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가 한창 피어 있는데 그것도 감지 못하고 칠암에서 능소화를 본 후
마음이 바빠져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김해 김수로왕릉으로 달려가 본다
가락루 왼쪽으로 가면 능소화가 있다
건물들은 전에도 몇 번을 소개했기에 윤곽만 담고 능소화가 있는 곳으로 가본다
김수로왕릉
사적 제73호. 원형봉토분으로서 봉분의 높이는 약 5m에 이른다.
이 능은 〈신 증 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소재지와 위치가 부합되고 있어서 수로왕릉으로서의
신빙성을 더해준다.
이 왕릉은 신라말의 이 지역 호족인 충지(忠至), 고려시대 양전 사인 조문선(趙文善)과 관련한 기적(奇蹟)을 보였던
바 영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580년(선조 13)에 경상도관찰사였던 허엽이 수축하여 상석·석단·능묘 등을
갖추었고, 1647년(인조 25)에는 능비를 세웠는데 '가락국 수로왕릉'이라고 새겨져 있다.
경모 문 담벼락으로 넘어온 능소화 밑에는 벌써 꽃이 많이 떨어져 있다
여름이 깊어 갈수록 주변은 온통 초록의 바다가 된다.
그러나 늘 푸름도 너무 오래가면 금세 신물이 나서 화사한 봄꽃의 색깔이 그리워진다.
이럴 즈음, 꽃이 귀한 여름날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능소화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고즈넉한 옛 시골 돌담은 물론 삭막한 도시의 시멘트 담, 붉은 벽돌담까지 담장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담쟁이덩굴처럼 빨판이 나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달라붙어 아름다운 꽃 세상을 연출한다.
가장자리가 톱날처럼 생긴 여러 개의 잎이 한 잎자루에 달려 있는 겹잎이고, 회갈색의 줄기가 길게는
10여 미터 이상씩 꿈틀꿈틀 담장을 누비고 다니는 사이사이에 아기 나팔 모양의 꽃이 얼굴을 내민다
출처: 나무의 세계에서
꽃은 그냥 주황색이라기보다 노란빛이 많이 들어간 붉은빛이다.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이 든다.
다섯 개의 꽃잎이 얕게 갈라져 있어서 정면에서 보면 작은 나팔꽃 같다.
옆에서 보면 깔때기 모양의 기다란 꽃통의 끝에 꽃잎이 붙어 있어서 짧은 트럼펫이 연상된다.
꽃이 질 때는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날아가 버리는 보통의 꽃과는 달리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진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흔히 처녀꽃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꽃은 감질나게 한두 개씩 피지 않고 원뿔 모양의 꽃차례에 붙어 한창 필 때는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핀다.
한번 피기 시작하면 거의 초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이어간다.
흔히 능소화 꽃가루에는 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심지어 실명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식물의 꽃가루는 대체로 0.01~0.05밀리미터 크기의 원형이나 타원형이며, 종류마다 형태가 다르고 표면에
돌기가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러나 능소화 꽃가루는 크기 0.02~0.03밀리미터 정도의 타원형으로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표면이
그물모양일 뿐1) 갈고리 같은 흉기는 없다.
사실 돌기가 있는 코스모스 등의 꽃가루도 크기가 너무 작아 일부러 눈에 넣고 비비지 않는 다음에야 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출처:나무의 세계에서
나팔 모양의 꽃은 색상이 화려하며 점잖고 기품이 있으며 줄기는 큰 키 나무나 벽을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영광이고, 금동화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꽃이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능소화는 참으로 애틋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소화라는 후궁이 임금님의 성은을 입었는데,
그 날이후 한 번도 찾아주지 않는 임금님을 기다리다 상사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제나 저제나 오실까 애끓는 기다림에도 찾아주지 않는 임금님을 담장 너머라도 보고 싶어 하는
소희의 바람으로 피어난 꽃 이소화를 닮았다고 하여 능소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능소화 꽃이 있는 담장에서 가까운 곳에는 연못이 있는데 두세 개의 섬도 있으며
섬에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 소나무가 있어 의외이다
연못 한편에는 분홍 수련이 곱게 피어 있는 모습도 보이고
광나무
광나무는 중북부지방에서는 잘 만날 수 없는 남쪽 나무로 남해안에서부터 섬 지방을 거쳐 제주도까지
자연 상태로 야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으며, 정원수로 심기도 한다. 광나무란 이름은 우리가 흔히 쓰는
‘광나다’란 말처럼 빛이나 윤이 난다는 의미로 짐작된다. 늘 푸른 나무로 손가락 세 개 정도 크기의 잎은
도톰하고 표면에 왁스 성분이 많아서 햇빛에서 볼 때는 정말 광이 난다.
아마도 제주도 방언인 ‘꽝낭’을 참고하여 표준 이름을 정한 것 같다.
능 주위에는 잘 가꾸어진 숲이 자리하고 있어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바라보이는 분산성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분산의 정상에 둘레 약 900m에 걸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은 삼국시대 금관 국 시대에 처음 지어졌고 고려 후기 김해부사 박위가 수축한 뒤 임진왜란 때 전란을 맞아
허물어졌다가 흥선대원군이 다시 개축했다. 6개의 봉화가 있었지만, 현재는 3개만 전해진다고 한다.
지금도 고대의 고인돌부터 흥선대원군이 새긴 비문까지 여러 역사의 흔적이 공존하는 곳.
김해천문대도 보이고
김해천문대는 지난 1998년 12월에 밀레니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천체와 우주에 대한 일반인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시민들에게 낭만과 추억을 선사하기 위하여 추진되어
2002년 2월 1일에 개관하였다.
부지 면적은 1,996평, 건축 면적은 460평이다.
건물은 2층이고, 천문대의 모습은 알에서 태어난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을 형상화해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정문 입구의 넓은 잔디광장을 뒤로하고 수로왕비의 릉으로 이동을 한다
장군 수라는 차나무
수로왕을 위하여
이곳은 가락국을 건설한 수로왕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구실 잣나무와 가시나무 상수리나무 등 곧게 뻗은 참나무들 사이의 나무계단을 따라
낮은 언덕을 오르면 신단수를 의미하는 큰 팽나무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수릉원의 전체 모습과 함께 건너편에 위치한 대성동 고분군 수로왕릉
등을 바라볼 수 있다
수로왕비릉으로 왔다
사적 제74호. 무덤의 지름은 약 16m, 높이는 약 5m. 능은 대형의 원형봉토분으로 특별한 시설은 없고, 주위에는
범위를 넓게 잡아 얕은 돌담이 돌려져 있다.
앞쪽에는 장대석으로 축대를 쌓고 능 앞에 '가락국수로왕비 보주태후허씨릉(駕洛國首露王妃 普州太后許氏陵)'
이라고 새긴 낭비가 서 있는데, 이러한 시설물은 1647년(인조 25) 수축 때 세운 것이다.
수로왕릉과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으며, 왕릉에 비하면 시설이 빈약하고 수로왕비릉이라는 확증은 없으나
오래전부터 구전되어오고 있다.
피사 각
작년에 이어 능소화를 보려고 왔는데 능소화는 별로 인 것 같다
이곳은 숭보재와 관리동이다
숭보재 담장에 핀 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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