때 연등불로부터
"다음 세상에서 석가모니불이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으시고 현재불이 되셨으며,
석가모니불은 미륵보살에게 미래에 미륵불이 되리라는 수기를 내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 수기를 주고받은 세 분의 불ㆍ보살을 모신 것을 일러 수기 삼존불(授記三尊
佛)이라고 합니다.
수하 항마상
수바 위 너머로 보이는 울산바위 뒤에 산에 올라야 제대로 보일 것 같다
설악산의 으뜸가는 명물 바위이다. 산자락을 따라 해발 900m에 이르는 기암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울산바위는 모두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대한 바위산 전경이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다.
둘레가 4km에 이르는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정상에 오르면 대청봉과 외설악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울산바위는 그 자체로도 빼어난 명승지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경치도 이 못지않게 훌륭하다.
최연과 허적 등 조선시대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남긴 기록들이 이를 방증한다
저 뾰쪽 봉우리가 달마봉
속초시내
산언덕에 있는 미륵대불
미륵이라 함은 보살의 몸으로 도솔천에 머물다가 미래에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를 말한다
종각
대웅전 앞의 팔각 구층탑 모습
화암사는 절터의 기운이 매우 센 곳이라 예부터 많은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이 탑은
주변의 이러한 센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최근에 세운 비보(裨補) 성격의 탑이라 합니다.
화암사는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처럼 화재가 빈번했다고 합니다.
이 절이 남쪽의 수(秀) 바위와 북쪽의 코끼리처럼 생긴 바위의 맥이 서로 상충하는 자리
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수바 위가 뿜어내는 열기를 이겨내지 못해 불이 자주 난다고
풍수가 들은 진단 한다고 합니다.
《화암 사사 적기》에 기록된 첫 번째 화재(火災)는 인조 1년(1623)에 있었고, 인조 13년
(1635년)에 산불이 일어나 화엄사를 불태워, 인조 22년(1644)년 다시 중건하였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종 3년(1662) 세 번째 화재가 있어 중건하였고 합니다.
숙종 42년(1716)에는 산적들이 절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 후 다시 중건했는데 영조
36년(1760)에 다섯 번째 화재로 대웅전과 향각(香閣)ㆍ승당(僧堂)이 불타 버리자 이듬
해부터 다시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로 정조 18년(1794년) 도한(道閑) 스님이 약
사전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21일간 올렸는데 방광(放光)이 뻗쳐 그 빛이 궁궐의 뜰
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에 감격한 정조가 후원하여 화엄사는 창사이래 가장 큰
사역(寺域)을 형성했다고 합니다. 백우님 글에서
자유당과 무량수전
사찰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울산바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3가지의 설이 전해진다.
바위가 늘어져 펼쳐진 모습이 울타리와 같이 생겼다는 데에서 울산(鬱山) 또는 이산(離山)이라는 불렀다는
것이 첫 번째이다. 또 하나는 이 바위가 본래 영남지방의 울산(蔚山)에 있던 바위라는 데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조선지지 자료』에는 ‘울산암(蔚山巖)’으로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바위를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마치 우는 소리처럼 들려 ‘우는 산’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 화하면서
울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위에서 큰 바람소리가 울린다는 의미에서 천후산(天吼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속초시내방향
한화 리조트와 호텔
오늘은 거진항에서 출발 통일전망대 화진포 일원 왕곡마을 서낭 바위 천학정과 청간정
화암사 일원을 돌아보고 일찍 리조트에 들었다
아침에 주차장 부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구름에 가린 울산바위
울산바위는 이름에 얽힌 여러 전설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 하늘신이 천하제일 경승을 만들고자 온 산의 봉우리들을 금강산으로 모이게 했는데 덩치가 무거운
울산바위는 그만 지각하고 말았다. 창피한 마음에 고향(울산)에 가지 않은 울산바위는 설악산에서 쉬어가던 중
그대로 눌러앉았다고 한다. 이외에 울타리처럼 생겼다거나 우는 산이라는 별칭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울산바위는 소공원에서 출발해 신흥사, 흔들바위를 거쳐 오를 수 있다. 처음엔 완만한 경사로 시작하나
흔들바위를 지나서는 가파른 바위 언덕과 철제 계단길이 계속된다.
왕복 4시간 정도 소요되며 난도가 높아 어린이나 노약자는 오르기 힘들다.
설악 대명리조트 델피노
아침에 일어나 바라본 주위는 구름은 끼었지만 공기는 맑은 편이다
설악 워터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