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하야리아(캠프 하이얼리어, Camp Hialeah)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전동 및
연지동에 걸쳐 있던 약 543,360 m²(약 0.543 km2) 규모의 주한 미군의 군영이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의 경마장, 1945년 UN 기구,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주한 미군 부산 사령부의
기지로 쓰이다가 2006년 8월 10일에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이후 주한 미군과 반환 협상이 이어지다가 2010년 1월 27일 부산시에 반환되었다
경마장으로 사용하였고
군속훈련소로 사용하였고
해방과 더불어 일본군이 철수하고 미군이 들어왔다
일본에서 동포들도 귀환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경마협회 소유로 경마장으로 쓰였으며, 경주로는 기지 내 순환 도로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경마장 터는 일본 조선군의 훈련소로 쓰이다가, 1945년 광복 직후, 한반도에 상륙한
주한 미군이 접수하였다.
1945년 9월 16일 미국 제6보병사단이 부대 지휘를 인수받았으며, 부산 최초 미군 지휘관은 존 피에이치
케리(John P.H. Kerry) 소령으로 1946년 말까지 주둔하였다.
이후 미국 영사관과 유엔에서 사용하다가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시작되어 유엔의 결의 이후 다시 미군이
지휘권을 가져갔다.
제8609보충지 작전으로 1950년 7월 미국 제24보병사단이 상륙하고, 부산은 군수물자와 병사의 주요 보급창이
되었다. 1953년 휴전 협정을 서명한 후, 하야리야 부대는 한국전 전사자 및 부상자의 교환 지역과 병력 숙영에
쓰이다가, 토지를 추가하여 현재의 크기로 확대되었다.
1954년 말 한국군 전사자 및 부상자 교환지역이 해체되었다. 이후 40여년 동안 미군 사령부가 설치되어, 전쟁에
투입되는 물자와 장병의 이동을 관리하는 대한민국 최대 군수기지 역할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경마장 입장과 관람객을 수용하던 건물은 미군 장교클럽(헤븐클럽)으로 쓰였다.
부대 내에는 180여채의 군인 숙소가 있었고, 학교, 병원, PX, 식당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부산항 제8부두,
김해국제공항의 군용 시설, 부산 배급창(혹은 "제55보급창") 등을 관리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광복을 맞았지만 38선 이남은 미군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었다.
이 때 남한에 주둔한 미군정단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본국으로 잠시 철수하였다가
1950년 6월 6·25 전쟁을 계기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6·25 전쟁이 터지면서 최후의 보루로서 부산은 많은 피난민의 수용과 함께 임시 수도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만
했다. 특히 전시 체제였던 당시 상황에서 부두를 중심으로 한 병참 물자의 수송과 군대 이송 등은 매우 중요한
기능이었다. 그리고 그 기능의 중심에 있었던 하야리아 부대는 군수품의 보급과 관련된 기지 사령부 기능과
군 지휘부 및 유엔 한국 위원단 등 주요 외교 기관 요인을 위한 숙소 제공, 통신과 우편물 집적, 후방 기지
병원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의 ‘캠프 하야리아’라는 부대 명칭도 이 시기에 붙여졌다고 한다.
부대 근무자와 군속 및 관련 민간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미 극동사령부 산하의
부산기지사령부를 7월 3일 서면 경마장 부지에 설치하면서 당시 초대 사령관의 고향인 미 플로리다 주
하야리아 시(市)에서 부대 명칭을 따왔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하야리아 부대는 이방인의 영역으로 남게
되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부산과의 어색한 관계 맺기에 나서게 되기도 하였다
하야리아 부대를 비롯하여 오늘날에도 한반도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는 당시 남북한의 긴장 관계
속에서 군사적 안정을 이루려는 목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이방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매개체 역할도 하였다. 특히 부산의 하야리아 부대는 당시 서면과 남포동 일대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상당하였다. 이제 그 이야기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사령관집무실
캠프 하야리아의 생활
캠프하야리아의 한국인
하사관 숙소로 사용되었다
현재 박물관 건물은 장교클럽이었다
미군헌병용품
해피뉴욕? (해피 뉴 이어 )유 바이 램프?
아이들은 이렇게 램프 같은 것들을 팔고
아낙들은 세탁을 해주고 돈벌이를 했다
노점상
양복점을 운영하고
그시절 초라했던잡화점
슈퍼마겥
하야리아 부대에서 출토된 유물들
기지 반환
캠프 하야리아가 들어설 당시에는 부산 도심에서 떨어져 있었으나, 이후 도심 기능이 서면으로 이전되면서
1995년부터 부산 지역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하야리아 기지 반환 운동이 시작되었다.
2002년 주한 미군과의 LPP 수정 협상을 통하여 일부 시설물을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에 반환하기로
했으며, 2004년 7월 23일 FOTA 회의에서 하야리아 기지를 2005년까지 반환하며, 동시에 강서구 이전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하기로 하였다.
반환 협상 이후 2006년 8월 10일에 부대를 폐쇄하고, 기지 내 오염물 처리 문제로 부대 폐쇄 이후에도 협상이
진행되다가 2010년 1월 27일 반환 협상이 타결되어 부산시로 소유권이 넘어왔다.
부산시에서는 2010년 4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부지 일부를 시민에게 개방하였다.
개방 이후 부산시는 부대 부지에 시민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 있으며, 2011년 2월부터 11월까지 문화재 발굴을
진행했다. 3월 28일 시민 공원의 기본 설계가 확정되었다.
부산진구 범전ㆍ연지동 일원 528,278 m²에 시민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2011년 3월 부산시민공원으로 공식 명칭을
선정했다. 2011년 8월 11일 기공식을 개최하였으며, 2014년 5월 1일, 부산시민공원이 개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